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6.16 13:19
수정 : 2006.06.16 13:19
월 100만원에 밤샘 근무…절반이상이 비정규직
해고 1순위 이직 잦아…“내인생은 게임이 아닌데…”
김아무개(27·여)씨는 오늘도 눈을 뜨면 구직사이트를 찾는다. 게임 운영자(Game Master)를 찾는 업체를 확인하는 것이다.
김씨는 지난 4월까지 국내 최고의 게임업체에서 근무했다. 좋아하는 게임에 운영자로서 참여한다는 기쁨에 서울 ㅎ대학을 졸업한 뒤 가진 모교의 조교 직책을 그만두고 2004년 봄 게임업체의 파견근무자로 옮겼다. 처음엔 즐거웠다. 월 103만원(세금 포함)의 박봉에도, 24시간 운영되는 게임을 지키느라 밤낮으로 교대 근무를 하는 힘겨움을 견딜만했다.
웃음은 얼마가지 않았다. 하루 10시간 이상 일하면서 100만원도 안되는 돈을 받아서는 생활이 되지 않았다. 밤을 꼬박 새는 야근도 한달에 10일 이상 해야 했다. 파견직 근로자가 얼마나 처량한 신세인지 깨닫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ㅅ인력파견업체의 직원으로 정규직이 받는 휴일근무, 야간근무 수당을 전혀 받지 못했다. 200만~300만원 되는 정규직 월급의 절반 안되는 수준이었다. 더욱 힘든 것은 불투명한 장래였다. 시간이 갈수록 재계약하는 동료가 줄어들고 본사로 가는 이는 찾기 힘들었다. 결국 2년 계약이 끝나면 직장을 그만둘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올해 초 회사를 나왔다.
국내 유명 포털사이트의 게임 분야 운영자로 일한 김아무개(26)씨 역시 “운영팀 직원 가운데 실장급만 정규직이고 나머지는 거의 대부분 비정규직”이라며 “나이를 먹을수록 ‘영자’(운영자의 게임속 은어)는 전망이 없어져 대부분 사라진다”고 말했다. 이름없는 작은 게임업체들은 더 심하다. ㅈ게임업체의 김아무개 운영팀장은 “영세한 업체의 경우 월 80~90만원을 주며 시간 제한도 없이 일을 시키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한국게임산업개발원은 올해 국내 게임시장 규모를 5조6천억원으로, 2007년에는 6조2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1위 업체인 엔씨소프트가 지난해 340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등 게임업체도 눈부신 성장을 보이고 있다. 정부도 최근 ‘2010 게임산업 전략’을 발표하며 2010년 세계 게임 3대 강국 진입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이런 눈부신 성장의 바탕에는 박봉을 받으며 밤낮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영자’의 설움이 깔려 있다.
게임업계 종사자 가운데 특히 운영자는 40% 이상을 차지해 개발자·기획자 등 보다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렇지만 대우는 그 수에 반비례한다. 억대 연봉자가 속속 등장하는 게임 개발이나 기획 분야와는 달리 운영자들은 불투명한 미래를 안고 100만원 안팎의 월급에 매달려 생활하고 있다.
게임 운영자는 게임이 처음 나올 때 사용자의 관점에서 버그를 찾거나 질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후에는 게임 안에서 사용자의 불만, 건의사항을 수렴하고 이를 반영하기 위해 개발자와 소통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게임업체들은 운영자들이 무척 중요한 존재라고 말한다. 한 게임업체 이아무개 과장은 “사용자와 직접 만나기 때문에 ‘회사의 얼굴’과도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특히 사이버머니 등을 다루는 직책이어서 조심스런 관리가 필요한 대상이다. 그럼에도 운영자들은 구조조정시 ‘해고 1순위’다. 쉽게 잘린 인력은 취업시장으로 흘러나오고, 다시 다른 게임업체의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악순환을 보이고 있다. 종업원 300명 미만이라는 벤처기업의 요건도 운영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벤처기업으로서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인력을 늘릴 수 없다. 운영자들은 대부분 20대다. 젊은 나이에 비정규직으로 입문해 사회의 ‘쓴맛’을 보고 있는 셈이다.
한 게임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김아무개씨는 “어렵게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고 밝히면서도 인터뷰는 한사코 거절했다. 파견업체와 맺은 ‘비밀 유지’ 약속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 취재하는지 잘 알고 있으며, 짐작한 것들은 거의 사실”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이정훈 기자
ljh924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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