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공원국의 유목일기
(19) 투르크족 축제
말타고 양 빼앗는 ‘부스카시’
가장 격렬한 마상경기이나
적대감을 연대감으로 바꾸고
배제 넘어 ‘더 큰 우리’를 확인
팀 대항 본경기 열리는 날
이방인도 선수 등록 받아줘
소년 빠진 얼음장 호수엔
외국인이 앞다퉈 뛰어들어
|
키르기스 유목민들이 말을 타고 양을 빼앗는 ‘부스카시’ 시합을 벌이고 있다. 전쟁을 본뜬 놀이인 부스카시는 초원의 축제다. 공원국 제공
|
축제는 결속과 포용의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단오에 이 마을이 한편이 되고 저 마을이 한편이 되어 줄다리기를 할 때, 이 시합은 개별 마을을 하나로 뭉치는 도구다. 하지만 시합이 끝나면 그 줄을 태워 대립의 흔적을 없앤다. 이어 모여 춤추고 술 마실 때면 집단 사이의 벽은 없어지고, 더 큰 집단으로의 상승을 바라고 새 구성원을 환대하는 화합의 무대가 펼쳐진다.
유목 사회에서 축제도 마찬가지다. 수십리, 멀게는 수백리에 걸쳐 흩어져 방목하고 있는 이들이 먼저 가장 작은 친족 단위에서 시작해서 더 큰 공동체 단위를 하나로 묶는다. 사람을 한데 묶는 가장 강력한 수단은 전투 대형을 짜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적을 확정하고 그들을 죽이러 가는 길이므로 환대의 의미가 없다. 축제는 결속력을 준다는 점에서 전쟁의 평화적인 대용품이다. 그러나 축제는 죽음 대신 삶을 확인하는 계기이므로, 격렬한 경쟁을 통해 환대의 의미가 더욱 커진다. 그래서 축제의 장에서는 이방인도 형제가 된다.
채찍에 안경 깨지고 양도 떨어뜨리다
초원에서 환대가 없이 개인은 물론 집단도 살아갈 수가 없다. 어느 순간 산간에서 이른 눈이 내려 누군가가 갇힐 수가 있고, 누군가는 먼 데 있는 친척을 찾아 장도에 오를 수가 있다. 환대 없이 고난을 벗어날 수도 없고 마음대로 이동할 수도 없다. 환대 없는 초원은 바로 지옥이다. 약 400년 전 토르구트 몽골인들은 오이라트(서몽골) 내부의 알력을 피해 볼가강 초원으로 이주했다. 그러나 겨우 100년 남짓 지나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팽창하는 러시아 제국이 견딜 수 없을 만큼 기병을 차출했기 때문이다. 귀로에 그들이 다시 카자흐 초원을 지날 때 처절한 적대감이 기다리고 있었다. 토르구트가 러시아 제국의 요구를 맞추느라 진을 뺄 때 카자흐 여러 부족은 동방에서 오는 오이라트의 침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카자흐한테 토르구트는 오이라트의 일부였기에 복수할 명분이 있었다. 식솔과 가축을 데리고 초원을 건너는 이들은 손쉬운 먹잇감이었다. 초원에서는 화살 한대 날리지 않고 적대감만으로 한 집단을 죽음으로 몰아갈 수 있다. 예컨대 약탈에 시달리다 탈진해서 물을 찾는 무리를 속여 사막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면 그들은 쓰러질 수밖에 없다. 말은 물 없이 하루도 이동할 수 없고, 말이 죽으면 그들도 죽거나 포로가 된다. 그렇게 고향으로 돌아올 때 남은 이들은 8만명 남짓이었는데, 어떤 이는 이들이 카자흐 초원을 지나면서 반이 죽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8할이 죽었다고 한다. 죽은 이들 다수는 아녀자들이었을 테고, 쓰러진 가축의 수는 헤아릴 수도 없을 것이다. 한마디 거짓말 혹은 한번의 문전박대로 타인의 목숨을 좌우할 수 있는 사회에서 조건 없는 환대는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다.
