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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6.30 15:54 수정 : 2015.06.30 15:54

서울 강동구 상일동 ‘함께 크는 우리 작은도서관’의 관장님과 어린이들. 희망제작소 제공

아파트를 바꾼 작은도서관의 기적

얼마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앞의 공지사항이 눈에 띄었다. 아파트 동 대표를 뽑아야 하는데 지원자가 없으니 많은 지원을 부탁한다는 내용이었다. 아파트 동 대표는 쉽지 않은 자리다. 주민들의 ‘소통’을 격려하고 ‘이해’를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독립적이고 편안하게’ 살고자 입주했던 아파트에서 왜 우리는 소통과 이해 그리고 공동체의 필요성을 이야기해야 할까?

환경부 산하 기관인 국가소음정보시스템의 층간소음 이웃사이센터 통계자료에 따르면 이웃 간의 만남과 대화가 이루어졌을 때 분쟁이 65% 해소되었다는 분석이 있다. 또한 주민의 53.5%가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으로 건축규제나 처벌이 아닌 ‘이웃과의 소통’을 꼽았다고 한다.

공동체의 기본 정신은 소통과 이해다. 서로 알고 지내는 주민이 많고 기쁨과 어려움을 나누는 이웃들이 있으면 그것이 마을이고 공동체가 된다. 이웃에 대한 교감과 신뢰가 생기면 윗집 아이가 발 구르는 소리에 관대할 수 있고, 아래층 이웃을 배려해 알아서 좀 더 조심하는 마음을 스스로 갖게 된다.

행아공 최대 성과는 ‘주민 리더’ 등장

2013년부터 희망제작소와 에스에이치(SH)공사, 한겨레신문사는 주민이 주체적으로 참여해 단지 내 공동·공공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는 아파트 공동체의 모델을 만들고자 ‘행복한 아파트 공동체 만들기 사업’(이하 행아공)을 진행해 왔다. 행아공 사업의 핵심은 아파트 단지 내에 주민들이 만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을 확보하고 그 공간에서 주민활동이 다양하고 활발하게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공동체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는 자치와 참여의 문화가 아파트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이 사업의 최종 목표다. 지난 2년간 3개의 아파트 단지(서울 은평구 구파발 10단지, 강동구 강일리버파크 7단지, 노원구 월계사슴 2단지)에서 행아공 프로젝트를 진행해 봉제작업장, 마을도서관, 탁구장과 같은 주민 커뮤니티 공간이 활성화되었다. 커뮤니티 공간에서 소모임, 동아리, 축제, 벼룩시장 등 다양한 주민참여 프로그램들이 활발하게 진행되면서 주민 간 교류 역시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는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하며 다른 주민들을 이끄는 ‘주민 리더’들이 등장했다는 점이다. 주민들의 공동체 형성에 커뮤니티 공간이 강력한 촉매제 구실을 한 것이다.

300가구 이상 아파트엔 설치 의무화

강일동 강일리버파크7단지 작은도서관 주민활동가들. 희망제작소 제공
행아공 사업단은 주민 리더들과 함께 공동체 활동이 지속가능할 수 있도록 새로운 조건과 환경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다수의 주민이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공공성과 지속가능성 여부를 염두에 두었다. 서울 지역 크고 작은 아파트 단지의 공동체 현장들을 방문하던 중 단지 내 ‘작은도서관’이 눈에 띄었다. 작은도서관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규모 공공도서관의 축소판이 아니라 동네 사랑방과 같은 곳이다. 주민들이 모은 기금과 자원봉사를 통해 독서활동은 물론 어린이 방과후 프로그램, 문화 프로그램 등을 운영하는 곳이다. 주민들이 가진 다양한 욕구를 스스로 해결하는 형태인 것이다. 단지 내 오랫동안 방치된 마을문고를 마음 맞는 주민들이 청소해 문을 연 곳도 있었다. 마을문고조차 없는 단지에선 공동관리비로 관리사무소 한켠을 리모델링해 마을도서관을 운영하는 사례도 있다. 작은도서관은 1980년대부터 아파트 단지 내에서 조성되기 시작했는데 2000년대 도서관법 개정 및 정부와 지자체, 기업 등의 협력이 늘어나면서 활성화되었다. 또한 2006년 ‘주택건설기준에 관한 규정’에 의해 300가구 이상의 아파트 단지에 작은도서관 설치가 의무화되면서 2013년 12월 기준 전국에 4686개의 작은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운영 주체가 되는 순간 보는 눈 달라져

주민들이 작은도서관에 참여하게 되면 지역 공동체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고 한다. 행아공 사업 지역인 서울 은평구 구파발지구는 장기전세주택(시프트) 단지로 다자녀 가구가 많다. 이곳의 작은도서관 운영자 대부분이 영유아기 자녀 2~3명을 둔 젊은 엄마들이다. 내 아이들에게 더 많은 책을 읽히고 싶어 작은도서관 자원봉사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작은도서관 운영 주체가 되는 순간 운영자의 마음으로 작은도서관과 지역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운영자로서의 고민은 무관심했던 아파트 자원과 공동체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해 동 대표와 같이 ‘주민 리더’로 활동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처음 나와 내 아이들만을 생각했던 마음이 작은도서관 활동을 통해 아파트 공동체에 대한 공동의 관심과 이해로 확장된 것이다.

또한 작은도서관은 이미 지역에서 중요한 네트워크 인프라로 작용하기도 한다. 최근 작은도서관협의회들이 많이 생기는 추세인데 이는 각자가 가진 한정된 자원과 운영 노하우를 공유하기 위함이다. 서울 구로구 천왕지구 작은도서관협의회에서는 마을축제 때 주민체험행사로 단지별 작은도서관 운영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는 휴대폰 애플리케이션(앱)을 선보이기도 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인 앱을 통해 작은도서관 운영 노하우나 외부 지원 사업 등의 정보를 수시로 나눌 수 있게 되자 주민 회원과 자원봉사자가 증가했다. 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자 입주자 대표회의로부터 운영비를 지원받았고 에스에이치공사는 바닥 난방 공사를 지원하기도 했다.

다양한 연령대 주민들 함께 참여해야

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기다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작은도서관에 참여하는 주민들의 절대적 수도 적은데다, 운영자 대부분이 어린 자녀를 둔 상황이라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은 다양한 연령과 경험을 가진 주민들이 함께 참여해주었으면 하는 생각이 크다.

이은주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이러한 작은도서관 운영자들의 고민을 바탕으로 희망제작소는 오는 7월부터 서울시 은평 구파발지구와 구로 천왕지구에서 ‘(가칭) 아파트작은도서관네트워크학교’를 운영할 예정이다. 운영에 필요한 실무지식뿐 아니라 개별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운영 과제를 다른 운영자들과 협력하는 네트워크 솔루션 프로젝트도 진행된다. 지역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만나면서 공동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이 작은도서관을 넘어 지역 공동체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이은주 희망제작소 선임연구원

artenju@makehop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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