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0 19:44
수정 : 2019.12.21 1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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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계부처 합동브리핑 모습. 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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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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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주택시장 안정화 방안 관계부처 합동브리핑 모습. 왼쪽부터 은성수 금융위원장,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김혜윤 기자 uniqu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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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을 잠그는 게 가장 신속하니까, 대출규제 카드를 쓴 거겠지요. 당장은 효과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금리에 시중에 풀린 돈이 워낙 많아요. 실물 경기는 나쁜데 이 돈이 결국 어디로 흐를까요?”
지난해 9·13 대책에 이어 올해 12·16 대책에서도 ‘대출규제’가 고강도 카드로 등장했지만, 은행권 고위 관계자는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은 수익을 찾아 어딘가로 흐르고 싶어한다. 생산과 연결된 실물 경기는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돈은 주택시장, 특히 서울의 아파트로 흐르고 또 흘렀다. 강남권에선 평당 1억원에 근접하며 20억원이 넘는 20평대 아파트가 즐비해졌고, 강북권에선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이란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 과정에서 서울 곳곳의 아파트 부녀회에선 아파트 가격 담합을 촉구하는 ‘격문’이 나붙었고, 지역 주민들의 단톡방도 들끓었다. 물론 담합 촉구 공지는 불법 소지가 있다 보니, 부동산중개업소들이 허위 저가매물로 분위기를 흐리고 있으니 아파트 소유주들이 속으면 안 되고 시세와 어긋나는 저가매물을 발견하면 항의해야 한다는 호소성(?) 짙은 ‘격문’이긴 했다.
이런 분위기에도 분양가상한제 ‘핀셋’ 적용 등 안이한 대책으로 일관했던 정부는 며칠 전 대출·세제·분양가 규제를 망라한 종합대책 카드를 꺼냈다. ‘뒷북’이란 얘기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시점이긴 하다.
다급한 처방이다 보니, 이른바 ‘약발’이 가장 빠른 방법은 15억원을 초과하는 아파트에 대해선 구매용 주택담보대출을 아예 봉쇄하겠다는 전례 없는 대출규제였다. 지난해엔 주택 보유 수에 따라 대출을 잠갔다면, 이번엔 주택 가격에 커트라인을 그어 대출 통제에 나선 셈이다. 금리 카드는 정부 몫이 아닌데다 세제 등 다른 수단은 시행까지 정책 시차가 있는 점이 작용했을 것이다.
주택 수나 주택 가격에 연동한 고강도 대출규제가 줄을 잇자 세간에선 ‘위헌 소지’ 논란까지 일어났다. 하지만 금융당국은 집값의 ‘버블’을 관리하는 것은 정책당국자의 선택 권한 내에 있다고 반박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지금이 버블”이라고 말한다. 그는 “냉정히 따지면 (집값이) 너무 올랐다”며, 금융위원장으로서 이른바 ‘폭락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금융연구원에도 “괜찮은 거냐, 아니면 폭락이 있는데 모르고 끝을 향해 가는 거냐”고 물었다고 한다.
정부는 이제 공식석상에서 ‘버블’을 거론하기 시작했다. 전례 없는 대출규제에 대한 정책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해도,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이번 대책과 관련해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부동산 가격과) 싸우겠다는 의지로 읽어달라”고 했다. 이어 청와대는 다주택자인 참모진들에게 집을 팔라는 권고를 했고,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정부 고위 공직자들도 이에 동참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정부에 절실한 것은 시장과 싸우겠다고 달려드는 결연한 돌격 의지나, 퍼포먼스에 가까운 청와대 참모와 장차관들의 다주택 매각 러시는 아닐 것이다. 어느 때보다 시장의 움직임을 잘 들여다보고 정책 디테일을 섬세하게 조율하는 관리 능력이 필요하다. 현 정부 들어 12·16 대책을 포함해 18차례의 주택시장 관련 대책이 나오고도 서울 집값이 천정부지로 뛴 것은 집값을 안정화하고 주택시장을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책 의지가 부족해서는 아니었다.
장삼이사들은 현 정부의 철학과 가치를 공유하는 청와대 주요 인사나 세상을 잘 알 만한 고위 공직자들이 지금껏 왜 서울 주요 지역에서 다주택을 보유해왔는지, 적어도 서울 주요 지역에 ‘똘똘한 한 채’를 왜 잘 지키고 있는지 뼛속 깊이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장삼이사들 또한 우리 아파트 집값을 지켜야 한다는 펼침막을 단지 내에 붙이고, ‘강남 노른자위’보다는 집값도 안 올랐는데 강남4구로 묶여서 같은 규제를 받으니 억울하다고 단톡방에서 분노를 토로하는 것이다.
이른바 ‘대장주’ 아파트, ○○ 지역의 ‘대장주’ 단지라는 말이 익숙해진 지 오래된 세상이다. 집은 보통 사람들의 실거주를 위한 보금자리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들이 인생을 걸고 쌓아 올린 ‘자산’의 본체라는 측면도 부인하기 어렵다. 정부는 ‘결연한 엄포’나 ‘퍼포먼스’ 대신에 정책 디테일을 조율해 섬세한 시장 관리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또 생산과 연계된 실물 경기 활성화로 부동산 시장 대신 돈이 흘러갈 경로도 만들어내야 한다. 기업들이 내년도 경영계획을 짜고, 정부가 경제정책방향 발표로 내년도 청사진을 내놓는 시즌이다. 이번에는 다를까?
정세라 경제팀 데스크
seraj@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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