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2.04 20:22
수정 : 2014.02.04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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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이김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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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농부다] 숨쉬는 제철밥상
달걀에도 제철이 있을까? 채소나 갯것에 제철이 있지 무슨 달걀에도 제철이 있나 싶었는데 닭을 길러 보면 안다. 달걀에도 제철이 있더라. 암탉이 ‘사람 먹으라고’ 알을 낳는 건 아니지 않겠나. ‘병아리를 까기 위해서’ 추운 겨울과 무더운 장마철을 피해 봄가을에 알을 낳는다. 암탉은 입춘이 오는 걸 귀신같이 알아내 알을 낳기 시작한다. 올겨울이 따스해 닭들이 벌써 알을 낳기 시작했다. 와! 겨우내 못 보았으니 오랜만에 보는 달걀이다.
귀한 달걀을 보니 김밥을 말고 싶다. 우리 집 김밥에는 햄, 맛살, 단무지같이 시장에서 사와야 하는 재료들이 안 들어간다. 김 말고는 그때그때 있는 제철 채소로 채운다. 그러다 보니 달걀이라도 들어가야 맛이 나 달걀이 여러 개 모이면 김밥 생각이 난다.
입춘 김밥. 달걀로 노란색을 내고, 단무지는 김장 무 남은 걸 초절임해서 대신하고, 붉은빛은 김장철에 캐놓은 당근이 남아 있으니 됐다. 푸른 채소로 냉이를 넣어볼까? 호미를 들고 밭에 가 냉이가 어디 있나 찾아본다. 겨울을 난 냉이는 이파리가 누렇게 변하고 추위를 피해 땅으로 깊이 박혀 언뜻 보아서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몸을 낮춰 보면 그제야 군데군데 냉이가 눈에 띈다. 냉이는 가을에 싹이 터 겨울을 난 냉이가 최고다. 추위와 싸우느라 이파리는 볼품없지만 뿌리가 실하고,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향기와 맛이 들었으면서도 연하다.
호미질을 하니 땅이 생각보다 많이 녹아 냉이 캐기 좋더라. 냉이 캔 밭이 달래밭. 냉이 캔다고 앉아보니 달래가 제법 자라기 시작해 어느새 김매기를 하고 있다. 봄이 오긴 오나 보구나. 그렇다면 겨울잠도 이제 끝이라는 소리인데. 겨우내 실컷 놀 꿈에 부풀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냉이는 집 안으로 들이고, 다른 풀은 닭한테 주었다.
김밥은 밥도둑이라 밥을 많이 한다. 쌀을 깨끗이 씻어 체에 잠시 받쳐 물기를 뺀 뒤 밥을 안친다. 밥물은 보통 때보다 약간 적게 잡고, 소금을 넣어 밑간을 하고 참기름 한숟갈에 다시마도 몇조각 넣어 밥을 짓는다. 이렇게 하면 밥에 간과 기름기가 고루 배어 김밥이 맛있다.
김밥에 들어갈 재료들을 늘어놓는다. 달걀 부쳐서 길게 썰어놓고, 그리고 무초절임. 냉이는 어린 건 그냥, 굵은 건 살짝 데쳐서 먹기 좋게 갈라 소금과 기름, 깨소금에 무쳐놓고, 당근은 채칼로 부드럽게 채 쳐놓고.
식구들이 모여 앉았다. 두사람이 김밥을 말아주면 한사람은 거기에 기름소금칠을 해서 썰고 한사람은 잔심부름을 한다. 김밥을 말면서 주섬주섬 주워 먹고 수다까지 떤다. 김밥을 다 마니 벌써 배가 부르다. 그래도 김밥을 접시에 가지런히 놓고 콩나물국을 곁들여 맛을 천천히 음미해 본다. 탄력 있는 김 속에 간이 고르게 밴 재료들에다 냉이 뿌리가 씹히니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봄이 입으로 들어온다. 봄! 기운이 일어섰다.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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