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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0 18:57 수정 : 2019.10.10 19:46

전남 담양 ‘담양소리전수관장 권하경 명창은 박동실제 소리를 잇고 있는 소리꾼이다. 정대하 기자

[짬] 권하경 명창

전남 담양 ‘담양소리전수관장 권하경 명창은 박동실제 소리를 잇고 있는 소리꾼이다. 정대하 기자
‘하얀나비’의 가수 고 김정호는 판소리 명창 집안 출신이다. 그의 외할아버지가 박동실(1897~1968) 명창이다. 박동실은 해방 후 이준·안중근·윤봉길·유관순 등의 열사들의 삶과 투쟁을 기리는 <열사가>를 작곡한 음악인이었다. 근대 다섯명의 명창을 잇는 소리꾼으로 꼽혔던 박동실은 한국전쟁 때 월북했다. 이후 서편제의 중요한 가닥 중의 한 갈래였던 박동실제 소리는 이젠 계보조차 잇기 힘들게 됐다. ‘음악 박사’인 권하경(53) 명창은 최근 전남 담양의 ‘담양소리전수관장’을 맡아 박동실제 소리를 잇고 있는 소리꾼이다.

전남 담양 출신인 그는 국악 애호가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다섯살 때부터 카세트 테이프로 소리를 듣고 자랐다. 7살 때 광주 고 안채봉 명창에게 판소리 눈대목과 단가 등을 배웠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 때 고 한애순 명창(광주시 무형문화재 남도판소리 예능보유자)한테 박동실제 <심청가>를 사사했다. 박동실의 제자들 중 소수만 소리 맥을 겨우 이어가고 있을 때였다. 권 명창은 “박동실제 소리가 귀한 판소리라는 것을 알고 꼭 잇고 싶었다”고 말했다.

근대 오명창을 잇는 소리꾼이었던 박동실(1897~1968) 명창.
대학을 졸업한 권 명창은 박동실제 소리를 따라 경주로 갔다. 박동실제 소리는 “서편제의 예술적 지향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바디(제(制)나 유(流)의 뜻, 소리를 짠 이의 다음에 붙는다)”로 꼽힌다. 전남 곡성 출신의 명창 고 장월중선은 경주신라예술단을 창단한 뒤 경북도 무형문화재 가야금병창 예능보유자였다. 경주신라예술단 단원이 된 권 명창은 장월중선 명창한테서 박동실제 <심청가>를 닦고 또 닦았다. 서울 국립중앙극장 국립창극단 단원이 돼 상경한 뒤에도 정순임(장월중선 명창의 딸) 명창한테도 <심청가>와 <열사가> 등을 배우며 사제의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박동실제 소리로 네차례나 장원
담양소리전수관장 맡아 맥 이어
“한국전쟁 때 월북해 전수 어려움
남북 화해의 길 실마리될 수도”

‘심청가’ 연구로 한국음악 박사 학위
“유선 국악방송 하나 없어 안타까워”

박동실제 <심청가>만으로 무대에 서기조차 힘들었다. 권 명창은 “다른 소리를 다 마다하고, 박동실제 소리를 ‘보물 1호’로 생각하고 살았지만, 무형문화재 선생님한테 받는 이수증이 없어 소리판에서 붕 떠 있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다섯바탕 소리를, 동편제와 서편제 바디를 잇고 있는 ‘대선생님’들을 직접 찾아뵙고 배웠다. 그리고 중요무형문화재 <흥보가> 예능보유자였던 스승 고 박송희 명창의 이수자(2008년)가 됐다. 2006년 제7회 박동진 판소리 명창·명고대회에서 박동실제 <심청가>로 판소리부문 명창부 대통령상을 받는 등 국내 굵직한 판소리 경연대회에서 네 차례나 박동실제 소리로 장원을 한 유일한 소리꾼이다. 권 명창은 “이때부터 ‘담양으로 내려와 활동하면서 박동실제 소리를 이어가면 좋겠다’는 권유를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다섯바탕 소리와 <열사가>를 완창한 그는 이론 공부도 독하게 했다. 이화여대 한국음악학과 석사과정을 마친 뒤 국내 최초로 개설된 이화여대 한국음악과 박사과정을 마쳤다. 그리고 2010년 ‘심청가 진계면조에 관한 연구’라는 논문으로 이화여대에서 한국음악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세 가닥 <심청가>의 음악적 구성이 어떻게 다른지를 밝힌 빼어난 연구”라는 평을 받았다. 권 명창은 “박동실제 <심청가>를 올곧게 잇기 위해 담양소리전수관장이 되면서 주소도 아예 담양으로 옮겼다”고 말했다.

지난 달 28일 담양군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맨왼쪽)와 이경엽 목포대 교수(왼쪽 두 번째) 등이 주제발표를 했다. 정대하 기자
권 명창은 “그간 분단의 상흔으로 잊혔던 박동실제 소리가 남북간 예술교류를 이어갈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달 28일 담양군이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정병헌 전 숙명여대 교수는 “박동실 명창이 북한에서도 민족가극이나 혁명가극을 제작했는데, 이는 판소리 영역의 공간을 북한 예술까지 확대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경엽 목포대 교수는 “박동실이 직계 제자들과 녹음한 <판소리5가>(1967)를 꼭 확보해 남북화해의 길을 소리를 통해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명창은 지난 8월부터 담양소리전수관에서 판소리, 남도민요, 장고, 고법(소리북 치는 연주법) 강좌를 시작했다. 무엇보다 주민들 속에서 박동실제 소리가 널리 스며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권 명창은 “교육적 차원에서 초등학교 때부터 한국음악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초·중·고 때 평생 살아가면서 선택할 음악이 결정되거든요. 그런데 학교에선 서양음악만 가르치잖아요? 유선방송에 심지어 당구 채널까지도 있는데 국악방송 하나 없다는 게 정말 안타까워요.”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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