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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1.11 15:52 수정 : 2019.11.11 15:52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한겨레21]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인터뷰
“대기업·SOC 투자 독려, 인위적 경기부양 목적 아냐”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위기의식과 낙관, 경기 하강과 구조적 위기, 현실과 주어진 숙제 사이,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사진)의 목소리에는 여러 감정이 묻어 있다. 억울함, 자신감, 엄격함, 고민스러움이 교차한다. 중장기적인 구조 개혁이 우선인 것을 알고 있지만 현실을 관리해야 하는 복잡한 정부의 속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문재인 정부 반환점, 한국 경제는 경기 저점을 지나고 있다.

<한겨레21>은 11월6일 이호승 경제수석과 청와대 사랑채에서 만나 1시간40여 분 대화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약속했던 ‘경제 패러다임 전환’의 꿈은 여전히 유효한지 묻고 싶었다. 부딪힌 현실을 어떻게 보는지, 현실이 벽이 될 때 어떤 고민을 했는지 듣고 싶었다. 대화 내용은 이호승 수석의 양해를 구해, 답변 의도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일부 축약하고 손질했다.

현재 경제 상황에 대해 엄중하다는 메시지와 선방하고 있다는 메시지가 동시에 청와대에서 나온다. 어떤 의미인가.

지금 우리 경제 잠재성장률은 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2.5~2.6%로 추정한다. 올해 실제 성장률이 2%가 될까 말까 한 상황을 두고 청와대가 ‘엄중하다’고 인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다만 이것은 단기적인 경기 문제다. 당장 하강하는 국면에서 어려움이 있지만 기다리면 올라간다. 수출은 10월을 바닥으로 보고, 이후 감소 폭을 줄이다 내년 초 플러스로 전환될 것으로 본다. 세계적인 경기 하강 상황에서, 특히 수출 중심 국가인 독일이나 싱가포르 같은 나라들의 성장률 하락에 견줘보면 선방하고 있다.

당장 보이는 장면 하나를 놓고 경제를 공방 대상으로 삼으면 오히려 우리 경제를 더 손상한다. ‘우리 경제는 폭망했다’고 과도하게 비판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경기가 다시 올라갈 때 우리가 어떤 기회를 잡을 수 있을지, 지금 2.5%에 머무는 잠재성장률을 어떻게 하면 높이거나 최소한 덜 떨어지게 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한다.

‘폭망했다’ 비판보단 상승 국면 대비해야

경제의 어려움이 최저임금 인상 같은 정부 정책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최저임금 올라서 경제가 나빠졌다’ ‘근로시간 줄어서 경제가 나빠졌다’고 한다. 물론 일부 문제가 있었고 인상 속도를 조절하고 탄력근로제를 추진하고 있다. 그럼 과거 최저임금을 평균 7% 정도씩 올렸을 때는 민생경제가 잘 풀리고 성장률이 높고 분배가 잘됐나. 한두 개 정책으로 허물어지기에 우리 경제는 이미 매우 크고 구조도 성숙하다. 영향은 있었겠지만 작은 부분을 꺼내서 ‘이것 때문에 모든 게 나빴다’는 스토리를 만드는 것일 뿐 객관적인 비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980년대 10% 성장을 당연시하던 경제가 7%에서 5%로, 지금은 2.5%를 목표로 한다. 그사이 수많은 정부가 지나갔다. 그 과정에서 구조적인 저성장,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 인구 감소, 제조업 위기 같은 구조적인 문제들이 지속해서 제기돼왔다. 수십 년 동안 이 과정에서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책임이 있다. 지금 경제의 모든 부분이 나쁘고, 모두가 문재인 정부 탓이라고 하는 분들이 그때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권한만큼은 책임을 함께 느껴야 하지 않을까? 30년 넘게 공직 생활한 나도 책임이 있다. 아무 책임 없이 비판만 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집중해야 할 부분은 경기 하강보다 구조적인 부분이라는 의미인가.

순서로 따지면 내년이나 내후년 이후를 위해 우리가 어떤 준비를 할 것이냐가 중요하다. 다만 경기가 하강하는데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다. 경기가 나빠지면 제일 먼저 어려움을 겪는 것이 취약계층이다.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경기가 하강하면 정부가 나서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고 한다. 그런데 재정 확대에 대해서는 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물론 재정을 무한정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려울 때 능력 범위 내에서 쓰는 것이고, 다행히 우리는 재정이 건전한 편이다.

최근 대통령 행보에 대해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성장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대기업 투자 독려, 건설 투자 강조 같은 이전의 경기 관리로 돌아섰다는 비판도 나온다.

그건 결코 아니다. 먼저 부동산을 보자. 오늘(11월6일) 분양가 상한제 대상 지역을 발표했다. 부동산 가격 안정을 어느 정부보다 강하게 추진하고 있다. 주택 쪽에서 계속 불로소득이 생기면 비생산적인 쪽으로 자금이 흘러가고 경제 전체의 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부동산 가격 급등 우려로) 금리를 내리거나 재정을 확대하는 거시정책 운영에도 걸림돌이 된다. 부동산을 통해 인위적인 경기부양을 하지 않겠다는 것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다만 도서관·체육시설·문화시설처럼 생활과 연결된 SOC(사회간접자본) 투자, 안전을 위한 노후 SOC 투자, 사회간접자본을 스마트화하는 투자는 강조하고 있다. 이런 측면의 SOC 투자는 속도를 내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

경기하강 국면에선 정부 역할 필요

부동산 정책은 시장에 일관된 신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종합부동산세, 올해 분양가 상한제 추진 과정에서 오락가락하는 모습을 보이며 정부의 부동산 가격 안정 의지에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일관되고 확실한 메시지는 ‘시장 불안이 생기거나 투기적인 이익이 생기는 것을 정부는 절대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11월 안에 의심 거래 1500여 건에 대해 합동 조사해서 발표하는 등 엄정한 집행으로 메시지를 전할 계획이다.

