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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4.08 10:02 수정 : 2018.04.08 10:09

홀로 여행?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역시나 돈이 있으면 전혀 심심하지 않다. 평소 같으면 가격을 보고 ‘헉’했겠지만 여행에 취했는지, 아니면 초밥을 먹기 전에 두 잔 연속으로 마신 나마비루(생맥주)에 취했는지 “역시 내 입은 고급이었어, 다행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만족해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토요판] 이런, 홀로!?
뱁새의 ‘황새스타일’ 일본 여행기

여행 제1의 우선순위는 ‘가성비’
비수기·긴 경유시간도 감내하다
3월 일본 벚꽃 여행을 떠났다
“가랑이 찢어지더라도, 황새처럼”

30만원 항공권에 도심지 호텔
재미도 안전도 ‘돈’으로 가능
달콤한 3박4일을 난 추억한다
‘식물도감’과 카드 내역으로

홀로 여행?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역시나 돈이 있으면 전혀 심심하지 않다. 평소 같으면 가격을 보고 ‘헉’했겠지만 여행에 취했는지, 아니면 초밥을 먹기 전에 두 잔 연속으로 마신 나마비루(생맥주)에 취했는지 “역시 내 입은 고급이었어, 다행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만족해하기도 했다. 게티이미지뱅크

“야, 그 뭐냐… 가랑이를 황새가 쫓아가다가… 뱁새가 찢어진단 말야.”

꽃보다 미세먼지의 텁텁함이 더 익숙한 서울의 3월. 퇴근 뒤 포장마차에서 만난 친구는 “나도 남들 놀 때 같이 놀고 싶고, 남들 꽃구경할 때 같이 꽃구경하고 싶어”라는 내 말에 혀가 꼬부라진 발음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다’는 말이었겠지만, 소주 각 1병을 마시고 얼큰하게 취해 있던 친구와 나는 주어의 순서가 뒤바뀐 이 속담의 뜻을 정확하게 이해했다. 분수도 모르고 ‘황새’(남들)처럼 놀려 들면, ‘뱁새’(나)의 가랑이가 찢어진다는 말이렷다.

내일모레 서른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지만, 회사에 다니면서 받는 200만원 남짓한 월급으로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쓰다 보면 여전히 한 달 50만원 적금을 붓기도 벅차다. ‘내가 씀씀이가 헤픈 건가?’라고 반성도 해봤지만 사실 내 나이 때 다들 비슷하게 벌고 비슷하게 쓰더라. 좋아하는 해외여행이라도 한 번 가려면 한 달 생활비를 조금씩 아껴 10만원이라도 따로 모아야 한다. ‘내 주제에 해외여행을?’이라고 생각하면 또 한없이 처량해져서, 그 생각은 관둔 지 오래다.

뱁새, 1주일 전 항공권을 결제하다

여행자금 마련부터 계획을 세워야 하는 뱁새의 신세를 타고난 탓에 지금껏 단 한 번도 급하게 일정을 정해 여행 가 본 적이 없다. 항공권과 숙박비가 모두 비싼 성수기는 피해, 1년 전부터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물색했기 때문이다. 맛집을 검색해도, 숙박할 곳을 검색해도 키워드엔 항상 ‘가성비 좋은’이 들어갔다. 덕분에 내 여행 일정은 황새들의 여행루트와는 항상 핀트가 어긋났다. 유럽은 해가 짧아 비수기인 11월에 갔고,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고른 탓에 경유 공항에서 8시간 정도 기다리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뭐 어떠랴. 여행하기 좋은 따뜻한 날씨 대신, 긴 경유 시간을 기다린 대신 저렴한 항공권과 숙소를 얻으면 그걸로 된 거였다. 그리고 지금껏 여행은 그렇게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무엇이든 싼 게 최고’라고 믿었던 마음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3월부터 뱁새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퇴근 뒤 맥주를 마시며 일본 드라마 <심야식당>을 본 것이 화근이었다. ‘나도 일본 가고 싶어.’ ‘나도 일본에 꽃필 때 가고 싶어.’ ‘나도 따뜻할 때 일본에 있는 이자카야에서 혼술하고 싶어.’ 지난겨울이 너무 추웠을 수도 있고, 그 누구보다 빨리 봄을 만나고 싶었을 수도 있다. 따뜻한 남쪽 나라로 훌쩍 떠나고 싶었는데 마침 일본은 3월 중순부터 벚꽃이 핀단다. 나도 남들에게 “어… 그냥… 꽃이 보고 싶어서 여행 갔어”라는 허세 그득한 말을 하고 싶었다. 황새가 놀 때, 가랑이가 찢어지더라도 안간힘을 써서 놀았던 뱁새가 되고 싶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무엇에 홀린 듯 항공권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남들 놀 때 가는 일본 항공권’은 당연히 비쌌다. 쌀 땐 10만원 초반대로도 결제할 수 있는 후쿠오카 항공권이 30만원까지 뛰어 있었다. 3일을 고민하다 나는 결국 가장 ‘비싼’ 항공권과 ‘비싼’ 호텔을 결제하고 후쿠오카로 떠났다. 물론 3일 동안 스스로를 설득하는 치열한 과정을 거치고서 말이다.

