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2.22 18:41
수정 : 2019.12.23 02:33
‘지침안’ 3대 쟁점 보니
상법, 주총서 해임 요구 등 규정
미, 횡령 등 혐의 땐 후보도 못올려
중점관리 기업 ‘집중투표제’
상법서도 ‘원칙적 채택’ 취지 밝혀
“국민연금, 의결권 최대 3% 제한
소액주주가 정관 변경 결정 가능”
‘5%룰’ 개정 자본시장법 부합
시행령 개정, 상위법 범위 명확히 해
국민연금의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지침)안이 오는 27일 기금운용위원회에서 다시 논의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6개 단체는 22일 공동 성명을 내 이 지침의 전면 재검토를 촉구했다. 재계는 그동안 법령 위반 임원에 대한 해임 주주제안과 집중투표제 도입, 5%룰(주식 대량보유 보고제도) 개정 등이 상위법에 어긋난다며 법리 공세를 펴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상법이 보장한 주주의 당연한 권리를 재계가 왜곡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 위법 임원 해임 제안이 헌법 위배?
재계는 횡령·배임 등 법령 위반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한 임원에 대해 국민연금이 해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도록 한 부분을 특히 문제 삼았다. 유죄 확정판결이 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기소만으로 해임을 요구하는 것은 헌법의 ‘무죄 추정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논리라면 현행 상법도 초헌법적이다. 상법(385조)을 보면, 법령을 위반한 이사에 대해 주주는 주주총회에서 해임을 요구할 수 있고, 해임안이 부결될 경우 해임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횡령 등이 발생했다고 곧바로 해임 주주제안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민연금은 비공개 대화 등 3단계 절차를 각각 1년 동안 진행한 뒤 개선되지 않는 경우에만 주주제안을 할 수 있다. 기업이 반론을 제기하고 대비할 충분한 여유가 있는 것이다. 반면 국민연금은 횡령이 일어난 뒤 3년이 지나야 ‘행동’에 착수할 수 있어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최근 기금운용위원들과 간담회에서 단계별 추진 기간을 단축하는 수정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스튜어드십 코드(수탁자책임 원칙)를 먼저 도입한 외국에서는 이런 논란 자체가 벌어질 수 없다.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스튜어드십코드 센터장은 “미국 기업의 경우 유죄 확정 여부와 상관없이 임원 후보의 최근 10년간 위법 사항을 모두 공개하기 때문에, 횡령·배임 혐의가 있는 인사는 아예 후보로도 올릴 수 없다”고 말했다.
■ 집중투표제가 상법 위반?
국민연금 지침안은 낮은 배당 등으로 중점관리 대상이 된 기업에 한해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주주제안을 할 수 있게 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총에서 다수의 이사를 뽑을 때 1주당 1표가 아니라 뽑을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주는 제도다. 따라서 소액주주들이 선호하는 후보에 표를 몰아주면 선임 가능성이 커진다. 재계는 이 제안이 ‘집중투표제를 정관을 통해 배제할 수 있다’고 규정한 상법에 반한다고 주장한다. 집중투표를 하려면 상법을 개정해야지, 국민연금 지침을 통해 도입하는 건 위법이라는 논리다.
법조계에서는 재계의 주장은 본말이 뒤바뀐 것이라고 지적한다. 상법(제382조의2)은 ‘2인 이상 이사를 선임할 때 주주는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집중투표로 이사를 선임할 것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원칙적으로 집중투표제를 채택하되, 예외적인 경우에만 정관을 변경해 배제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주주 자격으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도록 정관변경을 제안하는 것은 상법의 취지에 부합한다.
그런데도 대주주 영향력이 막강한 국내 상장사의 92.6%(2017년 기준)는 집중투표제를 배제했다. 이에 국회는 집중투표에 관한 특례(542조의7)까지 만들어 집중투표제 배제나 도입을 위해 정관을 바꿀 경우 지분이 3%를 초과하는 주주는 그 초과분의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게 했다. 윤영석 변호사는 “대주주뿐 아니라 국민연금의 의결권도 3%로 제한해 소액주주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5%룰’ 개정이 자본시장법 위반?
‘5%룰’은 경영권에 영향을 주는 목적으로 상장사 주식 등을 5% 이상 보유하거나 이후 1% 이상 지분 변동이 생기면 5영업일 안에 보유 목적과 변동 상황 등을 공시하도록 한 제도다. 자본시장법(147조1항)은 ‘경영권 영향 목적을 임원의 선임·해임, 회사 기관과 관련된 정관변경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규정했다. 그동안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경영참여 목적이 지나치게 넓어 적극적 주주활동에 나설 경우 공시의무 위반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많았다. 이에 금융위원회는 시행령을 개정해 공적연기금이 사전에 공개한 원칙에 따라 보편적인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정관변경을 추진하는 경우는 경영권 영향 목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그러자 재계에서는 상위법인 자본시장법에 규정된 경영권 영향 범위를 시행령으로 개정하는 것은 무효라고 반발했다.
하지만 경영권 영향의 상세한 범위는 처음부터 시행령(154조1항)에 들어와 있고 이번 개정안은 그 범위를 명확히 한 것이다. 국민연금이 아무 제약 없이 경영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는 주장도 사실과 다르다. 특정 기업의 지배구조 개편이나 임원의 선임·해임에 ‘사실상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에는 지금처럼 경영권 영향 목적으로 분류돼 5일 안에 보고해야 한다.
한광덕 선임기자
kdha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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