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03.18 20:10
수정 : 2014.03.18 20:10
숨쉬는 제철밥상
일본에서 여러 집 식구가 우리 집에 오신단다. 홈스쿨링과 대안교육을 배우겠다고. 어른 아이 합해서 모두 열둘. 뜻깊은 일이지만 내 처지에서는 이거 보통 일이 아니다. 밥을 집에서 먹어야 한다.
시골 살다 보면 집에서 손님을 치를 일이 있다. 이웃끼리 만나도 모임이 있어도 집에서 모이니, 밥 한 끼는 먹고 헤어진다. 손님 가운데 어른 아이가 섞여 있으면 까다롭다. 어른들은 된장찌개에 푸성귀 반찬이면 오케이지만, 아이들은 아니다. 근데 뭐든 자꾸 하면 느나 보다. 실력이 아니라 꾀가. 손님을 대접해야 한다고 애를 쓰지 않고 한발 물러선다. 함께 하든가, 그것도 아니면 손님한테 그런다. “우리 집에 오면 밥 한 끼는 해 줘야 하는데!”
하지만 이번 손님은 경우가 좀 다르지 않은가. 함께 해 먹기로는 했지만 재료를 모두 내가 마련해야 하니 메뉴도 내가 결정해야 한다. 일본 분들 입맛을 어찌 알랴. 중간에 다리를 놓는 분한테 물었다. 돌아온 답은 “아무거나.”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인터넷에 들어가 외국인에게 인기 있는 메뉴, 실패한 메뉴도 찾아보았다. 알아볼수록 더 그림이 그려지지 않는다. 여러분이라면 어찌하시겠는가?
궁리해 봐야 안 되겠다. 여느 때 하듯 하기로 했다. 우리 집에 넉넉한 재료로 차리되, 모두가 쉽게 참여할 수 있는 걸로. 그렇게 정해진 메뉴가 첫날 저녁은 된장주먹밥과 묽은 된장국. 다음날 아침은 콩밥에 봄나물 샐러드와 자색 고구마수프.
날을 잡아 놓으면 금방 돌아온다. 어느덧 그날이 되었다. 멀리서 하루 종일 오니 얼마나 배가 고플까. 솥 두 군데에 쌀을 넉넉히 안쳤다. 주먹밥용으로 소금을 조금 넣어 살짝 밑간을 하고 참기름을 한 숟갈 넣어서.
늘 그렇듯 예정시간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 바쁘게 밥때다. 주먹밥을 빚으러 모두 둘러앉았다. 먼저 우리 된장을 소개했다. 된장에 자연식초를 타는 것도, 주먹밥을 빚으며 가운데 된장과 매실장아찌를 박아 넣는 것도 보여주었다.
일본인들은 손에 맹물을 먼저 묻히더니 주먹밥을 빚는데 그렇게 정성일 수가 없다. 오사카 지방에서 오신 분이 일러주었다. 주먹밥은 하늘에서 주는 물과 땅에서 나오는 쌀과 사람의 손이 만나는 신성한 음식이라서, ‘오무스비’(조화신)라 한단다.
똑같이 앉아 주먹밥을 빚는데 내가 빚은 게 동그랗다면 일본 분들이 빚은 건 세모다. 왼손에 밥을 얹고 오른손을 ‘ㄱ’자 모양으로 만들어 윗부분을 꼭꼭 눌러가며 빚는 것을 따라 해 보았지만 실패. 한 분이 일본에서 가져온 매실장아찌인 우메보시를 꺼내 그것도 넣어 빚어 보았다. 두 상으로 나눠 앉아 먹었다. 주먹밥을 한입 베어 먹다 보면 간이 거의 안 된 밥이 씹히다가 가끔 된장이나 매실이 씹히면 이게 또 별미다. 그 많은 밥을 다 먹었다.
두 끼를 함께 하면서 한 가지 느낀 게 있다. 아이가 여섯 명이었는데, 누구도 밥상에서 투정을 하지 않았다. 낯선 음식이었을 텐데 자기 몫으로 주어진 건 군말 없이 싹 먹었다. 아이 손님을 겪어본 중 처음이었다.
장영란 <숨쉬는 양념·밥상> 저자
odong17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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