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04 21:00
수정 : 2019.12.05 02:45
공정위 과징금 ‘3년 법정공방’ 일단락
모뎀칩셋 차별없이 제공 약속 불구
계약땐 제조사에 특허 라이선스 강제
법원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국내 제조사들은 환영 입장
퀄컴 “판결 동의 못해” 즉각 상고 의사
전세계 통신칩의 시장지배사업자 미국 퀄컴이 부품 공급을 볼모로 삼성전자·엘지(LG)전자 등 휴대전화 제조사에 자사의 특허권 계약을 강요하는 등 ‘갑질’을 했다며 한국 공정거래위원회가 1조원대의 과징금을 부과한 데 대해 법원이 “정당하다”는 첫 판단을 내놨다. 퀄컴의 시장지배적지위 남용 행위들에 대해 2009년부터 10년째 칼을 빼들고 있는 공정위에 법원이 잇따라 손을 들어주고 있다.
서울고법 행정7부(재판장 노태악)는 퀄컴 인코퍼레이티드 등이 공정위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명령 취소 청구소송에서 공정위 처분이 적법하다며, 주요 쟁점에 대해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번 소송엔 삼성·엘지 전자와 미국 애플·인텔과 중국 화웨이 등이 공정위를 위한 보조참가자로 참여했다가 삼성전자와 애플은 소송 도중 보조참가를 취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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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7월 미국 통신업체 퀄컴 관계자들이 퀄컴 인코퍼레이티드 등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대해 열린 공정거래위원회 전원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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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공정위는 퀄컴이 이동통신용 모뎀칩셋을 삼성전자 등에 팔면서 독점보유한 이동통신 표준필수특허(SEP)를 ‘공정하고 합리적이며 비차별적 조건으로 제공하겠다’고 국제표준화기구에 확약(FRAND·프랜드)해 독점보유자 지위를 인정받아놓고, 실제 계약을 체결할 땐 특허 라이선스 계약을 강제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했다며 2016년 12월 1조30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고 시정명령을 하기로 결정했다. 단일 사건으론 최대 규모의 과징금이었다. 퀄컴은 이듬해 2월 불복 소송과 함께 시정명령 효력정지 신청을 냈으나, 서울고법과 대법원은 잇따라 효력정지 신청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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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퀄컴 제재 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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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법정 공방 뒤 서울고법은 이날 공정위의 판단이 적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재판부는 “퀄컴은 경쟁 모뎀칩셋 제조업체 등에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으로 특허 라이선스를 제공할 것이라고 확약했으나 실제론 라이선스를 제공하지 않는 등 시장지배적지위를 남용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퀄컴이 “경쟁사로부터 모뎀칩셋을 공급받는 휴대전화 제조사에 대한 공급 거절이나 금지 청구로, 경쟁 모뎀칩셋 제조사의 구조적 열위를 형성하고 자신의 영향력을 강화했다”고 판단했다.
한국 공정위와 퀄컴의 싸움은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9년 12월 공정위는 퀄컴이 삼성·엘지 전자 등에 시디엠에이(CDMA) 모뎀칩을 팔면서 그 대부분을 자신들에게서 사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제공하는 등 불공정 행위를 했다며,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2731억원을 부과했다. 퀄컴은 즉각 불복 절차를 밟았다. 지난 1월 대법원은 이 사건에 대해 대부분 공정위 손을 들어주면서 일부 쟁점은 다시 심리하라며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지난 5월 퀄컴이 소 취하를 하면서 10년 만에야 판결이 확정됐다. 동시에 2016년 공정위 제재 건에 대해 심리가 진행되다 이날 법원의 첫 판단이 나온 것이다.
글로벌 기업인 퀄컴은 한국 외에 미국과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도 유사한 행태에 대해 시정명령이나 과징금 등을 부과받은 바 있어 이날 1조원대의 한국 법원 판결은 국제적으로 관심을 모았다. 앞서 지난 5월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방법원은 미국 연방공정거래위원회(FTC)가 ‘퀄컴이 불공정 행위를 했다’고 판단한 것은 적법하다며 경쟁 당국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공정위는 이날 판결 뒤 “법원이 퀄컴과 같은 표준필수특허권자의 프랜드 확약 의무를 재확인하고,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 사업 모델이 부당하다는 점을 인정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며 “향후 판결 취지를 반영해 시정명령에 대한 이행 점검을 철저히 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들은 환영의 뜻을 밝혔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번 판결이 확정된다면 휴대전화 제조사 입장에선 퀄컴과의 협상 과정에서 원가 산정에 유리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체들은 여전히 퀄컴이 핵심 부품 공급자인 상황에서 입장을 내기가 조심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퀄컴은 즉각 상고 의사를 밝혔다. <로이터>는 이날 돈 로젠버그 퀄컴 총괄 부사장이 “우리는 이번 법원 판결에 동의하지 않는다. 즉각 대법원에 상고할 방법을 찾겠다”며 입장문을 냈다고 보도했다.
송경화 장예지 기자
freehwa@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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