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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6.11 20:35 수정 : 2019.06.11 20:49

[짬] 재독 설치미술가 한석현·김승회씨/큐레이터 김금화씨

지난 5월23일 독일 베를린 쿨투어포룸과 마테우스교회에서 열린 ‘제3의 자연’ 개장식에서 설치미술가 김승회 작가·김금화 큐레이터·한석현 작가가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진 한주연 통신원
“우리 프로젝트는 남북관계에 따라 유동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이 자체가 예술 프로세스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정치 역동성 속에서 작품도 역동적인 변수를 갖게 된 거죠. 지금도 북한에서 올 식물을 기다리고 있어요.”

독일 베를린에 겸재 정선(1676~1759)의 ‘인왕제색도’를 닮은 백두대간이 쓰리디(3D) 미니어처로 화현했다. ‘제3의 자연’이다. 현무암과 흙으로 백두대간의 모양을 본 따 만든 산 모양 바위에 운무가 피어오른다. 정원에는 한반도에 걸쳐 자생하는 남·북한 식물들을 심었다.

지난달 23일 저녁 열린 개장식에는 설치미술가 한석현(44)·김승회(41) 작가를 비롯해 유학생과 한인 동포들, 현지인 등 600여명이 모여 큰 관심을 보였다. 기획·조직은 금아트프로젝트의 김금화(41) 큐레이터가 맡았다.

지난 8일 베를린 쿨투어포룸과 마테우스교회 공터에 설치된 정원에서 만난 이들은 “전체가 머지않아 하얀 꽃들로 뒤덮일 거”라고 소개했다.

현무암·흙으로 백두대간 모형 제작
한반도 자생식물 45종 바위에 심어
지난달 베를린 문화중심지에서 개장
“인왕제색도처럼 경계없는 희망 상징”

호의적이던 북한쪽 최근들어 무응답
“남북 어울려 막걸리 한잔 나눴으면”

설치미술가 한석현(왼쪽)·김승회(오른쪽) 작가는 ‘제3의 자연’ 정원을 통해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이미지를 닮은 한반도 백두대간을 재현해 놓았다. 사진 한주연 통신원
애초 3년 전 프로젝트를 처음 구상한 김 큐레이터는 베를린의 북한 대사관부터 방문했다. “북쪽의 반응은 호의적이었어요. 개성공단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북한 식물을 전달받기로 했고요. 그런데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되면서 미궁에 빠졌어요. 지금도 계속 접촉중이지만 아직 답을 받지 못하고 있어요.”

김 큐레이터는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분단된 나라의 국민이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라며 “남북 교류가 하루빨리 진척되어 이 정원에서 남북 생태학자들이 심포지엄을 열어 백두대간의 식물들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원이 자리한 장소는 문화재단이기도 한 마테우스 교회, 독일의 국립 미술관들이 운집해 있는 쿨투어포룸, 베를린 필하모니가 둘러싸고 있는 공간이다. “이곳은 서베를린의 문화의 중심지이자 장벽이 있었던 곳에서 가까워요. 또 동서 분단 시절 서독이 체제 우월성을 증명하기 위해 급조한 곳이기도 했죠. 지금도 1년에 관광객만 10만 명 정도 몰려요.”

이처럼 이름난 베를린 한복판에 정원을 만드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가장 어려운 건 허가문제였다. 작가들이 하고 싶은대로 다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규격, 시공방법부터 독일 표준을 지키고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허가를 받자, 김 작가는 식물 선별과 운반을 맡았다. 올 1월부터 식물들을 가져와서 베를린식물원을 통해 옮겨 심었다. 북한 식물 23종, 남한 37종을 골랐고 그 가운데 45종의 묘종을 베를린에 옮겨올 수 있었다. 한국과 독일의 기관들과도 밀접하게 협력해야 했다. 베를린식물원, 마테우스재단, 공원청, 예술청 등의 도움이 컸다. 조경과 설치 작업에 독일 전문가들의 기술이나 컨설팅이 필수적이기 때문이었다. 김 큐레이터는 “독일 기관과도 함께 이뤄낸 프로젝트라는 점에서도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예산문제도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지난 3월 한 달간 진행한 크라우드펀딩을 진행했다. 덕분에 프로젝트가 알려져 3만2500유로를 모금할 수 있었다. 배우 김성령·김아중·한지민, 힙합 뮤지션 에픽하이, 스타 강사 김창옥 등 사회 각계 인사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작품에서 한 작가는 전체 비주얼을 담당하고, 김 작가는 식물과 관련된 부분을 맡았다. 한 작가는 홍익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거쳐 서울시립대에서 조경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한 작가가 산업화 도시화 과정에서 왜곡된 자연 이미지를 통해 자연의 본질에 대해 묻는 작품 활동을 펼쳤다면 김 작가는 미술과 조경을 결합한 공공미술 분야에서 지역자생문화 관련 작업들을 선보였다.

‘제 3의 자연’ 프로젝트의 핵심 주제는 ‘자연엔 경계는 없다’이다. 김 큐레이터의 설명이다. “정원 자체가 이미 유토피아를 상징하고 있어요. 인간이 만든 자연이고 그 안에서 인간이 꿈꾸는 이상향적 공간을 실현하는 것이죠. 작가들이 생각한 정원이 정선의 인왕제색도예요. 비가 막 그친, 안개 낀 서울 인왕산의 모습이죠. 정치적으로 불안하지만 희망을 품고 있는 상태를 상징하는 그림이라고 해석했어요. 희망과 불안 사이의 추상적인 현상을 수묵화라는 기법으로 표현한 것 같지 않나요?”

한 작가가 맨처음 예술 정원을 구상한 건 2016년 베를린 베타니엔 예술가의 집에 레지던스로 오면서부터였다. “3년 전 봄에 베를린에 처음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너무 평화롭고 행복하고 편안해 보였어요. 한국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죠. 동서독의 통일이 이런 안정감과 평화를 가져왔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대학 때까지는 친구들과 통일에 대해 종종 토론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지난 10년간 한 번도 누구와 진취적인 미래, 통일에 관해 이야기 해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예술가로서 남북과 관련된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는 순간을 기록한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너무 감동적이어서 눈물이 났어요. 독일 통일이 서로 원하고 자유롭게 왕래하고 계속 시위를 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이뤄졌듯이, 우리도 정치적 결정만 기다리기보다는 남북한 사람들이 더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 정원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모여 어떤 이야기라도 나누었으면 좋겠고, 막걸리라도 한 잔하면 행복할 것 같다. 꽃이 다 지기 전에 다시 남북관계가 풀렸으며 좋겠다”고 덧붙였다.

‘제3의 자연’ 프로젝트는 오는 11월15일까지 현재진행형이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한인 예술가들의 퍼포먼스, 낭독회나 토론, 후원회원인 이랑 가수의 콘서트, 정관 스님의 사찰 음식 시연회 등도 기획 중이다.

베를린/한주연 통신원 juyeon@gmx.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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