유목민의 축제에서, 적대감을 강렬한 연대감으로 바꾸고 배제를 넘어 더 큰 우리를 확인하는 것이 전쟁을 본뜬 놀이들이다. 예컨대 몽골 나담축제의 세 요소인 말타기, 활쏘기, 씨름은 모두 전쟁의 기술이다. 축제는 전쟁의 힘을 비틀어 환대의 장으로 변용한다. 여러 투르크 집단들의 축제의 핵심은 부스카시(염소 뺏기) 혹은 울락(울라크 타르티시)이라 불리는 약탈 게임이다. 규칙은 단순해서 기수들이 달려들어 염소 시체를 뺏으면 그만이다. 먼저 염소 한 마리를 잡아 피를 빼고 머리와 발굽을 제거하여 약탈물로 삼는다. 편을 나눠 상대편의 염소를 뺏어 와 커다란 통에 던져 넣는 단체경기와 수십명이 한 마리에 달려들어 단 한명이 승리를 차지하는 개인경기가 있다.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격렬한 마상 경기일 것이다. 말 가슴으로 부딪히고, 상대 고삐를 채고, 심지어 발굽으로 찬다. 먼지와 채찍질이 난무하는 가운데 뛰어난 기수들도 심심찮게 말에서 떨어진다. 말에서 떨어지거나 밟히면 아주 위험해서 신문에서는 심심찮게 부스카시 경기 중에 사망한 이의 기사가 실린다. 올해도 사리모골 일대 남자들 중 호기 있는 이들은 은근히 그날을 기다린다. 올해 축제일은 7월22일이었다.
|
파미르의 초원에서 마을 축제가 있는 날 키르기스인들이 전통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공원국 제공
|
|
축제가 열리면 먼 마을에 사는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 전통 모자를 쓰고 얘기를 나누고 있는 키르기스 노인들. 공원국 제공
|
볼케 초원에서 올해 첫 개인전이 열릴 때 나는 마무르를 따라갔다. 일종의 예행연습이었다. 멀리서 보아도 자욱하게 피어오르는 먼지, 말굽 소리와 비명, 기수가 내지르는 괴성, 바람을 가르는 채찍질 소리,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일단 말 등에 올라 치달으면 알 수 없는 충동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괴성을 지른다. 그러니 다치는 것은 다음 일이고 손바닥만한 호기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게 쟁탈전의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마침 친구들이 들어오라고 손짓을 한다.
“코이 베르!”(양〔사실은 염소〕을 내놔라)
소리를 지르며 나도 말 무리 속으로 뛰어들었다. 처음에 주춤하던 ‘바람’도 겁을 먹으면서도 동족의 울부짖음에 흥분해서 날뛰었다. 그러나 치고 들어가는 순간 어떤 이가 휘두르는 채찍이 얼굴로 날아와 안경을 때렸다. 스포츠용 카본 안경테도 날카로운 채찍질에는 무소용이라, 테와 알이 동시에 부서졌다. 이미 뛰어든 이상 거추장스러운 안경은 필요 없다. 주울 생각도 하지 않고 염소를 뺏으려 달려들었지만 기술이 없으니 번번이 손아귀를 벗어난다. 그저 덩치 큰 말 덕에 여러번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을 뿐이다. 염소를 가지고 달리던 장난기 많은 친구가 내게 염소를 건넨다. 그러나 한 손으로 염소 시체를 들다가 이내 떨어뜨리고 말았다. 기수로서는 실격이다! 서투르지만 투지가 가상했는지 어른들이 밖에서 소리친다.
“한국 친구에게 다시 줘.”
다시 한바탕 대결이 펼쳐지고 승자가 달려와 내게 염소를 건넨다. 나도 눈동냥으로 염소를 말 등에 고정시키는 기술을 익혔다. 등자 끈과 다리로 염소 몸통을 감싸면 당겨도 쉽사리 빠지지 않는다. 하지만 염소를 받아 든 순간 사방에서 달려드니 한가히 서서 등자 끈으로 두를 여유가 없다. 모든 동작은 달리는 중에 이뤄져야 한다. 나도 키르기스 친구들처럼 달리며 등자 끈 밑에 염소를 넣으려 용을 썼다. 그러나 등에 처음으로 염소를 실은데다 다른 말들이 사방에서 달려드니 바람은 미친 듯이 방향을 바꾸면서 뛰고, 이런 말타기에 익숙하지 않은 나는 다리 아래 염소를 끼우다 균형을 잃어 말에서 떨어졌다. 머리를 땅에 부딪히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친구들이 우르르 달려와 둘러싸고 묻는다.
