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층석탑등 복원공사 한창 신계사는 장안사·표훈사·유점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로 꼽히던 큰 절이었다. 신라 법흥왕 때 창건된 이후, 조선 말까지 15채의 건물이 있었고, 한국전쟁 전까지도 12채가 남아 있었으나 모두 불타버렸다. 남은 것은 대웅전 앞 3층석탑과 만세루 기둥뿐이다. 신계사 석탑은 정양사 탑, 장연사 탑과 더불어 금강산 3대 석탑으로 불렸으나, 최근 기울어짐이 심해 해체 복원 공사를 벌이고 있다. 신계사 복원 계획에 따라 지난해말 남쪽에서 새 법당을 짓고 스님을 파견했다. 구룡연으로 오르는 등산로 들머리 찻길 옆이다. 구룡연으로 오르는 산길이 목란관부터 폭설로 통제되면서, 관광객들이 신계사 터로 몰려들었다. 신계사를 홀로 지키는 제정 스님이 마이크를 잡는다. “에, 신계사(神溪寺)는 원래 새 신(新) 자를 썼는데….” 주민들이 신계천의 연어를 잡으려고 몰려들며 비린내를 풍기자, 주지가 동해 용왕에게 부탁해 연어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했고, 곧 연어가 사라져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신기한 일이라 하여 이름을 바꿨다. 눈을 뒤집어쓴 문필봉 앞 하얗게 변한 절터 마당에서 눈을 들자, 앞에선 집선연봉과 채하봉이 줄달음치고 오른쪽 산봉 너머로 세존봉이 희끗한 머리를 내민다. 전망이 탁 트여, 절터가 명당임을 알 수 있다. 신계사로 오르는 소나무숲길도 눈에 덮였다.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 후두둑 눈더미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소리같다. 1910년대 이 길을 걸었던 최남선은 “나지막하고 아늑한 소나무숲”이라고 했는데, 소나무들은 이제 키가 20m를 넘어 무성한 숲을 이뤘다.
술기넘이(水口넘이 또는 수레넘이)재 밑 신계다리 앞 바위엔 ‘해응당불망대’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신계사 쪽으로 더 가다 오른쪽 산밑엔 신계사 부도 무리가 늘어서 있다. 신계사에서 목란관 쪽으로 가다 오른쪽에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오래되지는 않은 듯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온정각에서 신계사까지 3.8㎞. 폭설 때엔 걸어야 하지만, 평소엔 차로 10분 거리밖에 안된다. 금강산/글·사진 이병학 기자 leebh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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