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홈은 새 아파트 전유물?
와이파이 기능 갖춘 최신 가전으로만?
만능리모컨·각종 센서 DIY 설치에
20년 낡은 아파트도 스마트홈!
조명·에어컨 자동 작동은 기본
플랫폼앱 깔고 커넥터 연결하면
리모컨 안 되는 무뚝뚝한 커피포트도
말귀 알아듣는 똑똑한 가전으로
음성·앱 통한 조작 편리하지만
한 명령에 여러 가전 반응 혼란
인터넷 끊길 땐 통제불능 오류 가능
“필수 가전엔 수동버튼 남겨야”
스마트홈 전문 유튜버 오날두(Ornaldo)씨가 자신의 집에 구축한 스마트홈. 인공지능(AI) 비서가 신호를 받아 집 안 가전에 전달하자 전등이 켜지고 커튼이 자동으로 닫혔다. 사용자가 미리 설정한 조건에 따라 공기청정기도 가동된다. 영상 : 오날두 계정
일본 도쿄에 사는 장익제(32)씨는 ‘스마트홈’에 산다. 아침 7시 기상시간과 밤 12시 취침시간에 맞춰 전등이 자동으로 켜지고 꺼진다. 스마트폰 명령을 받은 에어컨과 선풍기는 퇴근 전 방 안을 시원하게 식힌다. 건설사와 계약을 하거나 새 가전을 산 게 아니다. 20년 된 낡은 아파트 곳곳에, 8만5천원을 들여 사물 인식센서를 달았을 뿐이다.
스마트홈은 한동안 ‘그림의 떡’이었다. 입주자를 알아보고 공동현관문을 열거나 엘리베이터를 자동 호출하려면 아파트 전체에 스마트홈 시스템을 내장해야 했다. 공간을 그대로 두고 가전제품만 스마트폰과 연결하려 해도 와이파이 인식기능이 없어 전부 새로 사야 할 판이었다.
장씨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우연히 알게 된 샤오미의 ‘만능리모컨’에 눈을 떴다. 적외선(IR) 신호를 이용하니 집안 가전제품 대부분을 리모컨과 연결된 스마트폰으로 제어할 수 있었다. 저렴한 센서를 사서 곳곳에 달았더니 집 전체가 사물인터넷 공간이 됐다. “복잡한 전문지식 없이도 스마트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 신이 났다.
장익제씨의 집에 설치된 ‘스마트홈’ 보조도구들. 오른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샤오미 만능 리모컨·온습도센서·무드등·동작감지기. 리모컨과 연결된 스마트폰 앱으로 조작할 수 있다. 장씨가 운영하는 ‘도쿄외노자’ 유튜브 영상 갈무리.
스마트폰으로 가전 다루기
장씨는 가장 간단하면서도 실용적인 스마트홈 구축 전략을 택했다. 와이파이나 적외선 신호 송·수신 기능을 갖춘 리모컨을 사면 따로 흩어져 있던 가전들의 리모컨 신호를 한꺼번에 인식할 수 있고 스마트폰과도 연동이 가능하다. 주로 로지텍 하모니나 샤오미 미(Mi) 리모트를 사서 이와 연동된 플랫폼 애플리케이션(앱)에 연결한다. 방 안 온도와 습도를 측정하는 센서를 산 뒤 앱에 탑재된 ‘시나리오 만들기(홈 오토메이션)’ 기능을 이용하면 방의 상태를 가전과 연계시켜 명령을 내릴 수도 있다. 방 온도가 30도가 넘으면 에어컨을 켜도록 명령어를 짜는 방식이다.
샤오미 ‘미 홈’ 앱에 입력한 개인 조건 명령. 장씨가 운영하는 ‘도쿄외노자’ 유튜브 영상 갈무리.
커피포트나 정수기처럼 리모컨이 없는 소형가전제품은 좀 더 복잡한 공정을 거쳐야 한다. 스마트 플러그와 스마트 멀티탭, 전원 온·오프 컨트롤러를 이용해서 원하는 가전제품과 전원 사이에 연결하면 된다. 가전제품은 늘 켜짐 상태로 설정하고 커넥터에 전기 공급·차단 역할을 맡긴다. 스마트싱스·홈킷·홈어시스턴트(HA) 등 가전을 하나로 모을 스마트홈 플랫폼앱을 스마트폰에 깐 뒤 커넥터를 등록한다. 인공지능(AI) 비서와 연결해 음성으로 제어할 수도 있다. 다만 플랫폼에 따라 일부 기기와 연동되지 않을 수 있으니 호환 가능 제품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가전에 ‘명령’할 수 있다고요?
아침 7시 기상시간에 맞춰 커피포트 물을 자동으로 끓인다고 가정하자. 커피포트의 플러그와 벽에 붙은 콘센트 사이에 스마트 플러그를 연결한다. 스마트폰에 ‘스마트싱스’ 앱을 깔고 플러그를 등록하면 그 다음부터는 앱만으로도 구동이 가능하다. ‘자동실행 규칙’에 ‘오전 7시가 되면 1번 플러그를 켠다’고 등록하면 정해진 시간에 커피머신에 전기신호가 들어가 물을 끓일 수 있다. 같은 방식으로 집안 곳곳 가전을 제어할 수 있다.
