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01 19:27
수정 : 2005.08.01 19:28
엑스파일뒤 폭증…금지·삭제 한계, 미디어화·독립기구등 대안 모색 중
김아무개(27)씨는 포털사이트에서 ‘악플’, 즉 문제가 있는 댓글들을 지우는 일을 1년째 하고 있다. 하루 평균 이 포털사이트에 올라오는 댓글은 무려 10만여건. 김씨와 동료 10여명의 임무는 이 중 상업적 목적이 있거나 허위사실 유포,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댓글을 되도록 신속하게 제거하는 것이다.
하루 만여건 악플과의 ‘전쟁’=누리꾼(네티즌) 사이에 댓글로 붙는 싸움을 ‘악플전쟁’이라고 하지만 댓글을 관리하는 김씨의 일도 ‘전쟁’에 가깝다. 그와 동료들이 하루에 지우는 댓글은 평균 1만건. 지난해까지만 해도 주로 기사에 대한 찬반 의견 개진에 머물렀던 댓글들은 올 들어 질적, 양적으로 크게 변했다.
“연예인 엑스파일 영향이 컸죠. 당시 저희가 아무리 지워도 ‘여기 가면 있다’ ‘내 홈피에 올려놓았다’라는 댓글들이 엄청 올라왔거든요. 관련 기사에 댓글 기능을 닫아버리니까, 네티즌들이 아예 아무런 관련도 없는 기사에 댓글을 올려놓더라고요.”
이후 서아무개씨 자살사건, 개똥녀, 도시락 사건, 떨녀 등 기존 뉴스의 관점에서는 중요하지 않지만, 네티즌들이 보기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한 사건의 전파에 ‘댓글’이 폭발적 구실을 했다. 김씨는 “정치나 경제의 민감한 현안에 대한 댓글은 놔두는 편”이라며 “가장 골치아픈 경우는 윤리적 신념을 갖고 특정 사건 관련 인물의 얼굴과 전화번호 등을 공개하는 이들”이라고 전했다.
‘악플 퇴치팀’의 요즘 최대 화두는 ‘드라군 놀이’다. 기사의 내용에 관계없이 한 누리꾼이 “하지만 드라군이 출동하면 어떨까?”라는 댓글을 올리면 다른 이들이 바로 ‘드!’ ‘라!’ ‘군!’이라는 댓글을 연이어 붙이는 이 ‘허무주의적 댓글놀이’를 삭제할 것인지 말지다.
댓글도 이제 미디어=댓글 올리기가 게시물에 대한 반응을 넘어 여론 전파와 정보 전달, 나아가 하나의 놀이로까지 발전하는 등 ‘진화’를 거듭하자 각 포털들 역시 변화를 모색 중이다.
네이버는 지난달 초부터 뉴스 게시물에 ‘덧글(댓글) 열기’ 버튼을 도입해, 보고 싶은 사람들만 뉴스 댓글을 달도록 했다. 하루 12만건으로 폭증하고 있는 댓글 중 상당수가 뉴스 보기를 방해하는 ‘악플’로 보고 조회수가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뉴스 본연에 치중하자’고 결심한 것이다.
채선주 네이버 홍보실장은 “댓글을 커뮤니티와 엮거나, 더 정리된 본인 생각을 나타내게끔 유도하는 등 새로운 운영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편집자가 가공해 사이트에 올린 기사에만 댓글 기능이 있었던 다음도 이번달부터 모든 기사에 댓글이 자동으로 붙는 방식을 채택한다. 미디어다음의 최정훈 팀장은 “유해 댓글과 관련해서는 네티즌들의 신고 등 자율규제를 적극 활용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네이트는 지난달 초부터 누리꾼들의 댓글을 ‘미디어화’했다. 누리꾼들에게 실명과 별도의 ‘필명’을 등록하게 하고, 그가 추천한 기사와 그동안 쓴 댓글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사 블로그를 만든 것이다. 네이트는 “댓글의 신뢰도를 높이고, 네티즌들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한 사람이 추천한 기사를 읽게끔 유도하는 등 쌍방향 통신을 강화한 새로운 댓글 미디어”라고 소개했다.
전문가들 ‘시민사회 참여한 자율규제로’=전문가들은 ‘포털 저널리즘’과 더불어 부쩍 영향력이 늘어난 댓글에 관한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많게는 수만개의 단어를 일일이 ‘금칙어’로 지정하고 문제가 있는 글은 삭제하는 현재의 ‘업체 주도’ ‘퇴치식’ 접근법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장우영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상임연구원은 “어떤 댓글이 명예훼손이나 사생활 침해인지 가리는 그 과정 자체가 문제일 수 있다”며 “불법 콘텐츠에 대해서는 사법당국에 맡기되, 다른 유해정보와 관련해서는 포털과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자율적 규제를 모색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디어다음의 최정훈 팀장은 “프라이버시 침해 등 부작용이 예상되는 인터넷 실명제를 성급히 추진하기보다, 인터넷 콘텐츠 관련 언론중재위원회 같은 독립기구의 설립을 선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기업협회는 사이버폭력 방지를 위한 게시물 관련 공동 방안을 발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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