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6.30 16:08
수정 : 2015.06.30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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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니카라과에서 아고라파트너십이 주관한 콘퍼런스에 참여하고 있는 중남미 사회적 기업가들.(위, 아래) 일주일간 교육과 네트워크 구축, 비즈니스 모델 개발 등이 이뤄진다. 이 프로그램은 유엔(UN)재단, 맥널티 재단 등이 협력하고 있다. 아고라파트너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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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의 숙명 ‘파이어니어 갭’ 극복하려면
저소득층 소액대출(마이크로파이낸스)로 유명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은 사회적 기업의 성공적 모델로 자주 인용된다. 하지만 이곳은 설립한 지 17년 만에야 손익분기점을 넘겼다. 탁월한 사회적 기업조차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자리잡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사회적 기업이 스스로 안정적인 운영을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간격을 ‘파이어니어 갭’(Pioneer Gap)이라 한다. 사회적 가치를 결합한 사업 모델을 구상하거나 혹은 시장에 이제 막 진입한 초기 사회적 기업이 투자를 받지 못하는 현상을 뜻한다. 이는 사회적 기업가들을 개척자(파이어니어)에 비유해 표현한 것으로 2012년 글로벌 전략 컨설팅그룹 모니터-딜로이트 보고서에서 처음 사용했다. 사회적 기업의 파이어니어 갭은 일반 벤처기업의 ‘죽음의 계곡’인 셈이다. 일반 벤처기업들이 겪는 창업 3~7년차의 자금난을 빗댄 표현인데, 절반에 가까운 기업들이 이를 넘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진다.
절반의 기업들이 못 넘는 ‘죽음의 계곡’
사회적 기업은 사회 문제 해결 혹은 혁신의 방법을 제품과 서비스의 형태로 만들어 파는 곳이다. 사회적 기업이 성장할수록 사회 문제가 다양한 방식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새로운 혁신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파이어니어 갭을 극복해야 할 이유다. 그러나 사회적 기업은 ‘기업’으로 시장에 속해 있지만 팔고자 하는 ‘사회적 가치’가 소비자나 시장에서 어떠한 선호도를 갖는지 예측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재무적 성과와 동시에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기에 재무 안정화 단계에 도달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
한편 투자자의 관점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곳으로 투자하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사회목적투자자(임팩트투자자)들 역시 초기 단계의 사회적 기업보다 시장에서 검증된 곳으로 투자가 몰리는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미국의 대표적 비영리 벤처캐피털인 어큐먼펀드의 최근 10여년간 투자 분포 변화만을 보더라도 점차 안정화되어 있는 사회적 기업으로 투자 비율이 높아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벤처 투자하듯 사회적 기업에 투자를
그러나 파이어니어 갭은 근본적인 혁신을 가져오기 위해 사회 전체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 이를 넘어서기 위한 글로벌 단위의 움직임은 매우 활발하다. 우선 벤처자선(Venture Philanthropy) 형태다. 벤처에 투자하듯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사회적 기업이나 비영리단체 역량 강화를 위해 지원하는 것을 벤처자선이라 한다. 석유 메이저 로열더치셸 그룹의 셸재단은 벤처자선의 좋은 예다. 셸재단은 에너지와 관련된 환경·사회 문제 해결을 사회적 기업과의 협업 혹은 그들을 육성하는 것으로 풀어나간다.
일례로 저소득층이 안전하고 저렴하게 사용할 수 있는 스토브(난로 겸 조리기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 인바이러핏(Envirofit)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인도 및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매년 400만명이 집 안에서 땔감이나 석탄을 태울 때 발생하는 연기 탓에 목숨을 잃고 있었다. 인바이러핏은 이러한 현실을 개선하고자 안전한 스토브를 만들기 시작했지만 투자 부족에 유통망도 없어 난항을 겪고 있었다. 셸재단은 이들에게 기술개발, 유통/판매, 대출 보증, 투자 유치 등을 지원했고 스토브는 널리 팔리기 시작했다. 인바이러핏은 파이어니어 갭을 극복했고, 이는 곧 인도와 아프리카의 더 많은 가정들이 안전한 스토브를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기업가들 상호간 노하우 공유
두번째로는 전문성 있는 중간지원기관의 활약이다. 사회목적투자 기관이면서 사회적 기업에 교육 및 지원을 제공하는 미국의 빌리지캐피털은 ‘상호지원’(Peer-Support) 프로그램으로 유명하다. 이 프로그램은 사회적 기업가들만이 모여 민주적 방식으로 각자의 비즈니스 모델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진행 과정에서 서로에게 점수를 매겨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2곳에는 미화 5만달러(약 5500만원)의 사업자금도 지원한다. 이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이유는 사회적 기업가들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생생한 조언과 노하우가 오고 가기 때문이다. 또 빌리지캐피털의 사회목적투자자 네트워크에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는 기회도 있다. 현재까지 상호지원 프로그램에 총 450개의 사회적 기업이 참여했고, 미화 약 1억달러(약 110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정부, 재단, 학계 등 협력 구도 갖춰야
세번째는 재단, 정부 등의 자금 지원 기관과 중간지원기관, 학계 등 사회적 경제 생태계 내 이해관계자들이 협력하는 것이다. 주로 중남미 사회적 기업을 육성하는 중간지원기관인 아고라 파트너십은 미주개발은행 등과 협력해 사회적 기업 발굴 및 육성, 투자까지 이어지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미국 에머리대학과는 매년 사회적 기업들의 성과 데이터를 구축하고 분석해 중남미의 주요한 사회적 이슈들을 발굴하고 있다. 이러한 협력 구도는 파이어니어 갭 해결 방식을 통합적으로 도출해낼 수 있고, 각 이해관계자는 보다 효과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해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시장에서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에 대한 관심과 참여는 점차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 자력으로 경쟁력 있는 상품을 내놓을 수 있는 사회적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들이 파이어니어 갭을 극복해 사회적 경제 생태계 안에서 유기적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하다.
워싱턴/황진솔 더브릿지 대표
sadus1@gmail.com
※ 필자는 사회목적투자 및 벤처자선에 대한 글로벌 협력과 현지 조사를 위해 미국 및 중남미를 오가며 연구 작업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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