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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0 17:54 수정 : 2019.10.11 00:24

이이난 작가의 설치 작품 <기념비>와 <나란히 서는 시간>. 이 작가는 경찰이 민주인사들을 고문했던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대공분실)의 3층 조사실 욕조에 물과 돌을 채워 넣고 산나무와 죽은 가지가 붙은 <기념비>를 세웠다. 조사실 다른 쪽에는 당시 고문받은 피해자 유해우씨의 체험담이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헤드폰과 걸이스탠드 3개를 배치한 <나란히 서는 시간>이 욕조를 마주한다. 소리와 식물의 이미지가 고문의 공식적인 기록과 다른 층위에서 고통받은 사람의 기억을 끌어올린다.

[민주인권기념관 기획전 ‘끝없는 여지’]
임민욱 작가·국내외 청년 작가 13명
공포의 장소였던 김수근 건축 공간서
인권 유린 역사 여러 관점으로 성찰

김근태 물고문 때 다이알 비누 냄새
‘학림사건’ 유해우씨 육성 증언 등
시각에 청각·후각 더한 작품으로

이이난 작가의 설치 작품 <기념비>와 <나란히 서는 시간>. 이 작가는 경찰이 민주인사들을 고문했던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대공분실)의 3층 조사실 욕조에 물과 돌을 채워 넣고 산나무와 죽은 가지가 붙은 <기념비>를 세웠다. 조사실 다른 쪽에는 당시 고문받은 피해자 유해우씨의 체험담이 육성으로 흘러나오는 헤드폰과 걸이스탠드 3개를 배치한 <나란히 서는 시간>이 욕조를 마주한다. 소리와 식물의 이미지가 고문의 공식적인 기록과 다른 층위에서 고통받은 사람의 기억을 끌어올린다.
어른의 몸이 온전히 들어갈 수 없는 ‘수상한 욕조’에, ‘수상한 나무’가 심어졌다.

30여년 전 수사관들이 물 먹이며 사람을 고문하던 좁은 욕조다. 거기에 물과 돌이 채워지고 살아 있는 식물의 몸체가 옮겨진 것이다.

이이난 작가는 1970~80년대 경찰이 김근태, 박종철 등 민주인사들을 물고문했던 서울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옛 대공분실) 3층 옛 조사실 욕조 안에 죽은 가지들을 붙인 생나무로 <기념비>를 만들어 최근에 세웠다. 당시 숨이 컥컥 막힌 피해자들이 공포에 절어 지켜보았던 조사실 내부는 지금도 온통 적색 타일로 덮여 있다. 원형이 보존된 조사실 한쪽의 물고문 현장을 식물이 차지한 광경은 비현실적이고 생경하다. 그럼에도 욕조 물에 식물이 잠겼다는 사실 탓에 과거의 참혹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욕조를 마주한 조사실 다른 쪽에는 <나란히 서는 시간>이란 설치 작품이 놓였다. 80년대 초 ‘학림사건’에 연루돼 여기서 고문받았던 피해자 유해우씨의 육성 증언이 흘러나오는 헤드폰과 걸이스탠드 3개를 배치해놓았다. 고문으로 심신이 망가졌던 유씨는 수년간 치유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민주인권기념관이 된 그 공간에서 보안관리소장이자 해설사로 일하며 역설의 시간을 살고있다. 관객은 나란히 세워진 헤드폰 걸이대 옆에 차례로 서서 그의 육성을 듣는다. 스탠드 앞에 서서 욕조의 식물을 바라보며 권력의 폭력에 몸이 짓밟혔던 유씨의 목소리를 듣는 관객들은 고문 공간의 역사를 계속 기억해야 하는 이들이 결국 타자임을 깨닫게 된다. 그래서 작가의 작업은 박제된 아카이브로 남은 고문과 인권 말살의 공식 기록과는 다른 층위에서 고통받은 이들의 기억을 끄집어내어 공유하게 하는 체험 무대가 된다.

건물 3층의 한 방에 차려진 이유지아 작가의 설치 작품 <말랑말랑한 모듈러 #2>. 다이알 비누를 간 가루로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도를 만다라 도상처럼 방의 바닥에 그려놓았다. 과거 이곳에서 민주화운동가 김근태가 물고문을 받을 당시 수사관들이 뒤집어씌웠던 수건에 밴 다이알 비누 냄새에 질려 그 뒤로 다시는 그 비누를 쓰지 못했다는 일화를 토대로 만들었다.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 지난 5일부터 차려진 임민욱 작가(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와 그의 제자·후배들의 기획전 ‘끝없는 여지’는 사유와 상상의 힘이 넘치는 난장이다. 참여 작가들은 지난 1년간 건축가 김수근(1931~1986)이 1976년 설계해 완공한 건물 내·외부의 건축적 내력과 공간에 뒤얽힌 과거 인권 유린의 역사를 제각기 다기한 관점으로 성찰하고 조사했다. 그 결과물로 나온 작품들은 국가폭력과 인권 문제를 지금 시대에 기억, 교감하는 또 다른 시간을 만들어냈다.

임 작가는 지난 8월 일본 아이치 트리엔날레 본전시에 참가했다가 ‘평화의 소녀상’ 특별전시가 중단된 데 맞서 전시를 거부했던 참여 미술가다. 기획을 맡은 그는 ‘선 긋기’에 반대한다는 것을 이 전시의 원칙으로 삼았다. 독재정권의 악행 현장으로 이 장소가 전형화하고 신성화하는 것에 저항하면서 온전히 지금 시대 모든 세대의 기억으로 소환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예술의 방식을 국내외 청년 작가 13명과 함께 고민했다. 실제로 작가들은 70~80년대 인권 유린 탄압의 공간이던 남영동 대공분실의 역사를 동시대의 다양한 감각으로 재해석한 작품들을 건물 공간 곳곳에 내놓았다.

