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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27 05:01 수정 : 2019.12.27 20:49

<반일 종족주의>로 친일적 역사 도발을 재개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유튜브 채널에서 독도를 ‘반일 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으로 언급하면서 독도의 옛 지명으로 알려진 우산국은 지금의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교수의 강의는 일본어 자막과 함께 일본에 퍼져 한국보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 <이승만TV> 갈무리

[2019년 학술계 결산]

일본 경제 도발과 친일세력의 역사 왜곡…한일 ‘우파연대’ 네트워킹 본격화 우려
‘불평등의 세대’가 촉발한 386세대 비판 “복잡한 현실 기만적으로 덮어” 반론도

<반일 종족주의>로 친일적 역사 도발을 재개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가 유튜브 채널에서 독도를 ‘반일 종족주의의 최고 상징’으로 언급하면서 독도의 옛 지명으로 알려진 우산국은 지금의 독도가 아니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이 교수의 강의는 일본어 자막과 함께 일본에 퍼져 한국보다 더 큰 호응을 얻었다. 유튜브 <이승만TV> 갈무리

2019년 학술계 화두는 ‘일본’과 ‘세대’로 압축할 수 있다. 지난 여름, 한 두 달 간격으로 터져나온 두 가지 이슈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일본은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에 기습적인 경제 도발을 함으로써 오늘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이 100년 전 만들어진 역사의 결과물임을 다시 한 번 자각하게 했다. 학계는 일본 경제 도발의 근거라고 할 수 있는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그 지렛대 노릇을 했던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결의 의미를 곱씹었다. 미국이 동아시아 하위 전략 파트너로 일본을 내세우기 위해 전쟁 책임을 상당 부분 면제해줌으로써 오늘날 일본의 ‘식민주의’가 부활하고 전후 동아시아 국제 관계가 뒤틀리게 됐다는 인식을 다지는 계기가 됐다.

일본의 경제 도발과 비슷한 시기에 돌출한 뉴라이트 세력의 친일적 역사 도발은 일본의 식민주의 부활과 맞물려 그 심각성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등이 쓴 <반일 종족주의>는 학술적으로 논할 가치조차 없는 조악한 책이라는 평을 받았지만, 주장의 형식과 대담성에서 과거의 사례를 뛰어넘었다. 이들 친일세력에게 ‘식민모국’에 해당하는 일본의 노골적인 우경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현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혐한류가 일본 출판 시장의 주류로 진입하는 등 위험 수위가 높아지는 가운데 이 역사 왜곡 도서에 대한 반응은 일본에서 더 뜨거웠다. 이에 국내 학계는 “한일 우파 간 역사수정주의 연대와 네트워킹”(강성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교수)이 본격화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상당 부분 일본에서 수입한 혐한론의 어설픈 재탕”(김창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불과한 주장을 일본이 재수입하는 환원적 증폭 현상이다. 두 나라를 오가며 강도를 높여가는 우파 연대의 역사 왜곡이 한일 양국 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의 미래에 어두운 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두번째 화두는 ‘386세대 논쟁’이다. 이번 세대 논쟁의 직접적인 계기는 ‘조국 사태’였지만, 이른바 386세대에 대한 비판은 참여정부 때도 있었다. 다만 386세대가 50대의 나이에 이르면서 사회 기득권 세력으로서의 위상이 공고해진 가운데 비판이 더 격렬해졌다.

이철승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가 쓴 <불평등의 세대>는 386세대가 ‘이념’을 통해 학연·지연·혈연의 네트워크를 가로지르는 ‘연대’의 원리를 터득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민사회를 형성한 후 국가에 대한 점유 작전에 집합적으로 돌입했다고 평가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세대에 비해 정보와 조직에서 우위를 점하고 거대한 전 지구적인 구조 변동의 물결에 무사히 올라타 다른 세대를 배제하거나 복속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공감하는 견해도 많았지만, 반론과 반박도 이어졌다. 산업화와 민주화, 경제성장과 선진국형 침체 등 한국 현대사의 큰 흐름에 따른 결과를 한 세대의 잘못으로 몰아가는 건 비약이 심한 과장법이라는 것이다. 신진욱 중앙대 교수는 세대주의 담론을 인종주의나 성차별과 닮았다고 하면서, 복잡한 사회 현실을 피부색이나 성별, 나이라는 말초적 지표로 덮어버리는 것은 기만적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함께 ‘386’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지 말자고도 제안했다.

제도적 측면에서 주목할 만한 학계의 주요 뉴스는 대학에 소속되지 않고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 제도 신설과 장기 학술정책을 담당할 학술전담기구 설립에 관한 논의다. 인문사회학술연구교수의 경우 우여곡절 끝에 내년부터 120억원의 예산으로 1인당 연봉 4500만원씩, 300명을 새로 뽑기로 했다. 프로젝트별로 대학에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사람에 투자하는 새로운 형태의 학문진흥정책이다. 애초 학계 요구보다 미흡한 수준이지만 일단 방향은 제대로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학술정책 기획과 평가를 맡는 학술전담기구 설립은 학계의 오랜 숙원이다. 특히 한국연구재단이 2013년부터 과학기술정통부 산하기관으로 편입되는 등 인문사회분야 학문 정책을 담당할 기관이 없는 상황이다. 관련 예산도 국가 연구개발(R&D) 사업 예산 20조원의 1.5%인 3천억원에 불과하다. 일단 교육부도 전담기구 설립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관료의 입김을 배제하기 위해 독립적인 학술진흥청이나 사회부총리 직속의 학술진흥원 설립을 요구하고 있다.

학술출판계에서는 대한민국학술원이 우수학술도서 구매 및 배송 방식을 변경하는 과정에서 보인 무책임성이 도마에 올랐다. 원래 학술원이 출판사들로부터 직접 구매하던 것을 교보문고에 대행하게 했는데 이 과정에서 교보문고가 갑의 지위를 이용해 납품가 인하를 추진하다 출판사들의 보이콧 사태를 부른 것이다. 교보문고와 출판사들이 한 발씩 물러나는 것으로 사태는 봉합됐지만, 학술원이 보여준 학술출판에 대한 몰이해는 많은 출판인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학술출판사들을 장사꾼 취급하며, 원고가 나오면 그대로 찍어내는 단순 노동으로 치부하는 인식을 보인 것이다. 정부 공무원 사회에 만연한 이런 관료화된 인식은 학술출판의 주요 기둥 중 하나인 국가 번역 사업을 진행하는 데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지난 10월까지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본부장을 지낸 박구용 전남대 철학과 교수는 “편집의 가치를 인정하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좋은 번역이 나온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국가 번역 사업인 명저번역지원사업의 내년 규모는 18억4800만원으로 올해보다 3배 가량 늘어날 전망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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