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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22 06:01 수정 : 2019.11.22 16:47

윤비의 이미지에 숨은 정치
(16) 빛, 진리, 민주주의

교회 돔·첨탑으로 들어오는 빛줄기, 기독교적 진리와 부활 형상화
독일 공공건축에서 자주 등장하는 투명한 유리는 나치 범죄 반성 뜻

영국 케임브리지셔의 도시 일리에 있는 일리 대성당의 팔각형 돔. 출처: 위키피디아 코먼스

빛은 진리 혹은 그 진리의 근원이 되는 초월적인 힘의 메타포이다. 세계사의 여러 종교와 철학에서 빛은 인간에게 우주와 세계와 삶의 의미를 밝혀주고 최종 목적지로 인도할 일종의 가이드로서 그려진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이다. 요한복음 1장은 신을 빛으로 부른다.

빛의 이와 같은 상징적 의미는 중세에 만들어진 성당들 곳곳에 구현되어 있다. 예를 들어 영국 일리(Ely) 대성당의 팔각형 돔이 그렇다.(사진 1·2) 일리 대성당의 팔각형 돔은 교회의 상징체계에서 십자가의 중심 바로 위에 솟아 있다. 기독교의 상징체계에서 8은 재생과 부활의 의미를 갖는다. 중세 교회건축에서 많은 돔이 팔각형의 모양을 직접 띠고 있거나 응용하고 있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일리 대성당의 팔각형 돔 한가운데를 올려다보면 그곳에는 신-예수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 창으로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다시 그 아래로는 천사들이 그려진 패널이 빙 둘러 있다. 돔에서 쏟아진 빛을 따라 시선을 좀 더 아래로 내리면 사도와 성인들이 새겨진 조각과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있다.

그림2. 일리 대성당 팔각형 돔의 내부 모습. 출처: 위키피디아 코먼스

일리 대성당 팔각돔에서 만나는 신의 은총

일리 대성당의 팔각돔으로부터 그 아래로 이어져 내려오는 공간에는 이처럼 신의 지배와 구원으로의 인도가 형상화되어 있다. 돔이 세워진 곳, 즉 빛이 내리비치는 곳은 성당의 중앙 부분, 즉 위아래로 뻗은 통로와 좌우로 뻗은 통로가 교차하는 곳이다.(사진 3)

그림3. 일리 대성당 평면도. 위키피디아 코먼스.

지난 10회 글에서 이야기하였듯 이 중심의 윗부분, 다시 말해 루드 스크린(rood screen: 제단과 성가대석이 있는 구역 앞에 놓인 일종의 차단구조물), 성가대석과 사제석 및 제단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천국을 상징한다. 따라서 중앙돔이 서는 중앙부는 지상의 인간이 천상을 만나는 곳이다. 즉 돔 아래의 공간은 인간의 구원이라는 테마를 평면과 수직공간을 통해 동시에 표현한다. 이런 상징은 일리 대성당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팔각돔이나 유사한 첨탑도, 그를 통해 들어와 교회의 중앙부를 비추는 빛도 모두가 교회 건축에서 오랜 세월 동안 반복하여 구현되고 응용되었다.

‘열린 민주주의’ 상징하는 베를린 의회 의사당

이제 전근대에서 눈을 돌려 현대 민주주의의 기념비적인 건축물 중 하나인 베를린의 독일연방의회 의사당 건물로 시선을 옮겨보자.(사진 4) 영국의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이 건물은 1894년에 독일제국의회 의사당으로 건설되었다. 그리고 1933년 나치가 집권하던 해에 화재로 파괴되었다. 나치는 이 화재를 공산주의자들의 방화로 낙인찍고 이를 빌미로 공산주의자에 대한 탄압에 나섰다. 이 건물이 다시 독일의회의 회합 장소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통일이 되고도 거의 10년이 다 돼가던 1999년이었다.