강라겸 작가는 몸에 새기는 문신 작업을 통해 옛 남영동 대공분실의 건축 공간에 어린 공포의 기억들을 색다르게 환기한다. 건물 1층에서 5층으로 피의자들을 데리고 올라갔던 급경사의 회전 계단 앞에서 계단의 휘어진 선을 모티브로 한 체험자의 등에 문신을 새긴 모습이다.
건물 3층의 한 방에 차려진 이유지아 작가의 설치 작품 <말랑말랑한 모듈러 #2>는 기억을 공유하는 매개체로 냄새를 들여놓았다. ‘다이알 비누’를 갈아 만든 가루로 김수근 건축사무소에서 작성한 남영동 대공분실의 설계도를 만다라 도상처럼 방 바닥에 재현해 놓았다. 과거 이 건물에서 물고문을 받은 민주화운동가 김근태가 당시 수사관들이 뒤집어씌웠던 수건에 밴 다이알 비누 냄새에 질려 그 뒤로 다시는 그 비누를 쓰지 못했다는 일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고 한다.

강라겸 작가는 몸에 새기는 문신 작업을 통해 옛 대공분실의 건축 공간에 어린 공포의 기억들을 색다르게 환기한다. 건물 1층에서 5층으로 피의자들을 데리고 올라갔던 급경사의 회전 계단 앞에서 계단의 휘어진 선을 모티브로 한 체험자의 등에 문신을 수놓았다. 감금실 문에 달린 조그만 감시용 외시경을 탁본으로 떠서 관객의 팔 등에 새겨주기도 했다. 소리와 향기가 청각·후각을 끌어들이거나 시각 자료와 뒤섞어 기록되지 않은 고문 시설의 숨은 기억들을 소환하려 애쓴 노력이 엿보인다.

김예슬 작가의 <분실>은 특정한 날짜의 특정한 시간에 ‘고문 공장’이 있던 옛 남영동 분실의 5층 창 여러 곳에서 수도관에 연결된 호스 물줄기를 지상에 쏟아낸다. 건물에 상수도 시스템이 어떻게 연결됐는지 조사하는 과정에서 착안한 이 작업은 기묘하면서도 강렬한 시각적 감동을 준다. 폭포나 눈물처럼 굉음과 함께 검은 벽돌 벽면을 적시며 쏟아지는 물줄기는 옛 분실이 지닌 음습한 비사의 덩어리들을 뱉어내는 듯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작가는 작업을 지난 5일과 8일 실연했고, 오는 12, 18일 두차례 더 실연할 예정이다.

김예슬 작가의 작품 <분실>의 실연 장면. 특정한 날짜의 특정한 시간에 ‘고문 공장’이 있던 옛 남영동 분실의 5층 창 여러 곳에서 수도관의 물줄기를 쏟아내는 이 작품은 기묘하면서도 뭉클한 시각적 감동을 안겨준다.
건축가 김수근은 생전 자신의 대표작인 서울 원서동 공간 사옥의 외벽을 수놓은 벽돌을 일컬어 “한장 한장 손으로 쌓는… 무한히 인간화한 과정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런 벽돌의 차분한 이미지가 무시무시한 고문 장소였던 남영동 옛 대공분실의 겉면에도 아름답게, 치밀하게 연출되었다는 ‘건축의 양가성’이 기획전의 문제의식 중 하나였다고 임민욱 작가는 말한다. 실제로, 지난 8일 전시공개 행사에서 참여작가들이 본관과 별관 사이 ‘바람골’이라고 부르는 틔움공간에서 벌인 떠들썩한 퍼포먼스는 그런 문제의식을 과시한 일종의 시위와도 같았다. 바람이 휭휭 통하고 소리의 울림이 크도록 만들어놓은 이 독특한 공간(건축가가 무슨 이유로 이 공간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에서 작가들은 인근 경부선 철도를 지나는 기차 굉음을 배경 삼아 건물 문을 쾅쾅 두드리고 소리 지르는 기행을 벌였다.

퍼포먼스와 더불어 3·4층에 펼쳐진 다기한 면모의 출품작들은 고문으로 얼룩진 건물에 함축된 민주와 인권의 가치야말로 예술이 개념화할 수 없는 실체임을 드러내려는 다양한 모색들이다. 일부 미술인들의 불편한 눈길이 없지만은 않다. 처절하게 인권이 박탈당했던 역사적 현장에서는 고증과 재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전제 아래, 과거의 엄숙한 사실 자체를 후대의 타자인 청년 작가들이 은유, 상징 등의 심미적인 소재로 활용한다는 것이 적절할까란 의문도 제기된다. 그럼에도 기억과 기록, 다큐와 아카이브·작품의 차이를 일러주고 고민하게 만드는 전시의 울림을 가볍게 지나치기는 어렵다. 억압과 피해에 대한 단정과 결론보다 인권과 국가폭력 문제를 부유하는 동시대 예술의 시점과 방식으로 교감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끝없는 여지’ 전은 기구한 옛 치안분실 건물의 현재적 의미를 끊임없이 사유하고 형상으로 떠내려는 작가들의 의지를 드러낸다. 18일까지.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참여 작가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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