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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2.19 21:02 수정 : 2019.02.20 02:37

[짬] 우리문화가꾸기회 이훈석 대표

이훈석 우리문화가꾸기회 대표가 2월 12일 한겨레신문사를 방문해 ‘2019 독도 사료집 달력’ 일어판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김경애 기자
“그동안 ‘독도가 한국 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일본의 ‘고지도선집’과 ‘일본 고지도에 나타난 독도’ 달력을 만들어 일본과 세계 각국에 보냈었는데, 책보다는 달력이 일상성과 편리성 덕분인지 반응이 더 좋았어요. 오는 22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에 반박하는 독도 사료를 달력으로 정리해서 일본에 보낼 겁니다.”

우리문화가꾸기회 이훈석(73) 대표는 19일 관훈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10여년 동안 직접 발굴해온 독도 고지도와 문헌 기록 등 사료들을 총망라해 일상 속에서 손쉽게 확인해볼 수 있도록 만든 ‘2019 독도사료집 달력’을 공개했다.

‘2019 독도 사료집 달력’ 일본어판 제작
고지도·문헌 등 한·일 사료 총망라
호사카 유지 독도연구소장 ‘번역’ 맡아

시마네현 주장하는 ‘다케시마의 날’에
일본 중의원·참의원 등 1천여명에 배송
“일상생활 속에서 늘 ‘역사’ 확인하길”

‘독도 지킴이’ 이훈석 대표가 19일 서울 관훈클럽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2019 독도 사료집 달력’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 우리문화가꾸기회 제공
우리문화가꾸기회는 앞서 ‘일본고지도선집’과 ‘2016 달력-일본 고지도에 나타난 독도’를 각각 500부씩 한글과 영문판으로 만들어 일본을 포함한 국내외 연구기관과 대사관 등에 보냈다. 이번에 ‘2019 독도사료집 달력’은 한글과 일어판으로 1천부를 제작했다.

“지난해 10월22일 ‘독도의 날’을 사흘 앞두고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 13명이 독도를 방문했어요. 그러자 ‘일본 영토를 지키기 위해 행동하는 의원연맹’(회장 신도 요시타카 의원)에서 한국 쪽에 ‘독도가 한국 영토임을 증명할 증거를 제시하라’고 공개 질문서를 보내왔다는 거예요.”

이 대표는 질문에 대한 화답으로 일본 의회의 중의원(465명)·참의원(242명)을 비롯해 공공도서관·대사관 등에 달력을 집중적으로 보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연말 ‘사료집 달력 시안’을 완성한 뒤 제작비 마련을 위해 동분서주해온 이 대표는 재외동포교육진흥재단(이사장 영담 스님)의 후원과 일본계 한국인이자 세종대 독도연구소장인 호사카 유지 교수의 ‘일본어 번역’ 재능기부가 큰 힘이 됐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유학 15년 만인 2003년 귀화한 호사카 교수는 2011년 국회 독도특위 독도공로상, 2013년 대한민국 홍조근정 훈장에 이어 2015년 일본계 인사로는 처음 독립기념관 이사를 맡기도 했다.

“호사카 교수는 단순히 ‘한국 땅 독도를 인정하는 일본인’이라서가 아니라 한-일 관계사 전공으로 ‘가장 객관적인 독도 전문가’여서 번역을 요청했어요. 그만큼 달력에 선정해 실은 ‘사료’의 내용에 자신이 있거든요.”

