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제3계급’비정규직
③ 말라가는 성장 젖줄
④ 땅이 가난을 만든다
⑤ 좌담·한국경제의 제3의 길 “지난해에도 어김없이 당했지요.” 국내 완성차 업체들에 자동차용 헤드램프를 공급하는 ㅅ사 영업본부장은 힘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당했다는 것은 납품단가 인하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완성차 업체들은 해마다 봄이 되면 협력업체들과 부품 공급단가 협상을 벌인다. 그러나 협상은 말뿐이다. 힘이 센 원청업체는 매년 2~3%를 무조건 깎는다. 팩스 한장 덜렁 보내는 것으로 협상이 끝나는 경우도 많다. 신차가 출시된 첫 해 공급단가를 이듬해부터 매년 일정비율 무조건 깎아내리는 것. 업계에서는 이를 “시아르(CR·Cost Reduction)”라고 표현한다. 국내 중소기업의 65%가 대기업과 하도급 관계를 맺고 있는 상황에서, ‘시아르’보다 중소기업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없다. 납품단가가 인하된 만큼 생산성을 높이면 된다지만, 이미 자동화가 상당 부분 진척된 상황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재하청 업체를 쥐어짜고,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그것으로 안되는 부분은 영업이익이 줄어드는 것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 연초 납품단가 인하는 외환위기 이후 연례행사가 됐다. 극단적 상황에 처해 그런 가격으로는 아예 납품을 포기하겠다는 업체가 아니면, 시아르에 예외는 없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은 그래서 신차가 나오길 간절히 기다린다. 신차가 나온 첫해에는 그래도 신차용 부품의 납품단가가 괜찮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지난해 11월 수도권 중소기업 최고경영자 252명에게 대기업에 대한 불만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56%는 ‘지나친 납품단가 인하요구’라고 대답했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가 지난해 4월 202개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똑같은 대답이 나왔다. 중소기업들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행위 유형에 대해 57.5%(복수응답)가 “매년 단가인하(CR) 요구”라고 대답했다. 중소기업이 어려움을 겪는 데는 물론 여러 원인이 있다. 경기침체로 내수 소비가 부진해서, 경영이 어려운 가운데 자금조달이 안돼서, 설비과잉으로 경쟁이 치열해서 등등. 그러나 내수침체는 모두가 겪는 어려움이고, 자금조달의 어려움은 갈수록 수익성이 떨어져 돈을 떼일 것을 우려한 금융기관들이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결국 문제의 핵심은 대기업의 비용 전가로 인한 수익성의 급격한 하락인 것이다.
왜 중소기업들은 이런 불공정 행위에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지 않을까? ㅇ사의 영업본부장은 “그랬다가 납품마저 끊어지면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었다. 중기협의 조사에서도 중소기업들은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행위에 대해 91.2%가 “거래단절 등의 보복이 우려돼 그냥 참았다”고 답했다. 중기협의 한 간부는 “하도급 불공정거래에 대한 사례를 수집하는데, 사업하는 사촌조차도 그 얘기에는 아예 입을 닫아버리더라”고 말했다. “원청기업의 보복은 마피아보다 무섭다”고 그는 덧붙였다. 중소기업 경영자 56%
“지나친 단가인하” 불만
납품 끊길까 마냥 참기만
|
||||
△ 뿌리깊은 불공정거래 관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1인당 부가가치 생산액, 임금 수준, 수익률 격차를 점점 더 벌이고 있다. 3일 서울의 대표적인 중소기업 단지인 구로구 구로동 일대에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이곳은 구로공단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름을 바꾸고 한 건물에 여러 업체가 입주하는 아파트형 공장으로 변신을 꾀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시장 안에서 이른바 ‘갑’과 ‘을’의 관계는 기업의 수익성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한겨레〉가 지난 2000년부터 2004년(1~3분기)까지 국내 최대 자동차업체인 현대자동차와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을 따져보았다.(그래프 참조) 현대차의 매출액영업이익률은 2001년 9.3%에서 2002년 6.54%, 2003년 8.95%, 그리고 2004년 3분기까지 8.22%로 비교적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현대차 계열 부품업체와 수출이 주력인 회사를 뺀 나머지 부품업체들의 매출액 대비 영업이익률은 2001년 4.1%에서 4.8%(2002년)→4.77%→3.92%(2004년)로 5%를 넘지 못할 뿐만 아니라 2002년 이후엔 하락 추세를 보이고 있다. 작은 회사들은 더욱 어렵다. 매출액이 1000억원 이하인 회사들만을 대상으로 보면, 2001년 3.4%에서 4.6%(2002년)→4.4%→2.8%(2004년)로 마진이 훨씬 더 떨어지고 있다. 협력업체도 상장사에 들 정도라면 제법 큰 회사다. 따라서 이들에게 재하청을 받는 더 영세한 중소기업의 어려움은 훨씬 어려울 것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ㅇ사의 노조 사무국장은 “우리에게 재하청을 받은 업체들에 대해서는 더 쥐어짤 것이 이제 거의 없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전경련 조사에서 대기업들은 중소기업에 대한 가장 큰 불만으로 ‘낮은 기술력’(35%)을 꼽았다. 그러나 중소기업들은 “지금 같은 낮은 마진율로는 기술개발에 대한 투자는 엄두를 내기 어렵다”고 말한다.
정부, 기술·숙련도 향샹체계 구축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수익성 격차가 커지는 것은 단지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빨아먹기’ 때문만은 아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은 생산성에 분명한 차이가 있고, 외환위기 이후 그 차이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집계를 보면, 대기업의 부가가치 생산(노동생산성) 증가율은 지난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연평균 10.6%다. 중소기업은 이에 크게 못미치는 6.8%에 그치고 있다. 기준 시점을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2002년까지의 증가율을 따져보면, 대기업 16.0%, 중소기업 13.2%로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생산성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는 얘기다. 정연승 중소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은 구조조정을 비교적 충실히 했지만, 중소기업은 구조조정이 늦은 것이 한 원인”이라고 말했다. 또 “정부가 수출을 늘리기 위해 고환율 정책을 장기간 지속한 것도 내수 중심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고 그는 분석했다.
|
||||
수익성 낮으니 임금협상도 한계
노조조직률 10% 못미쳐
노동조합 조직률에서도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큰 차이가 난다. 대기업 노동자들은 소속 기업의 수익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노동조합을 통합 교섭력을 발휘해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지만, 이런 움직임은 중소기업 노동자와는 거리가 멀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의 노동자 중 300명 이상 대기업에 근무하는 노동자는 전체의 10.1%인 126만4천명뿐이다. 나머지 89.9%는 중소기업에 근무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조직률은 이와는 크게 다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에 가입하고 있는 노동자 160만5천명 가운데 500명 이상 대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이 전체의 72.5%(116만5천명)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50~99명 이하 기업에 종사하는 조합원은 전체의 4.9%, 49명 이하 영세기업 조합원은 3.3%에 불과하다. 한 중소기업 노조 간부는 “노동조합이 없어 근로조건이 나쁘기도 하지만, 노동조합을 만들어 싸워도 기업이 근로조건을 높일 여력이 없으니 노조운동이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
(특별취재팀 정남구 김회승 안창현 기자 jeje@hani.co.kr )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