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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11.29 14:53 수정 : 2018.11.29 17:22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25일 오전 서울 공덕동의 한 식당에 통신장애로 카드결제가 안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게시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더(the) 친절한 기자들]
통신서비스는 이제 생계형 수단
통신구 화재 따른 통신대란 사태로
대리기사·택배기사 등 생업 타격
이를 감안한 피해보상 요구 커져
KT는 “이용약관·기존요금 기준” 고수
통신대란 피해보상 기준 손질 필요

지난 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의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25일 오전 서울 공덕동의 한 식당에 통신장애로 카드결제가 안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게시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어제 저녁 지인들과 이른 송년 모임이 있었습니다. 통신분야를 담당한다고 했더니, 화제가 자연스럽게 지난 24일 발생한 케이티(KT) 아현동 통신구 화재와 이후 이어진 통신대란으로 흐르더군요. “대한민국의 급소가 드러났다”, “정보통신 강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느냐”, “세상이 멈추는 경험을 했다” 등 직접 경험했거나 언론에서 본 내용을 한마디씩 하더군요.

인터넷 통신망은 대부분 가복구됐고, 구리선을 쓰는 유선전화나 카드결제 통신망도 이번 주말까지는 복구된다고 알려주자, 화제가 피해자 보상 문제로 넘어갔습니다. 케이티가 보상책을 내놨는데 얼마나 형편없으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말도 안된다고 대노했다더라, 케이티가 버틴다고 하더라 등 ‘카더라’ 얘기들이 쏟아졌습니다. 이번 통신대란을 남 얘기가 아닌 언제든 자신을 포함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황으로 보는 분위기가 확연했습니다.

불탄 통신망 복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가자, 이제 통신대란 사태 피해자의 보상방안으로 초점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사실 저도 어디까지, 어느 수준으로 보상해줘야 한다는 대안을 갖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다같이 생각해볼 지점은 많은 것 같습니다.

먼저 케이티가 내놓은 피해자 보상방안부터 볼까요. 케이티는 화재 발생 다음날인 25일 보도자료를 통해 ‘금번 화재로 인해 피해를 본 KT의 유선 및 무선 가입고객을 대상으로 1개월치 요금 감면 시행. 1개월 감면금액 기준은 직전 3개월 평균 사용 요금. 감면 대상 고객은 추후 확정 후 개별 고지 예정. 무선 고객의 경우 피해 대상지역 거주 고객 중심 보상 예정.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보상은 별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아직 통신대란 복구도 채 안 된 상태에서 보상책부터 내놓은 것입니다.

KT아현지사 화재로 인해 중구, 용산구, 서대문구, 마포구, 은평구 일대에서 통신 장애가 발생한 2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로비 전광판에 원내 통신 장애 안내가 나오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이를 풀어보면, 이동통신·유선전화·초고속인터넷·인터넷텔레비전 등 유·무선 개인 가입자에 대해서는 최근 3개월 납부 평균 요금을 기준으로 한달치를 감면해주고, 편의점·음식점·병원 등 통신장애로 카드결제와 의료보험 가입 확인 등이 안 돼 피해를 본 소상공인에 대해서는 별도 보상책을 검토하겠다는 것입니다. 서울 한복판을 40~50년 전 상황으로 되돌린 것에 대한 보상방안 치고는 너무 간단한 대책 아닌가요?

실제 피해 사례는 예상보다 복잡할 수 있습니다. 119 전화 불통으로 골든타임을 넘겨 사람이 숨졌을 수도 있고, 병원에서 통신 불능으로 의료보험 가입 확인이 안 돼 진료 접수를 받아주지 않아 아픈 몸으로 무작정 기다렸을 수도 있습니다. 또 카드결제가 안 돼 식당·편의점을 이용하지 못해 굶었거나, 이동전화가 안 돼 대리기사·택배 콜을 전혀 받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문제가 복잡하다 보니, 상당한 공방과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우선 소상공인의 범주를 어디까지로 잡을 것인가가 쟁점입니다. 요즘은 이동통신을 생계 수단으로 삼아 살아가는 분들이 많습니다. 대리기사, 퀵서비스 기사, 택배기사, 배달원, 택시운전사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들을 소상공인에 포함해, 전화를 받지 못해 입은 손해까지 보상할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동네 중국음식점 등 집전화로 음식이나 상품을 주문받아 판매하는 자영업자들도 많은데, 이들이 통신망 장애로 전화 주문을 받지 못해 입은 손해 부분을 어떻게 산정해 보상해야 하는지도 쟁점거리입니다.

