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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8.26 18:49 수정 : 2019.08.27 19:00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가 미상의 1557년 작 <총석정>의 일부분. 재일동포 기업가 윤익성의 유족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일본 교토에서 사들인 작품이다. 관동팔경의 절경으로 꼽히는 총석정의 돌기둥을 꼿꼿한 막대처럼 단순명료한 형상으로 표현한 점이 눈을 잡아끈다. 돌기둥 주위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꼭대기에 나무가 얹히듯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부 봉우리에는 ‘사선봉’ 등의 명칭도 명기해놓았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

정선 김홍도 등 조선 거장 작품 360여점 전시
스케치 준비물도 공개, 실경산수 제작과정 실감

전시의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작가 미상의 1557년 작 <총석정>의 일부분. 재일동포 기업가 윤익성의 유족으로부터 기부금을 받아 일본 교토에서 사들인 작품이다. 관동팔경의 절경으로 꼽히는 총석정의 돌기둥을 꼿꼿한 막대처럼 단순명료한 형상으로 표현한 점이 눈을 잡아끈다. 돌기둥 주위로 새들이 날아다니고 꼭대기에 나무가 얹히듯 자라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일부 봉우리에는 ‘사선봉’ 등의 명칭도 명기해놓았다.
그림은 사람이 눈으로 본 것을 손을 움직여 표현한 결과물이다. 행위 자체로 살아 있음의 의미를 담는 장르가 된다. 그럼, 어떻게 그리는 것이 살아 있음을 가장 인간적으로 표현하는 것일까. 이달 초 끝난 첫 한국 회고전에서 30만 넘는 관객을 끌어모은 영국의 그림 거장 데이비드 호크니(82)는 한 인터뷰에서 ‘움직이는 시점’이라고 단순간결하게 말하며 중국을 비롯한 동양 그림에 호감을 드러낸 바 있다. “사람 눈은 가만히 있지 않아요. 움직이지 않으면 죽은 겁니다. 그림 속에서 시점이 움직이는 건 보는 사람의 눈, 그러니까 몸이 꿈틀대는 거죠. 작가는 물론 관람자가 그 안에 들어가는 거예요. 눈과 손은 물론 마음이 함께하는 그림이죠.”

서울 용산국립중앙박물관상설관 특별전시실에서 지난달부터 열리고 있는 기획전 ‘우리 강산을 그리다―화가의 시선, 조선시대 실경산수화’는 옛사람들이 ‘발걸음 옮기듯이 본 것들’을 담은 다(多)시점 명작들의 잔치다. 고려시대 화가 노영이 불교적인 이상세계로 그린 금강산 그림으로 시작해서 18~19세기의 거장 정선과 김홍도, 심사정, 강세황, 이인상 등과 정수영, 김윤겸, 김하종 등 우리에겐 낯설지만 뛰어난 작가들의 산수풍경화 360여점이 펼쳐져 있다. 전시장은 직접 본 경치를 그림으로 옮기는 ‘실경산수’ 개념을 옛 화가들이 어떻게 옮겨냈는지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총석정>의 전체 도판.
김홍도의 금강산사생첩 <해동명산도첩> 중 ‘옹천’의 일부분. 옹천은 고성 금강산에서 통천 총석정으로 가는 길에 거치게 되는 바닷가의 가파른 절벽길 일대를 말한다.

정수영의 한강·임진강 사생첩 <한임강유람도권>의 일부분. 배를 타고 강을 사생하며 유람하다가 풀피리 불고 해금을 타는 노인을 물가에서 보고 함께 태워 지인의 집으로 향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다큐 영상 같은 느낌을 주는 대목이다.
모두 4부로 나뉜 전시는 18세기 대화가 겸재 정선의 명작소품 <단발령망금강>으로 시작한다. 내금강으로 들어가는 길목인 단발령 토산의 고개에서 비죽비죽 솟은 내금강 암봉들의 장관을 선비들이 보는 장면이다. 두 풍경 사이를 통째로 생략한 압축과 특정한 경치를 부각시키는 과장을 장쾌하게 표현한 이 작품을 통해 관객은 금강산 절경에 대한 갈망 또한 읽어내게 된다. 뒤이어 최근 재일동포 사업가의 기부금으로 일본에서 구입한 16세기 임진왜란 직전 그려진 경포대, 총석정의 그림들이 1부의 서두에 등장하는데, 호방한 묘사와 표현력이 눈을 단박에 잡아끄는 명품이다. 특히 총석정 그림은 압권이다. 주상절리 암벽들을 긴 막대처럼 죽죽 뻗은 도상으로 단순명쾌하게 표현한 상상력과 암벽 위쪽은 검은빛, 아래는 흰빛으로 채색해 상승감을 이끌어내는 구성이 절묘하다. 그러면서도 바위 위를 떠도는 새나 나무는 사실적인 필치로 정교하게 묘사하면서 조화를 이뤄 전시의 대표작으로 손색이 없다.

