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민예총 이사장 지낸 고승하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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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순이 넘은 고승하 작곡가는 요즘도 매일 창원 시내 사무실에 나와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른다. 사진 최상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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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날더러 신세 조졌다 한다/ 동료들은 날보고 걱정된다고 한다/ 사람들아 사람들아 나는 신세 조진 것 없네/ 친구들아 너무 걱정 말라 이렇게 열심히 살아가지 않는가/ 노동운동 하고 나서부터 참 삶이 무엇인지 알았네.’
1980~90년대 학생·노동운동 현장에서 널리 불렸던 민중가요 ‘고백’의 한 대목이다. 하지만 이 노래를 만든 이가 누구인지 아는 이는 드물다. 1984년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에 실린 53행의 장편시 ‘아름다운 고백’에서 가사를 따서 곡을 지은 이는 바로 원로 작곡가 고승하(72) 전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민예총) 이사장이다. 음악인생 반세기를 맞은 그를 30일 경남 창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80년대 민중가요 ‘고백’ ‘편지’ 등 지어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동요도 실려
초등2 때 첫 작곡 서른 넘어 음대 진학
2300여곡 만들어어…‘아름나라’ 합창단 활동
새달 2일 후배들 ‘음악인생 50년 기념’ 공연
‘고승하 평전-씨앗심기’도 출간
분위기가 완전히 다른 노래도 있다. ‘그립다고 써 보니 차라리 말을 말자/ 그냥 긴 세월이 지났노라고만 쓰자// 긴 긴 사연을 줄줄이 이어/ 진정 못 잊는다는 말을 말고/ 어쩌다 생각이 났었노라고만 쓰자// 긴 긴 잠 못 이루는 밤이면/ 행여 울었다는 말을 말고/ 가다가 그리울 때도 있었노라고만 쓰자.’
가수 안치환이 부른 ‘편지’이다. 이 역시 고씨가 1985년 만든 노래이다. 그는 애초 윤동주 시인의 작품으로 알고 ‘편지’를 작곡했으나 노래를 발표한 이후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금까지 이 노래의 작사가는 ‘미상’이다.
이런 노래도 있다. ‘오줌 싸도 이쁘고/ 응아 해도 이쁘고/ 잠을 자도 이쁘고/ 잠을 깨도 이쁘고/ 이리 보아도 이쁘고/ 저리 보아도 이쁘고/ 앙앙 울어도 이쁘고/ 얼럴럴 둥게 둥게/ 꽃 중의 꽃 우리 아가/ 얼럴럴 둥게 둥게/ 방 안의 꽃 우리 아가.’
초등학교 음악 교과서에 실려 있는 동요 ‘방 안의 꽃’이다. 이 역시 고씨가 2009년 김용택 시인의 시로 만든 노래이다.
그는 20대 초반부터 지금껏 2300여곡의 노래를 만들었고, 다양한 음악단체를 이끌고 있다. 동요·운동가요·복음성가가 많지만, 그의 노래는 기악곡만 빼고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있다.
김산·박영운·최진우·하동임·이경민·제호선·하제운·지니·맥박·우창수·김은희 등 경남에서 주로 활동하는 후배 음악인들이 ‘작곡가 고승하의 음악인생 50년’을 기념하는 헌정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은 새달 2일 저녁 7시 경남 창원시 성산아트홀에서 열린다. 이에 맞춰 김유철 시인은 <고승하 평전-씨앗심기>를 펴낸다.
“여러 후배들이 나를 위해 헌정공연을 한다는데, 헌정이라는 이름이 무거울 뿐입니다.”
공연을 사흘 앞둔 30일 그는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한명 한명 사라지고 나니까, 어느새 내가 가장 앞 줄에 서 있더군요. 남들 앞에 나서서 말하는 재주가 없어서 이야기를 듣기만 했더니, 사람들이 나를 착하고 순한 사람으로 봐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올해 ‘음악인생 50년’이라지만, 그는 실은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작곡을 했다. 음악에 조예가 깊었던 부모의 영향이 컸다.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녔는데, 초등학교 4학년 때는 그가 만든 곡으로 교회에서 성탄절 공연을 하기도 했다. 정식으로 음악을 공부한 것은 1979년 서른 살이 넘어서 마산대(현 창원대) 음악과 1기로 들어가면서부터였다. 성악 전공으로 입학했던 그는 3학년 때 작곡으로 전공을 바꿨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남해상고를 거쳐 마산여상 음악교사로 재직하다 1989년 그만두고 전업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는 1989년 옛 마산시 회원동에 있던 민중교회였던 두레교회에서 ‘회원동 아이들’이라는 어린이 합창단을 만들었다. 합창단은 그가 작곡한 ‘가자 아름다운 나라로’(작사 황선하)를 즐겨 불렀고, 1992년 진주 경상대 공연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아름나라’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전국 곳곳에 아름나라 어린이 합창단이 생겨서, 가장 많을 때는 34개의 합창단이 활동하기도 했다.
지난 30년 동안 그는 아름나라를 위해 1000여 곡의 동요를 작곡해, ‘아름나라 동요’라고 불릴 정도다. 아름나라 동요 중에는 ‘방 안의 꽃’이 가장 널리 알려졌지만, 그 자신은 “2004년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열린 ‘5·18’ 24돌 기념식에서 부른 ‘선생님, 광주의 오월을 아세요?’가 가장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1997년에는 자신을 포함한 50대 중반 남성 3명으로 이뤄진 ‘동요를 부르는 어른모임’도 만들었다. 이들은 빨간 웃옷에 멜빵 청바지를 입고 공연했다. 이 모습을 본 고 이선관 시인이 “철부지들아!”라고 불렀고, 이후 모임 이름이 ‘철부지’가 됐다. 원년 멤버 중 1명이 사망하면서 구성원은 바뀌었지만, 철부지는 지금도 1년에 50여차례 공연할 만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5년 4월부터 ‘여고시절’ 노래모임도 이끌고 있다. 여성 4명이 여고시절 교복을 입고 노래를 부르는데, 이들은 80대 1명·70대 3명으로 이뤄진 할머니 단원이다. 2017년부터는 아름나라 동요를 부르는 엄마들의 모임인 ‘동요맘’ 중창단도 이끌고 있다.
그는 음악가로서 사회활동도 활발히 펼쳤다. 1984년 민요연구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했고, ‘우리 노래를 일구는 작곡가 모임’과 ‘민족음악인협의회’ 대표도 맡았다. 1989년에는 민예총 창립에 참여했고, 2005년 경남민예총 초대 이사장을 거쳐,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4년 동안 민예총 이사장을 맡았다. 2011년 풀꽃동요제, 2014년 이쁜노랫말 대회 등도 창설했다.
“가요에 대한 거부감이 없었고, 동요를 얕잡아보지도 않았기 때문에 다양한 장르의 곡을 많이 작곡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저작권은 전혀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많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듣고 불러주는 것이 고맙고 기쁠 뿐이죠.”
고씨는 “지금까지 만든 노래를 장르별로 정리하고, 많은 사람들이 활용하기 쉽도록 악보를 음원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는 것이 남은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상원 기자 cs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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