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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0.13 13:05 수정 : 2019.10.13 20:33

1전시실에 설치된 홍영인 작가의 신작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새장 같은 거대한 철망 구조물이 통로 양옆과 천장 곳곳을 둘러친 작품이다. 그 안의 통로를 거닐면 관객 스스로가 새장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동물과 인간의 위계 관계를 거꾸로 뒤집어보는 구도를 통해 사회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낯설게 짚어보고자 했다.

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 작가의 난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기획전

6개월 간 만든 신작 20여점 선보여
기발하고 개성적인 구조물·영상에
불평등·가족 해체·난민 문제 담아

1전시실에 설치된 홍영인 작가의 신작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 새장 같은 거대한 철망 구조물이 통로 양옆과 천장 곳곳을 둘러친 작품이다. 그 안의 통로를 거닐면 관객 스스로가 새장 속에 갇힌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실제로 동물과 인간의 위계 관계를 거꾸로 뒤집어보는 구도를 통해 사회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낯설게 짚어보고자 했다.
거대한 새장이 미술관 전시장을 둘러치며 뒤덮었다. 마실 것 널브러진 작업실의 어지러운 탁자와 주차타워 모양의 작품 수장탑, 가상공간을 떠돌아다니는 광물들의 영상 따위도 가세했다. 이들은 모두 작품 표찰을 달고 저마다 자리를 차지했다.

국내 미술계의 대표적인 상으로 꼽히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2019' 후보 작가 네 사람(김아영, 박혜수, 이주요, 홍영인)의 신작 전시회 풍경이다. 기존의 작품 개념이나 전시 틀과는 판이한 출품작들이 등장했다. 12일 서울 소격동 서울관 1층과 지하 전시실에서 시작된 이 전시는 지난 3월 수상 후보로 선정된 네 작가가 각각의 전시영역에서 여섯달간 만든 신작 20여점을 선보이는 자리다.

먼저 눈길을 맞는 건 1층 1전시실 들머리에 설치된 홍영인 작가의 신작 <새의 초상을 그리려면>이다. 새장 같은 거대한 철망 구조물이 관객이 지나가는 통로 양옆과 천장 곳곳을 둘러친 채 설치됐고, 철망 너머 벽 쪽에 새의 움직이는 몸짓이 투사된 작품이다. 철망 안 벽 쪽 공간이 훨씬 넓다. 안의 좁은 통로를 거니는 관객들은 오히려 새장 속에 갇혀 바깥 새들의 시선을 받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작가는 동물과 인간의 위계 관계를 거꾸로 뒤집어보는 구도를 만들어 사회 주류와 비주류 사이의 불평등 문제를 낯설게 짚어보고자 했다. 이런 의도는 그다음 공간에 나타나는 유럽의 ‘클럽 이네갈’ 연주자들의 연주 영상에서 더욱 극명하게 나타난다. 영상 속 클럽 연주자들은 관악기와 바이올린을 갈수록 격렬하게 움직여 새소리를 내면서 스스로 날짐승이 되려는 듯한 몸짓을 전달한다.

높이 10m를 넘는 이주요 작가의 작품 보관용 타워. 주차타워 같은 형상에 실제 작가의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3단의 선반형 얼개다. 작가는 이런 수장고 형식과 작품을 수장한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설정하며 작품과 수장고, 전시의 경계 허물기를 꾀했다.
1전시실 안쪽에 있는 박혜수 작가는 바싹 마른 개념과 통계의 작업들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특유의 ‘우리' 개념과 그 속성을 뜯어본 설문조사 문항과 응답 통계를 담은 색실 다이어그램 등이 보이고, 좀더 가면 가상의 인간렌털업체 ‘퍼펙트 패밀리’의 홍보물 작업이 나타나 눈길을 붙잡는다.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족이 되어 드린다’는 업체 선전 간판을 벽에 붙이고 가족과 애인을 빌려드리는 서비스 내역을 인쇄한 가상 홍보물 배포함을 놓아 가족 해체의 실상을 역설적으로 느껴보도록 한 작업이다.

그 아래 지하 2전시실에서 이주요 작가는 자신이 꿈꾸는 미래의 작품 창고 시스템 자체를 신작으로 실현했다. 높이 10m를 넘는 작품 보관용 타워와 작가 스튜디오의 널브러진 탁자가 출품작이다. 작품 보관용 타워는 주차타워 같은 형상에 실제 작가의 작품을 차곡차곡 쌓아올린 3단 선반 얼개다. 그 옆엔 드링크와 찻물병, 열린 종이봉투 등이 나동그라진 작업실 탁자도 작품 외피를 쓰고 나왔고, 뒤켠에는 실제 미술관 작품 수장고와 다를 바 없는 회화·조형물을 넣은 수장고 공간이 재현됐다. 이런 수장고 형식과 작품을 수장한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설정한 것은 작품과 수장고, 전시의 경계 허물기일 터다.

지하 전시실 안쪽에는 김아영 작가의 영상물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을 만날 수 있다. 구멍이 숭숭 난 다공성 계곡이란 가상공간에서 태어난 ‘페트라 제네트릭스’란 광물이 난민처럼 떠돌다 크립토밸리에 도착하고 그곳에 정착하기 위해 벌어지는 심사과정을 게임 같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제주섬의 예멘 난민 문제를 모티브로 깔고 바위와 대지신앙으로 대표되는 몽골의 유사설화 등이 내용에 녹아든 복잡미묘한 영상설치 작품이다.

지하 1층 2전시실 안쪽에서는 김아영 작가의 독특한 영상물 <다공성 계곡2: 트릭스터 플롯>을 만날 수 있다. 다공성 계곡이란 가상공간에서 태어난 ‘페트라 제네트릭스’라는 광물이 난민처럼 떠돌다 크립토밸리라는 곳에 도착하고 그곳에서 정착하기 위해 벌어지는 심사과정을 게임 같은 영상으로 보여준다. 제주섬의 예멘 난민 문제를 작품 모티브로 깔고 바위와 대지신앙으로 대표되는 몽골의 유사설화 등이 내용에 녹아든 복잡미묘한 영상설치 작품이다.
1전시실 안쪽에 차려진 박혜수 작가의 전시공간 중 일부. ‘당신이 원하는 완벽한 가족이 되어 드린다’는 가상의 인간렌털업체 ‘퍼펙트 패밀리’의 선전 간판을 벽에 붙이고 실제 인쇄한 홍보물의 배포함을 설치해 가족 해체의 실상을 역설적으로 느껴보도록 이끄는 작업이다.
4인4색이라 할 출품작들은 모순된 면모를 띤다. 드러나는 외양과 구조는 기발하고 개성적이면서도 세부를 보면 어디서 본 듯 진부하고 표피적인 느낌을 함께 안겨주는 까닭이다. 장르, 소재 등의 경계를 허물고 뒤섞는 혼종과 복제를 즐겨 구사하는 세계 미술판의 흐름을 적나라하게 숙지하고 반영했다는 인상을 준다. 작품들을 돌아본 한 미술계 기획자는 “글로벌 미술판의 특징과 스타일에 적절하게 조율될 수 있도록 갈고닦은 느낌이 여실한 전시회”라고 평했다.

전시는 내년 3월1일까지. 미술관과 재단 쪽은 전시 작품을 심사한 뒤 다음달 28일 최종 수상자(상금 1천만원)를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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