가장 솔깃하게 관심을 끌어낸 부분은 2부 전시장에 있다. 옛 화가들이 직접 관찰한 경치를 어떻게 사생하고 화폭에 옮겼는지 보여주는 구체적인 기록들이 줄줄이 나온다. 시원하게 폭포가 쏟아져내리는 안쪽의 동영상 스크린을 배경으로 18세기말 거장 김홍도가 그린 길이 16m짜리 금강산사생첩(<해동명산도첩>)과 정수영의 한강·임진강사생첩(<한임강유람도권>), 강세황의 <부안유람도권>을 보는 것은 이번 전시 감상의 고갱이라고 할 만하다.

특히 1780년대 정조의 어명에 따른 금강산 스케치여행의 기록으로 보이는 김홍도의 사생첩(<해동명산도첩>)은 명불허전의 걸작이다. 내금강, 외금강과 총석정, 낙산사 등의 관동절경을 샅샅이 훑어 10m가 넘는 두루마리 수십폭에 가득 채워놓았는데, 허술한 구석을 찾기 힘들 정도로 경치 세부의 구도와 필치가 꼼꼼하고 정연하다. 또 정수영의 <한임강유람도권>은 남한강, 임진강 일대를 유람하면서 사생한 당시 상황들을 두루마리의 연속된 장면 그림 옆에 작은 글씨로 적어 현대의 다큐 파노라마 영상을 보는 듯한 감흥을 전달하고 있다. 먹통과 나침반, 휴대용 지도 등 당대 화인들이 교외 스케치 여행을 하러 나갈 때 지녔던 물품들도 전시해 실경산수 제작 과정을 실감나게 떠올려 볼 수 있게 한 부분도 눈에 띈다.

3, 4부에서는 실경을 화폭에서 다듬고 새롭게 도상을 창안하는 차원의 18~19세기 여러 작품들을 소개한다. 위에서 내려보거나 아래서 올려다보고 정면에서 깊이 들여다보는 등의 여러 시점을 섞어 활용하면서 다채롭게 전개된 실경산수의 작품들을 망라하는데, 김윤겸, 김하종, 엄치욱, 김응환 등 대중에겐 생소한 18~19세기 화가들의 개성적 화풍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우리 강산을 그리다’ 2부 전시장. 안쪽 폭포가 쏟아져내리는 동영상 스크린을 배경으로 18세기 말 거장 김홍도가 그린 길이 16m짜리 금강산사생첩을 관객들이 관람하고 있다.
아쉬운 건 기획전 제목 그 자체로 내세운 주제가 모호한 수사적 차원에 머무른다는 점이다. 박물관 서화 상설전시관에서는 이전부터 진경산수, 실경산수에 대한 전시를 계속 교체하면서 진행해왔다. 기존 상설관 전시와 구별하려면 특별전에서 어떤 부분을 새롭게 부각하려 했는지를 명확하게 작품이나 담론으로 뒷받침해 보여줘야 했다. 하지만, 이번 특별전은 처음 대중 앞에 공개한 대작들의 면모만 주로 부각되면서, 기실 새로 발굴한 실경산수 명품 소개전에 가깝다. 단적으로, 고려시대부터 전통이 이어져온 실경산수와, 이땅 산하를 작가의 의식 속에 끌어들여 개성적으로 변모시켜 그린다는 조선 후기 정선, 김홍도로 대별되는 이른바 진경산수 화풍이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이 전시는 명확하게 일러주지 않는다. 모두 실경산수를 그렸다지만, 작가들의 주관적 회화관과 사상이 개별 작품에 개성적으로 드러나는 양상들이 어떠했는지를 짚어주는 분석도 전시 설명에선 찾기 어렵다. 게다가 실경산수화 명품들은 특별전 전시장 말고도 박물관 상설관 2층 서화실에 수두룩하게 내걸려 있다. 17세기 한시각이 그린 함경도 길주 산촌의 과거시험장을 그린 <북새선은도>, 18세기 김홍도의 규장각 그림, 19세기 세도가 김조순의 별장 <호산정도>, 정선의 서울 서촌 장동 풍경 같은 명작들이 ‘그림과 지도 사이’‘관아와 누정이 있는 그림’ 등의 제목을 붙인 서화실의 소주제전에 줄줄이 나왔다. 그러니까 상설관의 서화실 전시와 작품들은 특별전과 사실상 컨텐츠가 중복되는 셈이다. 실경산수 명품들을 온전히 보려면, 발품을 들여 두 전시장 사이를 왔다갔다 해야 한다. 이렇게 번거롭고 부자연스러운 전시 구성을 취하게 된 이유가 궁금해진다. 9월 22일까지.글· 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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