독일 베를린 연방의회 의사당 전경. 노먼 포스터 누리집

독일 현대정치사의 굴곡을 상징하는 이 건물의 윗부분에는, 그림에서 보듯 거대한 유리돔이 세워져 있다. 이를 통과한 빛은 다시 유리지붕을 통과하여 의사당 대회의실을 비춘다. 원래 1894년에 세워진 건물의 돔은 이렇게 개방된 구조가 아니었다. 그러나 의사당을 개축하면서 이와 같이 개방된 형태의 돔을 씌우자는 의견이 받아들여졌다.

의사당에 유리돔을 씌운다는 아이디어는 투명성을 강조하는 전후 독일 공공건축의 흐름과 연관되어 있다. 베를린으로 연방의회가 옮겨가기 전에 쓰던 본의 의사당 역시 대량의 유리를 사용하여 투명성이라는 이념을 구현했다. 여기서 투명성은 민주주의를 상징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권자인 국민은 의회 안에서 오가는 모든 말, 이루어지는 모든 행동과 결정을 알 권리가 있으며, 의회는 국민의 통제를 벗어난 어떠한 행위도 해서는 안 된다. 베를린 의사당의 유리돔도 마찬가지의 이념을 표현한다.

왜 독일의 공공건축이 이렇게 투명성을 통해 국민주권이라는 원리를 강조했는지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치는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조차 말살하고 전 국가를 병영화하였다. 그리고 그 힘으로 유럽을 전쟁의 참화로 밀어넣고 심지어 가장 반인륜적인 학살을 저질렀다. 독일의 역사는 독재와 전체주의에 휘둘린 국가는 가장 무서운 범죄집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전후의 독일 민주주의는 그에 대한 반성 위에 건설되었다.

그러나 베를린 의사당의 유리돔은 단지 투명성이라는 정치이념의 상징적 구현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유리돔은 연방 의사당이라는 이 거대한 석조물에 형이상학적이고 철학적인 의미를 덧씌운다. 이미 보았듯이 기독교의 상징론에서 천장의 돔을 통해 들어온 빛이 쏟아지는 교회의 중심부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서구인들에게 익숙한 이 이미지가 연방 의사당에서는 하늘의 유리돔과 그를 통해 들어온 빛이 마지막으로 머무는 대회의장으로 구현된다. 국민의 대표로서 의원들이 모여 토론하는 대회의장은 곧 진리가 머무는 자리이다. 대회의장에서 이루어지는 민주주의적 토론이야말로 공동체를 인간의 삶을 끝없이 위협하는 타락과 쇠락의 위험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다. 대회의장은 구원의 장소이다. 여기서 의사당 건물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그곳에 깃들어 있는 이러한 상징적 차원을 얼마나 의식하는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상징이란 때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강력하다.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을 방문한 관람객들은 돔 아래 서서 발밑 아래 대회의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노먼 포스터 누리집

유리돔이 구현하는 메타포의 향연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리돔 관람객들은 발아래 대회의장의 유리지붕을 통해 대회의장 내부를 내려다본다.(사진 5) 일부는 대회의장 유리지붕 주변에 모여 지금 회의가 열리는지, 누가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해하며 안을 들여다본다. 이러한 광경은 일리 대성당의 팔각돔을 통해 쏟아지는 빛 주변에 도열해 있는 성인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의사당에 구현된 진리와 구원의 메타포의 세계 속에서 그렇게 관람객들은 성인의 자리를 차지하고 서게 된다.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상징계의 한 부분이 된다.

필자는 이러한 상징적 일치가 단지 우연은 아니라고 믿는다. 오랫동안 서구인의 세계관과 상상력을 지배해온 기독교의 상징구조들이 은연중 현대 문화와 정치 담론에도 뿌리를 뻗고 있음을 이미 이전의 연재에서도 몇차례 언급했다.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언어와 메타포가 정치권력의 자기 이해와 표현 안에 자리잡을 때 우리는 정치신학, 혹은 신학적 정치론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현대 민주주의 역시 이러한 개념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혹은 이해해야만 하는 부분이 꽤 많다. 연구자들은 민주주의에 대한 현대의 이해와 사고 안에 자리잡은 종교적, 형이상학적 언어와 상징구조들에 점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

물론 현대정치에서 이런 상징구조들을 화려하게 사용하는 예는 민주주의 바깥에서 더 자주 발견된다. 다음 글에서는 그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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