일반 개인 가입자들이 ‘기회’를 잃은 부분도 있을 것입니다. 통화 불능으로 약속을 못해 어떤 기회를 잃은 경우가 있을 수 있고, 통화가 안돼 취업 등의 기회를 잃은 경우도 있겠지요. 한가한 얘기로 들릴 수 있고, 이런 부분까지 보상하라는 것은 너무 과한 것 아니냐고 반발할 수 있지만, 통신사들이 해마다 30조~40조원의 매출을 올려 3조~4조원의 영업이익을 내는 데는 이들의 기여가 크다는 점에서 생각해볼 대목인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케이티는 겉으로는 “모두 검토하겠다”고 합니다만, 속얘기를 들어보면 상당부분 ‘억지 요구’로 간주해 보상을 외면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이용약관 운운하며 보상방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하기가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케이티 쪽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고객을 더는 화나지 않게 하는 수준으로 상황을 관리하며 시간이 흘러 분위기가 가라앉고 사람들 기억이 희미해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상책이 아닐까 싶네요.

한가지 눈길을 끄는 대목은, 케이티의 주장이 그때그때 다르다는 것입니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들이 이동전화 원가자료를 들이대며 요금인하를 요구할 때마다 케이티는 “요금은 원가가 아닌, 고객이 통신서비스를 통해 얻는 가치를 봐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눈에 보이는 원가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피해보상에 대해 케이티는 정반대 주장을 합니다. “이전에 냈던 요금을 기준으로 피해보상액을 산정할 수밖에 없다. 고객이 어떤 기회를 잃어 금전적인 피해를 봤는지 확인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재밌는 것은 다른 통신사들도 기자들에게 케이티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심지어 과도한 보상 요구는 고객들의 ‘도덕적 해이’라고까지 지적하고 있습니다. 본인들도 언제든 당할 수 있으니, 남의 얘기가 아니겠죠.

KT 아현동 통신구 화재로 통신 대란이 발생한 지난 24일 서울 시내 한 공중전화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한겨레 자료사진
결국 정부·정치권·시민단체가 한 목소리로 “더 적극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나섰습니다. 먼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지난 26일 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을 케이티 혜화지사로 불러 “케이티는 피해보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28일에는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아현동 통신구 화재현장을 방문해 “가복구가 끝나가는 만큼, (케이티는) 이제 자영업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참여연대도 케이티 광화문지사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케이티는 이번 불통 사태와 관련해, 통신 불통 사태 재발방지를 위해 점검·백업 체계 강화 등 통신 공공성을 확대하고, 소비자·자영업자·택배기사·대리기사 등의 추가 피해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습니다. 이들은 정부를 향해 “소비자 집단소송제 도입을 통한 피해자구제 방안을 마련해달라”고도 요구했습니다.

이런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복구가 애초 예상했던 것보다 늦어져서 일까요. 케이티가 29일 추가 보상방안을 내놨습니다. 유선가입자 가운데 동케이블 기반 인터넷 이용 고객에게는 3개월 치 이용료를 감면하고, 동케이블 기반 일반전화(PSTN) 가입자는 6개월치 요금을 감면해주겠답니다. 다만 이동통신 가입자들에 대한 보상책은 추가된 게 없습니다. 소상공인들에 대한 것도 ‘헬프데스크’를 확장 운영한다는 것뿐입니다. 고객 편의를 위해 신촌지사에서 운영하던 ‘소상공인 헬프데스크’를 용산(고객센터 8층)으로 이전하고, 은평지점·서대문지사·신촌지점에서도 헬프데스크를 운영한다고 합니다. 헬프데스크 상담 무료전화번호는 080-390-1111(용산), 080-360-1111(은평), 080-380-1111(신촌), 080-370-1111(서대문)입니다.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이런 공방이나 신경전은 앞으로 몇 라운드를 더 거쳐야 끝날 것 같습니다. 피해자가 만족해서라기보다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인 요구의 강도가 떨어지는 수순을 거쳐 끝나지 않을까 싶습니다. 피해자들이 케이티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통신대란 사태의 피해자 보상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관련 법과 제도를 ‘차세대 이동통신(5G)’과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 서비스에 의존해 생계를 이어가는 계층이 기하급수적으로 늘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번 피해보상 공방에서 보듯 법·제도와 관행은 음성통화가 중심이던 시절에 머물고 있습니다. 통신사 경영자들이 더이상 통신망 관리를 ‘비용 먹는 하마’로 간주해 소홀히 할 수 없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피해보상 수준을 높이고, 구체화해야 할 거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 참, 이번 사태로 카드결제가 안 된 부분에 대해서는 카드사에도 피해보상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 검사 출신인 김상천 변호사는 <한겨레>에 기고한 글에서 “카드결제를 통해 통신사보다 카드사가 얻는 이익이 더 크고, 통신회선 장애는 예상될 수 있기에 이 장애를 감수할지, 돈을 더 들여 통신회선 이중화를 할지 여부는 카드사의 결정이고, 그렇다면 이런 사고로 인한 책임을 주로 배상해야 하는 주체는 카드사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고 했습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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