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9.17 17:26
수정 : 2019.09.17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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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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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재해석의 장인’ 매튜 본 인터뷰
현대 영국 왕실 배경에 남성 백조…
충격과 환호의 초연 이래 24년 롱런
“새 조명 디자이너·캐스팅 등장
새 무용수들이 작품에 신선한 영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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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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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이 돌아왔다’는 홍보문구가 과장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튀튀 입은 가냘픈 여성 백조 대신 깃털 바지를 입은 근육질의 남성 백조를 등장시켜 고전 발레의 전통을 뒤엎고 무용계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은 바로 그 작품. 다음 달, 9년 만에 한국 무대에 다시 오르는 매튜 본의 대표작 <백조의 호수> 이야기다. 초연 이후 24년이 지난 지금까지 최고 걸작으로 평가받는 이 작품을 만든 세계적 안무가 매튜 본을 <한겨레>가 이메일을 통해 만났다.
매튜 본은 ‘옛날~옛적에~’로 시작하는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현대 영국 왕실을 배경으로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유약한 ‘왕자’와 그가 갖지 못한 카리스마와 아름다움, 자유를 상징하는 ‘백조’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고전을 재해석했다.
“클래식에 약간씩 변화를 준 버전은 너무 많았기 때문에 저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만들고 싶었어요. 첫번째 가장 큰 아이디어는 남성 백조였고, 두 번째는 영국 왕실의 스캔들이었죠. 당시 다이애나 비와 찰스, 사라 퍼거슨, 마거릿 공주 등에 대한 뉴스가 가득했어요.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없고, 원하는 사람이 되지 못했던 왕자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은 매우 시사적인 선택이었죠.”
‘백조’역으로 영국 로열 발레단에서 활동하던 아담 쿠퍼를 캐스팅한 매튜 본은 처음부터 그와 함께 안무를 기획했다. 첫 번째 화보 촬영을 했던 스튜디오에서 안무의 구상이 구체화 됐다고 한다. “백조의 움직임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가 백조들의 비디오를 보는 것이었어요. 백조들이 언제나 우아하게 움직이는 생명체는 아니거든요. 미적으로 아름다운 백조의 움직임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는 게 숙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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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의 한 장면.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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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전 혁신적인 <백조의 호수>를 구상할 당시를 떠올리던 그는 “초연 때 왕실 스캔들’부분이 화제가 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로는 남성 백조에 모든 관심이 쏠렸다”며 “춤을 추는 남성 백조의 모습은 사람들 기억 속 <백조의 호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리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초연 당시엔 관객들의 반응 자체도 ‘뉴스거리’였다. 충격을 받은 나머지 공연 도중 벌떡 일어나 ‘중간 퇴장’을 하는 관객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보통 남성 관객이 남성 백조와 왕자가 함께 춤추는 것을 견디지 못했죠. 사실 영국 초연 당시 공연을 끝까지 본 관객들은 발을 구르며 박수를 치는 등 폭발적 반응을 보여줬어요. 극장 안에서 엄청난 에너지를 느꼈던 기억이 납니다.”
이후 메가 히트작으로 발돋움한 이 작품은 1998년 뉴욕 닐 사이먼 씨어터에서 124회 공연을 하며 브로드웨이 역사상 최장 무용 공연 기록을 갈아썼고, 1999년 토니상 최우수 연출가상, 최우수 안무가상,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받으며 미국에서도 관객을 매료시켰다. 2011년에는 공연실황을 3차원(3D) 카메라로 촬영한 <메튜 본의 백조의 호수 3D>라는 영화도 만들어졌다. 매튜 본은 ‘무용계의 이단아’에서 ‘고전의 재창조자’이자 ‘영국이 가장 사랑하는 안무가’로 자리매김했다.
2002년 전 세계 투어를 시작한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한국에서도 여러 차례 공연됐다. 지난 2003년 첫 내한 이후 2005년, 2007년, 2010년 재공연했으며, 8만 명 이상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그는 이번 한국 무대에 오르는 <백조의 호수>는 초연에 견줘 다양한 변화를 줬다고 설명했다. “작품을 리프레시할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이 공연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조명 디자이너 폴 콘스타블이 참여해 전혀 다른 스타일로 접근했죠. 이 작품의 충실한 팬이라면 작은 변화들을 즐겁게 감상해주시길 바라요. 또 완전히 새로운 캐스팅도 등장해요. 한국 관객에게 새 세대의 무용수를 소개할 순간을 기대하고 있어요. 작품마다 자신만의 해석을 가지고 오는 새로운 무용수 덕분에 이 작품은 계속해서 신선하게 살아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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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한 전 세계적 안무가 매튜 본. 엘지아트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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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설명처럼 이번 무대엔 주역인 ‘백조’역으로 윌 보우지어와 맥스 웨스트렐이 새롭게 합류해 파워풀한 춤과 섬세하게 벼린 연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자란 무용수들이 이제 그의 무용단에 입단하고 있다. “<백조의 호수>는 현재 출연하는 무용수들을 포함해 많은 젊은 관객들이 무용계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고무시켜 줬어요. (이 작품에 출연하는) 많은 무용수가 극장에 와서 처음 본 무용 작품이 이 작품이었다고 해요. 그런데 그들은 이제 이 작품의 일부가 됐습니다. <백조의 호수>는 아직도 사람들을 감동하게 하고 영감을 줍니다. 그게 아직도 우리가 이 작품을 공연하는 이유겠죠.”
늘 무한한 상상력에 둘러싸인 스토리를 들고 관객을 찾는 매튜 본에게 ‘춤’은 어떤 의미일까? “춤은 스토리텔링과 손을 잡고 함께 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용수들에게 하는 이야기는 안무에 대한 것만이 아닙니다. 제 작품의 핵심은 스토리텔링인 만큼 무용수들은 또한 모두가 탄탄한 실력을 갖춘 연기자가 되어야 하죠.”
‘고전의 재해석’에 푹 빠져 <백조의 호수> 외에도 <호두까기 인형>, <가위손>, <레드 슈즈>, <로미오와 줄리엣> 등을 현대적 시각으로 풀어낸 그에게 앞으로 ‘마법의 손길’을 더해 보고 싶은 또 다른 작품이 있는지 물었다. “하고 싶었던 작품을 이미 많이 만들어 새로운 것을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어요. 모든 훌륭한 이야기가 춤추는 것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저 스스로 묻곤 하죠. 언제, 왜, 그들이 춤을 출까? 라고.” 그 질문에 답을 주는 작품이 그의 다음 신작이 될 듯하다. 10월9~20일 역삼동 엘지아트센터. 6~14만원. 02)2005-0114.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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