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울의 내마음속 도서관
김별아 지음/해냄(2016) “우리 모두는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라는 구호가 더 이상 낯설지 않은 요즘이지만, ‘페미니스트’라는 단어를 꺼낼 때마다 여전히 가슴 한 구석이 답답하고 아리다. 그 단어를 쓰지 않고도 그 단어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그런 단어가 따로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페미니스트라는 단어가 나에겐 콤플렉스가 되어버린 듯하다. 페미니즘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한번도 매끄럽게 대화가 진행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돌이킬 수 없이 상처받고, 누군가는 별 생각 없이 상처를 주고 자신이 가해자인지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서고, 또는 상처를 주고받을까 봐 아무도 진심으로 솔직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기도 했다. 그렇게 아직도 충분히 수면 위로 떠오르지 못한, 내성화된 페미니즘은 우리들의 집단적 트라우마가 되었다. 요새는 이토록 아픔도 상처도 많은 페미니즘을 생각하기 전에, 우선 ‘여성의 삶’을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만 같아서. ‘이즘’을 논하기 전에 우선 ‘인간’을 생각하고 싶어졌다. 김별아의 <탄실>이 그려낸 한국 최초의 여성소설가 김명순의 삶은 페미니즘이 아직 발도 붙이기 이전의 사회에서, 한번도 제 몸의 주인이 되지 못한 여인이 겪은 맨발의 투쟁이었다. 자유연애주의자, 스캔들 메이커, 데이트폭력의 희생자, 기생 출신 소실의 딸. 김명순을 따라다닌 지긋지긋한 꼬리표들이다. 그 악명높은 꼬리표를 만든 이는 누구일까. 바로 조선의 남성들이었다. 데이트를 빙자하여 그녀를 강간한 리응준, 김명순을 등장인물로 삼아 악의적인 작품을 쓴 소설가 김동인을 비롯하여 수많은 남성들이 김명순을 ‘더럽혀진 여자, 문란한 여자’로 낙인찍었고, 그녀는 성폭력의 희생자였음에도 오히려 소문과 미디어로 한껏 부풀려진 스캔들의 주인공이 되어 평생 수치심과 싸워야 했다. 어린 시절부터 ‘바느질이 싫다, 학교에 보내달라’고 당당히 요구했던 총명한 소녀 김명순은 진명학교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고, 어린 나이에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으나 인생은 순탄치 못했다. 리응준은 그녀를 겁탈한 뒤 내팽개쳤고, 사람들은 ‘몸을 더럽히고 버림까지 받은 여학생’을 갖은 입방아로 조리돌림했다. 그 혼란과 고통 속에서 그녀를 붙든 단 하나의 등불이 바로 글쓰기였다. “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죽지 않기 위해 문학을 부둥켜잡았다. 미치지 않기 위해 창작에 몰두했다.” 그녀는 그렇게 문학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나아가 고통 받는 조선의 여인들을 구하고 싶었지만, 불도장처럼 그녀에게 찍힌 주홍글씨는 영원히 지워지지 않았고, 그녀는 세간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말았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일본의 식민지이지만 탄실이라는 여성은 그 식민지 남성의 또 다른 식민지였다.” 미치지 않기 위해, 죽지 않기 위해 글을 썼던 한 여인의 투쟁을 보며 나 또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의 장벽을 뛰어넘고자 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녀처럼, 아무것도 아닌 채로, 모든 것을 쓰기 위하여. 무엇에도 구속받지 않고, 무엇에도 굴하지 않고, 한순간도 자유와 행복을 포기하지 않는 ‘인간’이 되기 위하여. 나는 오늘도 온힘을 다해 읽고, 듣고, 말하고, 쓴다. 언어는 이 불평등한 세상에서 그나마 평등하게 주어진, 너무도 간절한 무기이므로. 정여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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