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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25일 오전 서울 공덕동의 한 식당에 통신장애로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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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시민단체 ‘5가지 꼼수’ 지적
‘피해보상’ 선례 안 남기려고,
보상금 아닌 ‘위로금’ 지급 대상 최소화
번호이동 못하도록 발목 잡는 효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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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24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케이티(KT) 아현국사 통신구에서 불이 나 화재현장 일대에 통신장애가 발생했다. 25일 오전 서울 공덕동의 한 식당에 통신장애로 카드결제가 안 된다는 내용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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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발표된 케이티(KT)의 서울 아현동 통신구 화재 및 통신대란 피해보상 방안을 두고 피해자와 시민단체 쪽에서 ‘꼼수 종합세트’란 비판이 나온다. 대리기사·택배기사 등 이동통신을 생계수단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일거리 상실 등 ‘보이지 않는 피해’를 외면한 탓이다. 이용자 눈높이에 맞는 보상을 통해 통신 공공성을 소홀히 했다가는 큰 대가를 치른다는 ‘교훈’으로 삼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반면, ‘위로금’ 규모에 기대를 걸어보자는 반응도 없지 않다.
요금 감면 받으려면 6개월 이상 사용?
케이티는 이번 통신대란 피해자들에게 1~6개월치 요금을 감면해준다고 하면서 한꺼번에 현금으로 보상하는 방식이 아닌 2019년 1월부터 해당 기간에 걸쳐 매월 청구 요금에서 빼주기로 했다. 광케이블 기반의 유·무선 이용자는 내년 1월 청구 요금에서 최근 3개월(8~10월) 요금 평균치만큼을 빼주고, 동케이블 기반 초고속인터넷 이용자는 1~3월 청구 요금 때마다, 동케이블 기반 일반전화(PSTN) 가입자는 1~6월 요금 청구 때마다 각각 그만큼을 감면해주기로 했다.
케이티 가입자가 피해보상으로 제시된 요금감면을 다 받아내려면 해당 기간을 채울 때까지 케이티 통신서비스 가입 계약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이번 통신대란 사태에 분통이 터져, 혹은 케이티 통신망의 안전·품질과 요금 등에 불만이 생겨 다른 통신사업자로 옮기려면 피해보상으로 제시된 요금감면을 포기해야 한다. 사실상 요금감면을 앞세워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 피해자들이 이탈하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전략을 병행하는 처사란 지적이 나온다.
위로금을 주는 것이지 ‘피해보상’을 한 게 아니다?
케이티는 보상안을 내놓으면서도 ‘피해보상’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았다. 대신 ‘장애보상’이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보상 내용도 1~6개월치 ‘요금감면’이 전부이고, 연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들에게만 따로 ‘위로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한 위로금 지급 대상 소상공인 범위를 ‘사업자등록증이 있는 자’로 제한해, 사업자 등록 없이 일을 하는 대리기사·택배기사 등을 제외했다.
케이티가 이번 사태를 통신의 공공성을 외면하며 통신구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 수익성 중심 경영이 불러온 ‘인재’로 보고 있지 않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대목이다. 단지 흔히 있을 수 있는 통신망 ‘장애’로 간주한 터에 경영진 누구도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는 시각을 보여준다. ‘피해보상’ 선례를 남기지 않기 위해 ‘꼼수’를 부렸다는 지적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특히 ‘위로금’이란 표현에 분통을 터트리는 피해자가 많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팀장은 “위로금이란 말은 나는 책임이 없지만 피해를 봤다고 하니 위로하는 마음으로 돈을 조금 쥐여주겠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에 케이티 경영진은 책임이 없다고 말하는 꼴”이라고 말했다.
케이티 노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가 났을 때 처음에는 불이 날 수 없는 곳이란 지적이 많았는데, 이번에 통신구 청소에 참여한 직원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불이 날만 했다고 한다. 먼지가 엄청나게 쌓여 있는데다 공사를 하고 방치된 쓰레기들이 곳곳에 쌓여 있어 작은 불티만 있어도 불이 날 수 있었다고 한다. 인건비를 절감하겠다며 통신구 관리 인력조차 남기지 않은 경영이 불러온 인재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주민센터 방문 신고’ 절차 만들어 포기하게 만들자?
케이티는 보상안에서 연매출 5억원을 넘지 않는 소상공인들에게는 따로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하면서, 위로금을 받으려면 신분증과 사업자등록증 사본을 들고 가까운 주민센터로 와서 ‘장애 신고’를 하라고 했다. 주민센터를 방문해 신고하라고 하니까 지방자치단체가 이번 보상안 마련과 집행 절차에 개입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케이티 직원이 주민센터에 자리를 잡고 신고를 받을 뿐이다.
통신 사업자들은 태풍·폭설 등에 따른 재난 발생 지역으로 지정된 곳의 주민들에게 통신요금을 감면해줄 때도 이번처럼 ‘피해신고 절차’를 둬, 감면 대상을 최소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아왔다. 피해 복구에 바쁜 사람들이 요금감면을 받겠다고 주민센터를 방문하겠느냐는 것이다. 피해자 직접 신고 없이도 케이티 데이터를 통해 피해 규모를 확인할 수 있다.
