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03 17:10
수정 : 2019.07.03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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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재즈를 연주하는 강태환 트리오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미연, 색소포니스트 강태환,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왼쪽부터).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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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80년대 공간사랑서 프리재즈 연주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극찬받는 연주자
타악기 박재천, 피아니스트 미연과
석달에 한번 ‘자유즉흥’ 정기공연
7일엔 벨로주 망원에서 8번째 무대
‘죽기 전 꼭 봐야 할 공연’으로 흥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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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재즈를 연주하는 강태환 트리오로 활동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미연, 색소포니스트 강태환,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왼쪽부터).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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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근 건축가는 1977년 서울 종로구 원서동에 건축설계사무소로 쓸 공간사옥을 만들면서 지하에 소극장 공간사랑을 마련했다. 김덕수 사물놀이패 공연, 공옥진의 병신춤 등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여기서 태동했다. 그중 국내보다 외국에서 더 인정받는 프리재즈의 대가 강태환(75·색소폰)도 있다. 그는 1978년부터 매달 한번씩 이곳에서 재즈 연주자들과 모여 즉흥음악의 한판 난장을 펼쳤다.
처음 30여명으로 출발한 연주자들이 공연을 거듭할수록 하나둘 떨어져 나가더니 나중엔 강태환·김대환(드럼)·최선배(트럼펫) 셋만 남았다. 셋은 강태환 트리오라는 이름으로 프리재즈 공연을 이어갔다. 하지만 공간사랑이 1986년 문을 닫으면서 76번째 무대가 마지막이 됐다. 강태환은 일본으로 건너가 공연했다. 당시 일본 언론은 재즈 불모지 한국에서 놀라운 프리재즈 연주자가 나왔다며 극찬했다.
프리재즈는 재즈의 일반적인 박자와 코드를 벗어난 전위음악이다. 강태환은 몇분 동안 쉬지 않고 한 음을 내거나 운지 한번으로 둘 이상의 음을 내는 등 낯설고 독특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최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만난 강태환은 “모든 게 즉흥으로 들리겠지만, 수많은 악보를 머리에 담아두고 그때그때 풀어내는 ‘준비된 즉흥’이다. 프리뮤직은 상대 연주자와 공격과 수비(양보)를 번갈아 하는 검술과도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가부좌를 틀고 앉아 연주하는 자세로도 유명하다. “1980년대 중반 나무바닥에 앉아 공연해보니 울림통이 된 것처럼 소리가 좋더라고요. 집에서 늘 앉아서 연습하기도 하고 해서 이후부턴 계속 앉아서 연주하고 있어요.”
홀로 활동하던 강태환이 타악기 연주자 박재천(58)을 만난 건 1990년대 중반이다. 한국 재즈 선구자인 이판근 작곡가의 추천으로 당시 월드뮤직을 하던 박재천의 공연장을 찾아갔다. 강태환은 박재천에게 “반주 같은 음악 하지 말고 나랑 프리뮤직을 해보자”고 제안했다. 박재천은 고민하다 딱 5년만 같이 해보기로 결심했다. “50분 동안 둘이서만 즉흥연주를 하려니 죽겠더라고요. 5년 하고 나니 오기가 생겨 5년만 더 해보자 했죠.” 박재천이 말했다. 박재천은 피아니스트인 아내 미연까지 끌어들여 트리오를 완성했다. 이들이 발매한 음반 <임프로바이즈드 메모리스>(2002)와 <이사야>(2006)는 한국 프리재즈의 걸작으로 꼽힌다.
이들의 공연은 2009년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생계를 위해 목수로 일하던 박재천이 작업 도중 손가락을 다쳤기 때문이다. 부상에서 회복해 곧 연주자로 돌아왔지만, 극도의 집중과 미세함이 필요한 프리재즈 합주는 자신이 없었다. 강태환은 또다시 외국에서 홀로 활동해야 했고, 박재천도 독자적인 활동을 펼쳤다.
박재천 “도전하는 말년 예술가의 이야기에 강태환 떠올라 정기 공연 제안”
강태환 “하루 9시간 연습도 부족…음악의 절정·희락 알면 고통 아닌 행복”
박재천은 몇년 전 문화비평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책 <말년의 양식에 관하여>에서 말년에 접어든 예술가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하고 도전하는 사례를 보며 강태환을 떠올렸다. 스스로 다시 합주해도 될 만큼 연주력도 회복했다고 판단한 박재천은 강태환에게 “말년의 예술가로서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질” 정기공연을 제안했다. 외국 공연은 꾸준히 해도 한국에선 불러주는 곳이 없던 강태환은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셋은 2017년 10월 서울 마포구 벨로주 망원에서 ‘궁극의 자유즉흥’이란 제목으로 첫 공연을 열었다. 강태환은 얼마 뒤 심부전으로 쓰러져 심장 수술을 받고도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멈출 수 없다”며 석달에 한번씩 꾸준히 공연을 이어오고 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공연’이라는 소문을 듣고 온 젊은 관객들로 매회 공연장이 가득 찬다. 오는 7일 오후 6시 ‘궁극의 자유즉흥’ 여덟번째 공연(예매 veloso.co.kr)을 앞두고 있다.
강태환은 요즘도 하루 8~9시간씩 연습한다. “아직도 멀었다. 지금도 해야 할 숙제가 너무 많다”고 그는 말했다. “스스로 만든 업보를 이렇게 끝까지 지키는 사람 첨 봐요.” 박재천의 말에 강태환은 손사래를 쳤다. “업보는 무슨? 음악의 절정과 희락을 알고 나면 고통이 아니라 행복이지. 남들은 내가 고독과 가난을 극복했다고 하는데, 나는 극복 안 해요. 좋아서 하는 거예요. 하늘이 내려준 축복이죠.”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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