“괜찮아?”
안경도 깨지고 낙마했지만 허세는 아직 남아 벌떡 일어나며 답했다.
“땅 말이야?”
허세가 측은했는지 정말 재미있었는지 친구들이 와 웃는다. 그날 나는 22일 축제에서 부스카시 경기에 나갈 거라 호언장담했다.
“나도 키르기스에 살아, 외부인이 아니라고.”
그날 말로 부대낀 서른 명은 그 후로 항상 내가 말에서 떨어진 일로 놀려댄다.
아내 앞에서 보기좋게 낙마
6월21일 낮 초원을 돌아다니는 암말 떼 때문에 완전히 흥분한 ‘바람’을 제압하느라 한나절 달렸다. 흥분한 다섯살 수컷을 힘으로 제압하기가 여간 버겁지 않다. 암말이 보이면 낭떠러지가 있는지도 보지 않고 달린다. 깊은 도랑을 보지 못하고 마구 달리다 또 엎어졌다. 말은 앞발을 접고도 바로 일어났지만 나는 곤두박질쳐져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일어나니 멀리서 아내가 기겁을 하고 달려온다. 여름 한 철을 가족이 초원에서 함께 보내는 중이다. 언제나처럼 떨어뜨린 뒤 몇 발짝 앞에서 처벌을 기다리는 놈. 아내가 다가와 볼멘소리로 다그쳤다.
“막 때려줘요.”
하지만 때리지는 않았다. 자연의 욕망의 지배를 받는 녀석과의 힘 대결에서 내가 진 것뿐이니.
“늦었어요. 지금 때리면 왜 맞는지도 모를 거야.”
이렇게 액땜을 했다. 그날 저녁. 볼케 초원에서 아내가 따라주는 더운물 한 주전자로 온몸을 씻었다. 별이 총총하니 날은 맑은데 밤바람은 차가워 몸이 얼어붙었다. 그렇게 나는 목욕재계까지 마쳤다.
|
부스카시에 참가하기 위해 애마 ‘바람’과 함께 연습하던 중 암말에 흥분한 ‘바람’이 조심성 없게 질주해 낙마했다. 공원국 작가가 낙마 뒤 말을 타이르고 있다. 공원국 제공
|
|
아이들에게는 원래 벽이 없다. 여름철에 아빠와 지내기 위해 한국에서 온 공원국 작가의 아이들이 만난 지 몇시간 만에 키르기스 목동과 친구가 됐다. 공원국 제공
|
그러나 막상 아침에 일어나니 또 걱정이 밀려온다. 나름대로 호기 있는 기수들과 초원에서 힘깨나 쓴다는 말들이 몰려든다. 그들은 인정사정없다. 남의 말이 커 보이고 기수들은 더 험상궂어 보인다. 떨어져서 밟힐까 내심 두렵고 가족이 지켜보니 더 부담스러웠다. 부스카시 경기에 원칙적으로 외국인은 참가를 허락하지 않는다. 주최 쪽이 참가를 허락하지 않을까 걱정도 되었다.
산을 넘어 경기장에 가니 낯익은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축제는 상당한 규모였다. 마무르를 만나고 주최 측을 찾아 등록하러 갔다.
“한국 친군데, 경기하는 데 문제가 없어. 우리 팀으로 등록해줘.”
담당자는 나를 못 믿는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내 말은 믿음직했던지 선선히 이름을 올려줬다. 아마 내가 이곳에서 부스카시 경기에 참가하는 첫 외국인일 것이다. 아는 친구들 다섯으로 구성된 팀이다. 마무르에게 한쪽 다리로 안장을 잡고 염소를 낚아채는 기본 기술 설명을 잠시 듣고, 실전에서 내가 할 역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나는 염소를 빼앗기는 힘들 것 같아, 기술이 없어서.”