커피포트와 연결한 줄리(Zuli) 스마트 플러그. 줄리 제공.
다만 전원 제어 방식을 활용하려면 구형 가전제품에 ‘정전보상’ 기능이 있는지 꼭 확인해야 한다. 정전보상이란 정전이 된 후 전기가 다시 들어왔을 때 정전이 되기 전 기기 활성화 상태로 자동 복구하는 기능이다. 가전제품 전원을 켜 두고 코드를 뽑은 뒤 다시 꽂았을 때 자동으로 작동한다면 정전보상 기능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 기능이 없는 제품은 스마트 콘센트로 전기 신호를 끊은 뒤 일일이 다시 켜야 하므로 사실상 사물인터넷이 불가능하다.
자주 쓰이는 제품은 중국산 소노프 스위치와 다원 디엔에스(DNS)의 파워매니저 플러그, 샤오미 스마트 멀티탭이다. 프리미엄 가전 시장 위주인 한국에서는 값싼 국산 스마트 부품을 찾기 어려워 알리바바나 아마존 등 국외 온라인몰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복잡한 명령어는 스마트싱스 자동화앱 ‘코어(웹은 웹코어)’를 이용한다. 단순 조건절(“ㄱ 하면 ㄴ 하라”)보다 명령어가 복잡해질 때(“밖이 ㄱ일 때 집 안의 ㄴ을 측정해서 ㄷ을 실행하라”) 코어앱을 이용해 직접 여러 명령어를 기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실내 이산화탄소 농도가 2000ppm 이상 되면 바깥 미세먼지 농도를 확인한 뒤 인공지능 스피커를 통해 사용자에게 상황을 알리고 환기 시스템을 가동하라”고 명령하려면 실외 날씨 데이터를 끌어 와 집안 센서 정보와 연동시키고 준비된 멘트를 할 수 있도록 코어앱에 미리 설정해두면 된다.
컴퓨터 지식이 있는 일부 디아이와이(DIY)족들은 ‘아두이노’와 ‘라즈베리파이’와 같은 초소형 컴퓨터를 이용하기도 한다. 화분이나 거울처럼 아예 전기가 통하지 않는 생활물품을 사물인터넷으로 만드는 데 유용하다. 스마트홈 전문 유튜버 오정태(35)씨는 거울 뒤에 라즈베리파이 전용 모니터를 붙인 후 날씨·시계·주요 뉴스를 거울로 보여주는 ‘매직미러’를 만들기도 했다.
날씨·시간·미세먼지 농도와 주요 헤드라인뉴스를 알려주는 거울. 오정태(35)씨 유튜브 갈무리.
이 모든 게 귀찮다면 가전을 하나로 연결하지 않고 특정 앱이나 스마트홈 기기를 사서 원하는 기능만 갖출 수도 있다. 김진우(41)씨는 와이파이 인식 기능이 있는 샤오미 ‘미 박스’를 설치해 휴대폰 영상을 티브이로 즐긴다. 8년 된 구형이지만 최신형처럼 스마트폰 영상을 화면으로 끌어올 수 있다. 김씨는 또 안 쓰는 휴대폰을 천장에 고정한 뒤 앱을 깔아 폐회로텔레비전(CCTV) 대용으로도 쓴다. 최근엔 지그비 신호를 이용해 구형 커튼을 자동으로 여닫는 기기도 구입해 사용하고 있다.
‘가성비’ 스마트홈 어렵지 않아요
스마트홈에도 불편한 점은 있다. 앱끼리 서로 호환 오류가 생겨 연결이 끊기거나 동시에 여러 가전이 명령에 반응하는 등 시행착오가 있을 수 있다. 마음 먹고 ‘해외직구’한 상품이 배터리가 지나치게 빨리 닳거나 발열이 심한 불량품인 적도 있다. 손님을 먼저 집에 들였는데 가전제품 리모컨을 다 치워버려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에어컨을 틀어줬다거나, 인터넷이 끊기자 집안 가전 전체를 통제할 수 없게 됐다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다. 디아이와이족들이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크고 작은 문제들을 끊임없이 서로 논의하는 이유다.
오정태씨는 “수 년 전 스마트홈을 처음 시작할 땐 정보도, 제품도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시행착오를 나눌 수 있는 커뮤니티가 많이 발전했다”며 “자신에게 잘 맞는 플랫폼을 선택해 가꿔 나간다면 저렴하게 멋진 스마트홈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또 “스마트홈을 음성과 앱으로만 구성하면 수동 버튼을 쓰는 것보다 불편할 때가 있다”며 “필수 가전엔 사물인터넷용 수동버튼을 따로 두는 등 온·오프라인 공간의 장점을 활용해 자신만의 환경을 만들어가길 추천한다”고도 조언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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