연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영세 사업자로서 대부분 생업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더욱이 요즘은 연말이라 더 바쁘다. 당연히 이런 사람들에게 위로금을 받고 싶으면 주민센터를 방문해 장애 신고를 하라는 것은 “치사하고 더러워 안 받겠다”는 반응을 유도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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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티가 소상공인의 장애신고를 받기 위해 만든 서류 양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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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케이티는 위로금 지급 기준과 규모 등을 밝히지 않았다. 또한 장애신고 서류 양식에는 인적사항과 함께 어떤 통신상품을 쓰고 있으며, 장애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를 묻는 항목밖에 없다. 케이티는 신고 접수 업무를 맡은 직원들을 교육하면서 ‘위로금 지급 기준·규모·시기에 대해서는 확정되지 않았다고 해라. 또한 고객이 피해 내용을 설명하면 대거리하지 말고 기타 난에 메모해두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 중국음식점 주인은 “얼마 줄지도 모르는데, 이 추운 날 장사 팽개치고 주민센터로 오라고? 참 너무하네”라고 말했다. 케이티 한 직원은 “네트워크 장비에 남은 기록 데이터를 통해 가입자별 통신장애 시간 등을 뽑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주민센터까지 와서 신고하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연매출 5억원 이상 기업 고객은 ‘따로 모시기’?
케이티는 연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들에게는 위로금을 주기로 하면서 연매출 5억원을 넘는 기업에 대한 추가 보상안은 내놓지 않았다. 케이티는 이와 관련해 “공식적으로는 연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에게 장애 신고 절차를 거쳐 위로금을 지급하는 것 외에 다른 추가 보상은 없다”고 못박았다.
하지만 케이티 내부에서는 연매출 5억원 이상 기업 등에 대해서는 ‘개별 협의’를 통해 따로 보상할 것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대형 고객들이 그동안 비용 등을 이유로 케이티 통신망·통신서비스를 써오던 데서 벗어나 경쟁업체 통신망·통신서비스를 이용해 ‘백업체제’을 갖추려는 움직임에 나서자 따로 ‘관리’에 나섰다는 것이다. 위로금 같은 금전적 보상이 아닌 통신망·통신서비스 이용료 인하 같은 게 제시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차수’ 늘려 노력하는 모습 보여주기?
케이티가 아현국사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 발생 이후 보상안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세번째다.
첫번째는 통신구 화재 발생(24일) 바로 이튿날 나왔다. 보도자료를 통해 ‘금번 화재로 인해 피해를 입은 케이티의 유선 및 무선 가입고객 대상 1개월 요금 감면 시행. 1개월 감면금액 기준은 직전 3개월 평균 사용 요금. 감면 대상 고객은 추후 확정 후 개별 고지 예정. 무선 고객의 경우 피해 대상지역 거주 고객 중심 보상 예정. 소상공인에 대한 피해 보상은 별도 검토할 것임’이라고 밝혔다. 통신대란 복구도 안 된 상태에서 보상책부터 내놓은 꼴이다.
케이티는 29일 두번째 보상안을 내놨다. 유선 가입자 가운데 동케이블 기반 인터넷 이용 고객에게는 3개월치 이용료를 감면하고, 동케이블 기반 일반전화 가입자는 6개월치 요금을 감면해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에 세번째 보상안을 내놓으면서 연매출 5억원 이하 소상공인들에게는 추가로 위로금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정부·정치권·시민단체가 “더 적극적인 보상”을 요구하고 나설 때마다 보상 내용을 조금씩 더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케이티가 1차 보상안을 내놓은 이튿날(26일)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통신 3사 최고경영자들을 케이티 혜화지사로 불러 대책회의를 하기에 앞서 “케이티는 피해보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28일에는 노웅래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방송위원회 위원장이 상임위 소속 의원들과 아현동 통신구 화재 현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가복구가 끝나가는 만큼, (케이티는) 이제 자영업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는 일에 집중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날 참여연대도 케이티 광화문지사 앞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케이티는 이번 불통 사태와 관련해, 통신 불통 사태 재발방지를 위한 점검 및 백업체계 강화 등 통신 공공성을 확대하고, 소비자·자영업자·택배기사·대리기사 등의 추가 피해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이후 2차 보상안이 나왔다. 물론 여기에는 통신망 복구가 예상보다 늦어진 것도 반영됐다. 그 뒤 이낙연 총리가 아현동 통신구 화재 현장을 방문해 적극적인 보상을 촉구했고, 이어 이번 3차 보상안이 나왔다.
아현동 통신구 화재와 통신대란 피해자 보상과 관련한 공방과 신경전은 앞으로 몇 라운드를 더 거칠 가능성이 크다. 피해자가 만족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이 희미해지면서 사회적인 요구의 강도가 떨어지는 수순을 거쳐 끝날 것이란 전망이 많다.(▶관련기사:
[업계 인사이드] KT 통신대란 사태 피해보상, ‘방식’ 고민되네) 피해자들이 케이티를 상대로 집단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거나 내년 6월 출범하는 통신분쟁조정위원회에 분쟁조정을 신청하는 수순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
김재섭 기자
j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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