“그래도 네 말이 크니까, 상대 말이 못 들어오게 부딪쳐.”
힘으로 하는 단순한 일은 자신 있다. 오늘 바람과 나의 역할은 수문장. 우리 염소를 뺏으러 오는 상대를 원천봉쇄하는 일이다.
어쩐지 예정된 두 시가 되었지만 마무르는 말 매둔 곳으로 나타나지 않고, 아이들은 직사광선과 고소반응에 지쳐 쓰러질 지경이었다. 멀리 서편 호숫가 언덕 위에 사람과 말이 잔뜩 모여들어 있었다. 그때 누군가 지나며 ‘외국인들이 수영 시합을 하고 있다’고 말했던 듯하다. ‘수영 시합은 일정에도 없었는데’, 갸우뚱하다 결국 무슨 일인지 알아보러 막내와 아내를 데리고 갔다. 그러나 서양 친구들은 수영 시합이 아니라 익수자를 구조하는 중이었다. 열일곱살 소년이 물에 빠졌다고 한다.
|
파미르 초원의 여름에도 바쁘다. 키르기스 여인들이 초원 위에 천을 펼쳐놓고 유르트의 안감을 만들고 있다. 공원국 작가
|
하늘의 별이 된 열일곱살 소년
해발 3500미터. 커다란 단지 같은 호수. 지름은 겨우 30~40미터나 될까 말까 했지만, 가장자리를 몇 발짝만 벗어나면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이고 중심부 바닥에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솟는 용출수 구멍이 있다. 몇 미터만 헤엄치면 심장이 들썩이고 잠수를 하려 해도 10초를 견딜 수 없었다. 물은 이미 뿌옇게 흐려져 물속 시야는 겨우 1미터에 불과했다. 고산 새우를 잡아먹는 자그마한 벌레가 피부를 콕콕 찌른다. 그놈들이 돌연 몸서리치게 미워졌다. 헤엄칠 물이 없는 이곳 사람들은 수영을 하지 못하여 축제를 보러 온 서양 친구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코끝이 시큰하도록 고마웠다.
나는 아이가 떠오르기만을 기대하며 천천히 아래를 살피며 헤엄쳐 나갔다. 그러나 고산에서 나의 심장은 너무나 초라했다. 물속에서 4분을 견딘다는 다이버 친구도 20초 남짓밖에 견디지 못했다. 아무리 들여다봐도 웅덩이 아래는 시커멓기만 하고 체온은 계속 떨어졌다. 한 시간이 안 되어 몸은 더 견디지 못할 상황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그물줄을 두번 연결해주고 나오니 심장이 한계에 달하고 와들와들 떨린다.
|
열일곱살 키르기스 청소년이 초원의 호수에 빠져 숨진 날에도 하늘은 파랗고 파미르고원의 산은 눈부시게 하다. 공원국 제공
|
물 밖의 하늘은 여지없이 파랗고 눈에 덮인 산은 하다. 풍경이 너무 비현실적이라 이것이 정말 한바탕 꿈이었으면 했다. 언젠가 나와 인사를 나눴을 열일곱 너. 이곳의 환대에 익숙해져 소년들은 모두 동생처럼 여겨지는 지금,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어 고통스러웠다.
아가미도 털도 없는 인간은 지상에서 옹기종기 도우며 살도록 ‘퇴화’한 짐승이다. 네가 없으면 나는 살 수가 없다. 오늘 밤에도 어떤 별은 생을 마감할 것이다. 그때 세상 사람들이 지는 별을 보고 ‘그건 하늘의 일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한국의 동포들이 파미르에서 어떤 작은 별이 졌다고 ‘그건 파미르의 일이야’라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네가 아는 세상에서 제일 큰 환대의 날에 떠난 동생아, 형은 정말 네가 하늘로 올라 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런 글을 써서 또 미안하다.
|
방금 짠 말젖을 먹고 난 뒤 공원국 작가가 키르기스 아이가 추는 춤을 따라 하고 있다. 공원국 제공
|
|
파미르 볼케 초원에 무지개가 걸려 있다. 공원국 작가
|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