다만 아직 부동산 불패 신화가 남아 있지만 만약 인구 고령화 영향으로 고가의 서울 주택 매물을 받아줄 사람이 없어질 수 있고, 과도하게 올랐다가 과도하게 떨어지는 미래의 금융 리스크에도 대비해야 한다. 시장의 오름과 내림은 같이 염두에 두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

대기업 투자 독려 행보를 재벌 개혁 의지가 사라진 것으로 보기도 한다.

올해 대통령 행보가 시스템 반도체, 미래 차 같은 미래 신산업 쪽에 집중돼 있다. 이런 산업 영역은 대기업 혼자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스템 반도체를 만드는 건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지만, 설계만 전문으로 하는 소규모 고부가가치 기업도 꼭 있어야 한다. 대기업은 대기업대로 자기 영역을 가지면서 부가가치를 만들고, 그 옆에 매우 많은 전문 기업, 소프트웨어 업체, 서비스 업체가 붙어줘야 한다. 신산업의 파이를 대기업이 다 먹지 못한다는 것은 대기업 자신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원을 고려할 때 기업 간 협업을 어떻게 하느냐를 중요하게 챙겨보고 있다.

재벌이 갖는 과도한 시장 지배력이나 사익 편취, 일감 몰아주기, 기술 탈취나 납품단가 인하에 대해 (현재 국회에 계류된) 공정거래법이나 상법 개정이 아니더라도 정부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많은 진전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유통 분야 등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마련하고 보복 조치에 제재를 강화하는 등 제도 개선이 이뤄졌다.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 비서관이 11월6일 <한겨레21>과 만나 문재인 정부 2년 반의 성과와 한계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복지 위한 증세, 긴 사회적 논의 있어야

지난 2년 반 재정 확대 흐름이 어느 정도 있었지만 초과 세수, 국가채무비율에 대한 유연한 접근을 넘어 ‘증세’ 논의는 없었다. 중장기적인 복지 계획과 증세를 함께 제시할 계획은 없나.

조심스럽다. 국민의 수용성이 굉장히 중요하다. 그에 대해서는 긴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 노동의 질을 중시하던 정부가, 고용지표 악화 논란 등을 겪으며 노동의 양을 강조하는 쪽으로 돌아섰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최근 비정규직 증가 논란이 일었다.

이 정부는 어떤 때보다 노동의 질을 중시한다. 고용 안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공공부문부터 20만 명 가까이 정규직 전환을 시행했다. 처우가 똑같다 하더라도 신분 불안에 대한 우려는 해소한 것이니 큰 진전이다.

고용의 질을 당사자 입장에서 봐야 할 필요도 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정규직 구분을 만들었는데 이 부분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비정규직 범위 안에 파트타이머가 모두 포함된다. 한 해 100만 명이 태어났던 베이비붐 은퇴 세대 가운데 상당수는 짧은 시간 일하는 것을 선호할 수 있다. 재정 지원 노인 일자리도 객관적인 기준으로 보면 30만원 받는 일자리이지만, 취약한 노인 계층을 위한 가벼운 일자리다. 짧은 시간이라도 이분들이 사회에 기여하면서 약간의 생활비를 보충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분명히 있다.

저출산·사회갈등 해결 못해 아쉬워

지난 2년 반 성과와 아쉬움은 뭔가.

국민 개개인 입장에서 볼 필요가 있다. 나도 장모가 암 투병을 하고 계신 과정에서 병원비를 부담하고 있는데 의료보장이 좋아졌다. ‘문재인 케어’라고 하는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가 있었다. 사회안전망도 확대됐다. 기초연금, 장애인 연금 인상이 있었고, 실업급여도 확충했다. 물론 만족하기에는 이르지만 청년 고용률은 9월 기준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높고 청년 실업률은 2013년 이후 가장 낮았다. 중국의 사드 보복, 미-중 갈등, 일본 무역제재 같은 많은 일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시스템적으로 잘 대응했고 금융시장을 잘 관리해왔다고 생각한다. 신규 벤처 투자가 올해 4조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등 창업과 벤처 분야의 성과도 점차 가시화하고 있다.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이 2008년 이래 최저 수준이고, S&P 국가신용등급도 AA를 유지하는 등 우리 경제의 총체적 건전성에 대해 긍정적인 대외평가도 내려지고 있다.

다만 저출산 추세를 바꾸지 못했다. 인구구조 변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지만 어려웠다. 지금은 일단 인구 감소 추세 아래서 교육, 국방, 노동 공급 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함께 고민한다. 또 중국과의 경합 속에 제조업 경쟁력이 약화되는 부분에서도 아직 충분한 반전의 계기를 마련하지 못한 것 같다.

무엇보다 최근 가장 크게 느끼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 구조나 그로 인한 갈등을 아직 우리 시스템으로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정부로서도 시간이 걸리고 쉽지 않은 일이다. 타다 같은 플랫폼 서비스와 생존이 걸린 택시업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의료 혁신과 의료계의 입장, 좀더 좁혀보면 장애인 학교를 막는 지역사회까지 서로 포용하고 갈등을 조정해내는 능력이 아쉬웠다.

글 방준호 whorun@hani.co.kr·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http://h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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