실제로 이번 달력에는 이 대표가 세미원 원장 시절인 2007년부터 ‘독도·태극기·무궁화를 주재로 한 나라사랑정원 프로젝트’에 따라 수집하고 발굴해온 ‘한·일 두 나라의 독도 사료’들이 12개월에 걸쳐 일목요연하게 그림·사진을 곁들여 정리돼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새 사료는 3월·4월 편에 잇따라 소개해놓은 ‘안용복과 뇌헌 스님’에 관한 기록이다. 두 인물이 1693년(숙종 19년)과 1696년 두 차례에 걸쳐, 일본에 건너가 막부로부터 ‘울릉도와 독도에 다시는 오지 않겠다’는 약속과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국 영토라는 서약서’를 받아 온 이야기는 유명하다. 하지만 지금껏 ‘노비’로 알려진 안용복은 신분을 위장한 ‘사신’이었고, 뇌헌 스님도 순천 송광사가 아니라 여수 흥국사에서 승병을 지휘했던 장군이란 사실을 일본 사료와 흥국사 답사 자료 등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1월은 ‘우산·무릉(울릉) 두 섬이 강원도 울진현의 정동쪽 바다에 있다’고 명시해놓은 1454년의 <세종실록지리지>(세종 14년)로 문을 연다. 우산도(독도)가 공식 등장한 첫 지리지다. 2월에는 ‘일본 영토와 조선 영토를 색으로 구분해놓은, 독도에 관한 일본 최초의 고지도 ‘은주시청합기’(1667년)와 일본 지리학자 나가쿠보 세키스이의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1779~1846년)를 실었다. 특히 일본 외무성 누리집에서 독도 영유권 주장의 근거로 게시해 놓고 있는 ‘개정일본여지노정전도’에 대해서는 역추적을 통해 ‘울릉도와 독도를 조선 땅’으로 인정한 근거 자료로 밝히고 있다.

5월에는 ‘울릉·독도 두 섬이 조선의 소유’임을 밝힌 에도시대 일본 대표 지리학자 하야시 시헤이가 제작한 1802년판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와 1937년 일본 육군성에서 하야시의 ‘삼국통람여지노정전도’(1785년판)를 수정·보완해 펴낸 ‘대삼국지도’를 소개한다. 이 역시 2015년 이 대표가 일본 고서점에서 발굴해 처음 공개한 사료 가운데 하나다. 6월에 실린 ‘울릉도와 독도는 일본과 관계없다’는 일본 태정관지령은 1877년 일본 메이지 정부의 최고기관인 태정관에서 내무성을 통해 시마네현에 내려보낸 공문서로, 독도가 조선 영토임을 최종 확인한 사료다. 7월은 ‘울릉도와 독도를 관할하라’는 1900년 10월25일 고종의 ‘대한제국 칙령 제41호’를 담았다. 2000년 독도수호대가 지정하고 서명운동을 펼친 끝에 2010년 경술국치 100년을 계기로 지정된 ‘독도의 날’의 기원이다. 8월에는 ‘석도는 독도의 전라도 방언’이라는 최초의 문헌 기록인 1938년판 문세영의 <조선어사전>이 등장한다. 2016년 이 대표가 첫 발굴해 공개한 사료로, 고종의 칙령41호에 적힌 ‘석도’가 ‘독도’란 사실을 밝히는 근거가 됐다. 9월에는 ‘울릉도 높은 곳에 오르면 량고도(독도)가 보인다’는 1903년 일본에서 발간한 한국 진출 안내서인 <한해통어지침>(구즈 슈스케)의 강원편에 실린 기록을 볼 수 있다. 1905년 이전까지 일본인 스스로 독도를 울릉도의 속도로 표기하고 인정한 기록들 가운데 하나다. 10월에 등장하는 ‘독도 영토 편입 및 임대에 관한 일본 내각 청원문’과, 11월의 ‘독도는 주인 없는 섬이니 오키섬이 관할하라’는 일본 내각 결정문은 모두 1905년 일본 정부 문서들이다. 일본이 그때까지 ‘조선 영토’로 인정해온 독도를 뒤늦게 차지하고자 ‘무주지’라는 국제법상 근거를 남긴 것이다. 12월에는 ‘울릉도 독도는 조선구역’이라고 표시한 1936년 일본육지측량부의 지도구역 일람도를 담았다. 1945년 8월15일 일제가 패망하고 연합국이 일제 식민지를 해체할 때 ‘독도를 대한민국 고유영토로 인정한 근거 기록’이다.

이 대표는 3월 중에 심포지엄을 열어 새 사료들의 의미를 다시 한번 알릴 계획이다.

김경애 기자 ccand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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