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30 16:00
수정 : 2015.06.30 16:00
맛으로 실현하는 사회적경제
#1.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이 자영업 경기를 얼려버린 6월 하순 어느 월요일 오전 11시40분. 직장인 점심시간 전인데도 이 식당엔 빈자리가 없다. 이 식당은 언론에도 자주 소개된다. 블로거들은 돈 한푼, 공짜 음식 한그릇 안 줘도 ‘시청 맛집’으로 소개한다. 이곳의 테이블 회전율은 하루 3.5회. 서울 중구 정동에 위치한 ‘정동국밥’ 이야기다. 지난 5월에는 2호점도 냈다.
|
배우 양희경씨와 카페슬로비 임직원들. 카페슬로비 제공
|
#2. 배우 양희경씨는 지인과 모임이 있을 때 ‘카페슬로비’를 자주 찾는다. 그는 한상차림인 ‘그때그때밥상’이나 버섯덮밥, 현미리코타치즈샐러드를 추천한다. “현미 쌀알이 씹히면서 담백한 맛을 내는 현미리코타치즈샐러드는 단연 최고죠.”
#3. 주한 스페인대사관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경제상무참사관이 사람들에게 “꼭 가보시라”고 말하는 식당이 있다. 서울 종로구 가회동 스페인식당 ‘떼레노’(Terreno)다. 아스파라거스를 곁들인 농어스테이크와 스페인식 볶음밥 ‘파에야’는 가르시아 참사관이 추천하는 메뉴다.
‘하루 3회 이상의 테이블 회전율, 언론 보도, 블로거들의 입소문, 유명인의 추천, 지점 개설.’ 식당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는 곳들이 있다. 사회적기업들이 차린 ‘사회적 맛집’들이다. 글로벌 경기 회복 둔화와 세월호 슬픔에 이어 메르스 두려움이 일으킨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이들은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성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수익성 두마리 토끼 잡아
이들의 성공비결은 무엇보다 ‘맛’에 있다. 성공회푸드뱅크가 운영하는 사회적기업 정동국밥은 14시간 우린 육수로 만든 6000원짜리 돼지국밥, 7000원짜리 반계탕을 내놓는다. 진한 국물에서 오는 깊은 맛은 광화문의 평범한 직장인부터 시위로 출동한 전경까지 다양한 손님들을 문 앞까지 줄서게 한다.
사회적기업 오가니제이션요리가 운영하는 카페슬로비는 지점별로 특색 있는 메뉴를 개발했다. 모든 음식은 제철·지역의 재료를 사용했을 때 맛이 제대로 살아난다는 철학으로 제주슬로비에선 애월에서 나는 취나물로 만든 애월비빔밥을, 성북슬로비에선 제철 반찬으로 채운 그때그때밥상을 선보인다.
정동국밥, 소셜펀딩으로 2억 출자금 모아
이 맛집들의 배경에는 사회적기업의 명확한 창업 미션과 추구하는 사회적 가치가 있다. 정동국밥을 운영하는 성공회푸드뱅크는 밥차 운영, 도시락 배달을 통해 노숙인과 결식노인 3400여명에게 무료로 식사를 제공한다. 비용 마련을 위해 음식점을 열어 그 이익으로 무료 식사 봉사를 이어가려 했다. 한그릇 먹고 나면 든든한 국밥으로 메뉴를 정했는데, 팔려고 만들어보니 막상 맛있지 않았다.
성공회푸드뱅크 대표 김한승 신부는 맛의 비결을 얻으려 유명 식품업체 회장을 1년 가까이 설득해 음식 노하우를 전수받았다. 신영복 성공회대 교수는 로고를, 시민들은 소셜펀딩을 통해 2억여원의 출자금을 만들어줬다. 소외계층에게 따뜻한 밥 한끼 대접하겠다는 미션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2012년 정동국밥 1호점은 이렇게 탄생했다. 서울 중구 관철동에 위치한 2호점은 하나은행 노조가 모은 기금에 회사 쪽과 (재)한국사회투자가 매칭펀딩 형식으로 돈을 보탰다.
|
이경숙 이로운넷 대표
|
사회적기업 오요리아시아의 레스토랑 떼레노에서는 베트남 출신 여성이 조리사로 일하고 있다. 오요리아시아는 국내 이주여성과 경력단절여성, 한국과 네팔의 취약계층 청소년들에게 요리를 가르쳐 사회로 나올 길을 튼다. 네팔의 카페미티니에선 6명의 청소년이 훈련 뒤 취업했다. 오가니제이션요리는 청소년 요리대안학교 ‘영셰프스쿨’을 무료로 운영하면서 청소년들이 요리로 자립하게 돕는다. 카페슬로비에서 훈련받았던 청소년들은 청년이 되어 2013년 제주슬로비, 성북슬로비 개점 때 요리사로 합류했다. 사회적 가치와 함께 사회적기업 모델 자체를 퍼뜨린 셈이다. 중소기업연구원에 따르면 일반 자영업자는 창업 3년 뒤 40.5%, 5년 뒤 29.6%만이 생존한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노하우도 돈도 없었던 ‘사회적 맛집’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가 아닐까.
글 이경숙 이로운넷 대표 sharing.ks@gmail.com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