안전도 재미도 돈으로 해결

홀로 여행? 여자라면 가장 걱정되는 것은 바로 안전일 터다. 홀로 여행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내가 가장 신뢰한 것은 당연하게도 돈이었다. 밤늦게 구석진 골목길을 돌아다니기 싫어 일부러 후쿠오카에서 가장 번화가에 있는 호텔을 예약했다. 예약 전 굳이 구글지도를 확인해 호텔이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변 옆에 있다는 것도 다시 한 번 확인했다. 현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구글지도라는 문명의 발전 덕에 길은 잃지 않았지만, 혹시 길을 잃더라도 어디서든 택시를 탈 수 있게끔 현금을 ‘낙낙하게’ 챙겨 다녔다. ‘여행 때만이라도 휴대전화를 꺼두고 싶다’는 생각도 홀로 여행에서는 사치였다. 혹시 모를 위급한 상황에 대비해 3일 내내 와이파이를 쓸 수 있도록 와이파이도 사전 예약했다.

홀로 여행? 누군가는 “심심하지 않아?”라고 되묻지만, 역시나 돈이 있으면 전혀 심심하지 않다. 자꾸 ‘돈돈’거리는 게 속물 같긴 하지만 솔직히 정말 행복했다. 유니클로에서 사고 싶었던 다운재킷을 면세로 샀고, 사고 싶었던 일본 잡지도 샀으며, 먹고 싶었던 음식도 실컷 먹었다. ‘살까 말까 고민될 땐 사자, 먹을까 말까 고민될 땐 먹자’를 거침없이 시전하니 어느새 카드를 긁는 행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한 회전초밥집에서 ‘가격도 보지 않고 고른’ 갈치초밥이 너무 맛있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한 접시에 500엔(약 5000원)이나 했다. 평소 같으면 가격을 보고 ‘헉’했겠지만 여행에 취했는지, 아니면 초밥을 먹기 전에 두 잔 연속으로 마신 나마비루(생맥주)에 취했는지 “역시 내 입은 고급이었어, 다행이야”라고 혼자 중얼거리며 만족해하기도 했다.

여행이 성공적이었던 건 일본이 ‘홀로 여행’에 안성맞춤인 국가인 덕도 컸다. 혼밥 문화가 일상적이라 혼자여도 식당이나 카페에 가는 게 망설여지지 않았다. 식당 입구에 서서 “히토리데스!”(혼자입니다)라고 외치면 친절한 점원이 자리를 안내해줬다. 주문도 쉽다. 간단한 일본어로 “고레, 고레, 고레, 히토쓰 오네가이시마스!”(이거, 이거, 이거 하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기만 하면 된다. 그나마 ‘일본 여행이 만만한’ 나 같은 사람들은 통계로도 나타난다. 지난 4월3일 일본 정부 관광국이 공개한 ‘일본을 방문한 외국인 동향’을 보면,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수는 지난해 714만165명으로 전년보다 40.3% 늘었다고 한다. 수년째 이어진 엔화 약세, 가까운 거리 등으로 짧은 기간 여행이 가능한 일본을 찾는 사람이 많아졌다는 분석이다.

물론 홀로 여행에서 모든 게 다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여행뽐뿌’를 제공한 드라마 <심야식당>의 로망 따위는 없었다. 여자 혼자 늦은 밤까지, 게다가 술에 취해 돌아다니다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이성은 ‘한 잔만 더 마시고 싶다’는 욕망을 간단하게 억눌렀다. 저녁을 먹으러 들어간 식당에서 혼자 술을 마시다가도, 8시만 되면 호텔로 돌아와 편의점에서 산 캔맥주로 조촐하게 2차를 했다. 취해서 잠들었고, 다음날 늦잠을 잤다. <심야식당>은 없었어도 가히 내가 원했던 ‘여유로운’ 홀로 여행이라고 할 만했다.

카드 내역으로 떠올리는 여행의 추억

그렇게 달콤했던 3일간의 휴가가 끝났다. 출국 전 후쿠오카공항 면세점에서 남은 동전까지 탈탈 털어 초콜릿을 사고, 한국에 돌아오자 휴대전화가 울렸다. 엄마였다. “야, 너는 일본 갔다면서 사진도 한 장 안 보내주냐?” “엄마 내가 꽃 찍은 사진 보내줬잖아.” “아니 너 찍은 사진 보내달라고.” “음… 없는데?” “뭐?” “아니 혼자 갔는데 무슨 내 사진을 찍어.” “그럼 여행을 갔는데 너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다고?” “응… 그렇네.”

휴대폰 사진첩을 뒤져보니 정말 내 사진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그 흔한 ‘셀카’조차 찍지 않았다. 지겹게도 꽃만 찍었더랬다. 벚꽃을 찍었다가, 매화를 찍었다가, 다시 벚꽃을 찍었다가, 이번에는 흰 벚꽃을 찍었다가… ‘나를 찍어야 한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게 더 정확했다. “사진첩이 식물도감이냐”는 엄마의 타박을 한 귀로 흘리고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출근이었다.

급하고 또 비싸게 떠났던 후쿠오카 3박4일. ‘뱁새’의 가랑이는 찢어졌을까? 찢어졌다. 가랑이 찢어졌다. 그것도 많이 찢어졌다. 후쿠오카 여행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식물도감 같은 사진첩이 아니라 일주일 내내 해외 결제가 이어진 신용카드 내역이었다. ‘아, 맞다. 여기서 옷 샀었지.’ ‘여기서 초밥 먹었지… 진짜 맛있었는데….’ 뱁새는 카드내역에 보이는 달콤쌉쌀한 추억을 안고, 남은 가랑이를 추스르며 살아가겠지.

가랑이가 찢어진 뱁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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