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7.10 19:06
수정 : 2019.07.1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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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의 결’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 광주 닻미술관 전시장 모습. 인간과 자연의 감성, 내면의 결을 담은 작가 4명의 다채로운 추상 작업들이 전시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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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광주 닻미술관 4인 기획전 ‘온도의 결’
배희경·신현정·임소담·최은혜 작가
난민·날씨·대자연 영감 추상화면에
정원 둘러싼 ㄷ자 전시로 빛 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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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도의 결’이 열리고 있는 경기도 광주 닻미술관 전시장 모습. 인간과 자연의 감성, 내면의 결을 담은 작가 4명의 다채로운 추상 작업들이 전시공간과 조화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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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빛이 그림을 그리는군요!”
탄성이 터지고, 그림 위엔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또다른 그림이 꼬물거리며 그려지기 시작했다. 작품이 내걸린 전시 벽 맞은편 창가로 스며 들어온 석양 직전의 빛살이, 내걸린 화폭 위에 미세하게 떨리면서 떨어져 하얀 선의 흔적들을 남겨놓는 순간이 지나갔다. 삶에 묻어난 시간들을 막대와 직사각형이 중첩된 중성적 톤의 화면으로 표현한 최은혜 작가의 화폭 위에서 찰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뜻밖에 등장한 햇빛은 강렬한 작업을 덧보탠 셈이었다. 작가의 화폭에 수초간 나타났다 사라진 흰빛 떨림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지난 6일 경기도 광주 백마산 기슭 진새골에 자리한 닻미술관에서 열린 기획전 ‘온도의 결’ 개막 행사는 심오한 빛의 작업술을 엿보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미술에서 추상이 작가마다 어떤 결로 재현되는가를 묻는 기획전이다. 초대된 이는 30~40대 여성 작가 배희경, 신현정, 임소담, 최은혜씨. 국외에 유학하거나 국내에서 다양한 장르의 작업들을 섭렵하며 자기 마음과 경험 속의 이야기 혹은 무형의 기억, 감상들을 추상화면에 표현하는 작업을 지속해온 이들이다. 미술관 바깥 중정을 둘러싸고 ㄷ자형으로 배치된 전시장은 추상회화뿐만 아니라 좌대 위에 올려진 세라믹 조각과 영상설치물, 입체시각물 형식의 프레임에 추상그림들을 내걸어 벽면의 추상 연작들과 색다른 어울림을 빚어내고 있다.
“작가들은 매체의 시각적 유희보다 구체적 일상에서 비롯된 감성과 관심을 어떻게 매체에 재현할 것인가에 대해 답하려고 애씁니다. 네 작가의 작품에 드러난 추상적 감각은 어떤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내포하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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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 창가로 들어오는 자연광과 은은한 조화를 이루는 최은혜 작가의 <물들여진 풍경>(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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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자 강민정 큐레이터의 말처럼 작가들은 삶이나 일상에 깃든 그들만의 취향이나 생각, 감성들을 보이지 않는 내면에서 보이는 경지로 끌어내려는 노력을 해왔다. 한국과 인도를 오가며 작업하는 배희경 작가는 이민자, 난민의 이산 경험 자체를 추상화한 화면으로 재현하려는 만만치 않은 시도를 했다. 특히 암실 속 영상물 <디아드로잉룸>(Dia-DrawingRoom·2018)은 작가가 인도의 티베트 난민, 국내 이민자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슬로모션으로 잡고 거기에 붉은색, 푸른색을 단색으로 입혀 마치 색조 추상화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작가는 “전혀 난민이나 유랑자 같지 않은 인도의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내 나름의 감상과 느낌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신현정 작가는 주변의 환경, 특히 날씨, 온도 등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신의 감각에 집중한다. 날씨에서 느낀 감각을 색 스프레이로 화폭 옆면에 일순간 뿌려 표현하는가 하면, 겨울날 자신의 몸을 따뜻하게 데워준 기억이 있는 찻물로 천을 염색한 뒤 기워내어 만든 화폭을 작품으로 내놓았다. 온몸으로 느낀 일상의 온도가 따뜻함이 느껴지는 촉각으로 다가온다. 자신의 작품들을 꿈으로 비유한 임소담 작가는 모호한 형상들이 등장하는 추상회화와 세라믹 조각들을 함께 벽면에 배치한 특이한 구도를 드러낸다. 머릿속에 축적된 일상의 기억 속 파편화된 단상들을 가지고 미완성의 이야기를 꾸며 보여주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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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출된 좌대 위의 세라믹 조각들과 추상회화가 함께 어우러진 임소담 작가의 근작들. 보이지 않는 마음속 기억의 편린들을 작가는 명확하게 정의되지 않는 모호한 형태의 조각과 추상화의 화면으로 끄집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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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살펴본 중견작가 우순옥씨는 “공간의 결과 작품의 결, 작가의 결이 대자연의 빛 속에서 어울리면서 추상회화 전시로는 보기 드물게 인간적 감성을 고조시킨 자리가 됐다”고 평했다.
닻미술관은 사진디자인을 전공한 주상연 관장이 예술을 통한 창조성과 영성 회복을 내걸고 2010년 10월 창립한 ‘강소미술관’이다. 자연과 함께 호흡하면서 내면 성찰과 치유가 이루어지는 전시공간을 모토로 매년 2~3차례의 사진, 회화 기획전을 벌여왔다. 콘텐츠와 편집은 물론 지질까지 정밀한 수공작업으로 만드는 연간 간행물 <깃>으로 미술관의 주요 전시를 기록해왔다. 9월22일까지. 월·화요일 휴관. (031)798-2581, www.datzmuseum.org.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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