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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아이쿱생명사업연합회 CEO.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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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I가 만난 사람]
신성식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 대표
신성식(49)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 대표는 협동조합 동네의 ‘문제적 인물’이다. 199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협동조합에서 일했다. 20여년 동안 쓴맛 단맛 모두 경험한 ‘생협 1세대’다. 몰락한 영세 생협들을 모아 현재 조합원 20만명에 연매출 4000억원 규모로 키웠다. 대학을 그만두고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쌀 직거래 모임을 시작으로 생협 사업(운동)에 뛰어들었다. 1997년 파산 위기의 6개 지역 생협이 뭉쳐 만든 ‘생협연대’, 현재의 아이쿱생협 창립을 주도했다. 조합비와 선수금 제도, 복합 클러스터 건설 등을 통해 생협 모델의 확산을 이끌었다. 최근 출간한 <협동조합 다시 생각하기>를 비롯해 <새로운 생협운동의 미래>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 <새로운 생협운동> 등의 책을 펴냈다. 지난 6일 서울 명동의 한 커피숍에서 만난 신 대표는 “4~5년 뒤에는 은퇴할 계획”이라고 입을 뗐다. 창업자로서의 보상은 다 받았느냐고 물으니 “아이 둘 잘 키웠으면 된 거 아니냐”며 웃었다.
요즘 경제 상황이 어렵다. 경기 전망과 사업 환경을 어떻게 보고 있나?
“정부와 학계에선 ‘디플레이션이냐 아니냐’는 논쟁이 있는 걸로 안다. 우리는 내부적으로 디플레이션을 대비하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디플레는 일종의 늪이다.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구조적 디플레이션이라면 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은 아이쿱 차원에서 자력으로 노력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그에 맞춰서 준비해야 한다.”
구조적인 경기침체…생협만의 문제 아니야
세간의 우려보다 전망이 어두운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
“크게 보면 두 가지다. 첫째는 시장을 확대하는 문제다. 중국 수출이다. 중국은 ‘로컬푸드’라 할 정도로 지리적으로 가깝다. 예컨대 중국 칭다오(청도)는 제주보다 물리적인 거리가 가까운데, 거기에만 1억명의 시장이 있다. 우리가 국내 구례, 괴산, 밀양 등에 복합 클러스터를 만드는 것도 중국을 염두에 둔 것이다. 중국 진출은 플랫폼이나 시스템이 아니라 아이쿱 브랜드가 들어가는 것이다. 다만, 홍콩은 사회적 경제 영역을 통해 플랫폼을 진출시킬 수도 있을 것 같다. 중국 진출은 최소한 10년은 걸리는 장기 사업으로 보고 있다.”
해외 사업은 아이쿱이 해보지 않은 것이다. 중국 진출에 내부의 문제 제기나 우려는 없나?
“천천히 갈 것이다. 리스크 관리는 책임과 권한이 있어야 가능하다. 오너 기업과 달리 우리는 직에서 물러나는 게 사실상 책임의 전부다. 그래서 더 쉽지 않다. 특히 협동조합은 결정적일 때 넘어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명운을 걸고 베팅하는 게 아니라, 불이 나도 확 옮겨붙지 않는 방식과 속도로 가야 한다. 그 때문에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측면도 있지만, 새로운 사업을 할 때는 조심할 수밖에 없다.”
국내 시장의 대응 전략은?
“디플레 상황에서 일반적인 대응은 가격 경쟁일 것이다. 더 싸게 구매하고 임금 등 내부 비용은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악순환의 시작이다. 가격 경쟁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 생협이 몇 년 전 경험한 좋은 사례가 있다. 이른바 ‘농약 만두’ 파문이다. (일본은 2008년 살충제 성분이 섞인 중국산 만두가 광범위하게 유통돼 큰 사회 문제가 됐다.)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일본 생협도 중국 업체에서 납품을 받았다. 사고가 난 중국 공장은 상대적으로 대형 업체이고 품질과 가격 경쟁력이 좋은 편이었다. 생협뿐 아니라 대부분의 대형 유통업체가 이 업체와 거래했고 줄줄이 사고가 났다. 생협 판매 제품에서 첫 피해자가 발생하면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다. 이런저런 사정이 있었겠지만, 오랜 기간 디플레 상황이 이어지고 그에 따른 가격 경쟁이 심해지면서 생협이 거기(중국 업체의 납품)까지 밀린 것이다. 거래 비용을 낮춘 역설이라고 볼 수 있다. 식품 안전이라는 리스크를 고려하기 힘들 정도로 디플레는 무서운 것이다.”
신뢰 위험 키우는 가격 경쟁은 악순환의 시작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 소비자 조합원 입장에선 불만이 생길 수 있지 않나?
“아이쿱이 크게 성장하면서 가격 협상력이 생긴 게 사실이다. 가격을 더 낮출 여지는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낮추지 않을 것이다. 가격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예컨대 지금보다 가격을 5%가량 낮춘다고 하자. 유통 가격을 5% 낮추는 건 생각보다 매우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다. 생산자 이익이 줄고 거래 리스크도 커진다. 그렇게 5%를 내린다 한들 우리 조합원들이 얼마나 고마워할까? 1만원짜리를 9500원에 500원 싸게 팔면 정말 큰 효용을 느낄까? 우리는 소비자 신뢰를 거래 비용에 넣으면서 소비자가 만족할 수 있는 가격까지 고민해야 한다. 가격 유지를 인정해주는 소비자 조합원을 지켜내면서 (매출과 수익 감소를) 수출로 커버하겠다는 것이다. 우리가 한국에서 업계 1위 경쟁을 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중국 진출은 아직 구상 단계이고 경기 불황은 닥친 현실이다. 국내에선 가격 경쟁을 하지 않겠다면 어떻게 경쟁력을 유지할 건가?
“국내에선 협동조합 생태계를 확장하는 것이다. 이게 경기침체에 대응하는 두번째 전략이다. 생협이 할 일이 조합원의 ‘가격 만족’을 높이는 게 전부는 아니다. 조합원에게 다른 만족을 주는 쪽으로 사업을 확장할 것이다. 건강과 주거, 구체적으로 리조트나 종합병원 등 실버 서비스 영역으로 협동조합 생태계, 사업 영역을 더 넓혀야 한다. 조합원들이 생협을 통해 더 많은 생활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이미 대규모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는 사업 영역이다. 민간 기업들과 경쟁할 수 있다고 보나?
“우리가 고민하는 것을 최근 실험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에 종합건설회사가 있다. 설계도 하고 주택, 토목도 한다. 여기에서 구례 복합단지를 지었는데 공사비가 많이 들지 않았다. 일반적인 민간 공사를 생각해보라. 설계사와 시공사가 건수만 생기면 설계를 변경하고 그 과정에서 공사비가 애초 가격의 몇 배로 올라가는 구조 아닌가. 우리는 설계 변경 없이 협력 관계로 문제를 해결했다. 최초 입찰가도 그리 높지 않았다. 다른 사업 영역에서도 ‘생협 방식’으로 리스크와 생산성을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고 본다.”
중심 조합원 늘려 ‘생협 생태계’ 확산시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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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 대표가 경기도 군포시 아이쿱 자연드림 사무실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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