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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8.09.09 14:18 수정 : 2008.09.10 00:17

맨 앞 ‘0’ 빼먹으면 소방방재청이 위치정보 열람
“휴대전화 통신망이나 단말기 기술적 결함” 지적

딩동! 문자메시지가 왔단다. 확인 버튼을 누르자 ‘긴급 구난 위해 고객님의 위치를 소방방재청에 전송했습니다’라는 문자가 뜬다. 아침 밥 잘 먹고 안전한 지하철로 출근해 일 잘 하고 있는데, 웬 긴급 구난? 119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적도 없고, 가족들도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단다.

법무법인에 근무하는 김아무개씨의 경험이다. 그는 “감시당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현행 ‘위치정보 이용촉진 및 보호 등에 관한 법’을 보면,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은 본인이나 가족의 구조 요청을 받은 경우에 한해 구조 대상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이런 문의가 하루 평균 30~40건 정도 됩니다.” 구조 요청도 하지 않은 김씨의 휴대전화 위치정보가 왜 열람됐느냐는 질문에 대한 소방방재청 상황실 직원의 대답이다. 이 직원의 말대로라면, 소방방재청이 구조 요청도 하지 않은 사람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매일 수십여건씩 열어보고 있는 셈이다. 휴대전화 위치정보는 사용자의 현재 위치를 나타내는 것으로, 사생활 정보 중에서도 민감한 것이다.

소방방재청 직원들의 설명에 따르면, 소방방재청은 구조 요청을 받은 경우에 한해 구조 대상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열람한다. 문제는 당사자나 가족은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소방방재청은 요청을 받은 경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당사자 쪽에서 보면 ‘귀신이 곡할 노릇’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는 게 소방방재청 쪽의 설명이다.

가장 큰 원인은, 손가락이 주인의 생각과 따로 노는 것이다.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 수신자 전화번호의 앞 세자리가 119로 돼 있으면, 무조건 소방방재청 상황실로 연결된다. 뒷자리에 어떤 번호가 붙어있건 상관없다. 예컨데 ‘011-9xxx-xxxx’번으로 전화를 걸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맨 앞의 0을 빼먹으면 모두 소방방재청으로 연결된다. 김씨의 경우도 여기에 해당되는 것으로 확인됐다.

119로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수신되면, 소방방재청 컴퓨터가 자동으로 통신업체에 요청해 전화를 걸었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낸 사람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를 가져온다. 따라서 0을 빼먹은 것을 알고 서둘러 전화를 끊었거나 문자메시지가 잘못 전해진 경우에도 발신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가 열람된다. 0을 빼먹는 사례는 휴대전화 내구성 문제로 버튼이 잘 안눌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잦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119번으로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수신되면, 소방방재청은 발신자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확인한다. 하지만 문자메시지인 경우에는 수신자 전화번호나 내용에 따라 이게 생략되기도 한다. 소방방재청 정보화담당관실 직원은 “문자메시지 내용이 사적인 것이거나 앞의 0을 빼먹어 소방방재청으로 온 것에 대해서는 전화를 걸지 않는다”고 말했다.

장난으로 보내는 문자메시지 탓도 크다. 문자메시지를 보낼 때는 발신번호를 조작할 수 있는데, 이게 장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수단으로 악용돼 소방방재청 직원들의 일거리를 늘리고 엉뚱한 사람의 위치정보가 열람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예컨데 119로 장난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발신번호를 엉뚱한 사람의 휴대전화 번호로 조작하면, 해당 전화번호 사용자의 위치정보가 열람된다.


이런 상황은 휴대전화 통신망이나 단말기 쪽의 기술적 결함으로도 발생한다. 112번으로 전화를 걸면 소방방재청 상황실로 연결하던 ‘소울폰’의 사례에서 보듯, 다른 곳으로 건 전화가 소방방재청이나 해양경찰청으로 연결돼 위치정보를 열람당하기도 한다. 소방방재청 직원은 “구조 요청을 한 적이 없는데 위치정보가 열람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는 문의를 확인하다 보면 기술적 결함에 따른 오류 내지 의도적인 악용으로 추정되는 것도 더러 있다”고 말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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