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0.10 18:57
수정 : 2019.10.10 18:59
국내 업체 영향 점검
반도체 소재공급선 다변화
국내 강소기업 납품 기회 생겨
유통산업 전반 ‘불매운동’ 확산
11일로 지난 7월4일 일본이 한국 반도체 재료 등의 수출규제를 강화한 지 100일째다. 2개월 사이에 한국이 일본의 백색국가(수출 우대국)에서 제외됐고 3대 핵심 반도체 재료(플루오린 폴리이미드, 감광액, 고순도 불화수소)의 수입 기한이 기존 1주일에서 최대 90일로 늘어났다. 산업 전반으로 규제가 확산되리란 비관적 전망은 비켜 갔지만 위기감은 아직 가시지 않았다.
지난 7월 3대 품목의 수출규제가 시행되자 정부는 추가 제재가 예상되는 품목 159개를 선별하고 자립화 방안을 짜는 등 수출규제 확산에 대비했다. 증권사들도 실리콘·배터리·블랭크마스크 등 첨단산업 핵심소재들을 거론하며 “전방위로 일본의 규제가 확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러나 한국 기업의 피해가 현실화하지는 않았다. 일본 정부가 개별 수출규제 강화 품목을 반도체·디스플레이 3대 재료에서 더 늘리지 않았고 자율준수기업에 한해 수출 절차를 간소화하는 시피(CP)제도도 계속 유지하기로 해서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SK)하이닉스는 일본이 아닌 제3국을 통해 재고를 확보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집계를 보면, 일본 정부는 지난 2개월간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1건, 감광액 3건, 기체 불화수소 3건 등 총 7건의 수출을 허가했다. 반도체 회로 설계에 쓰이는 액체 불화수소를 제외한 모든 품목이 수입됐으니 애초 우려보다도 타격이 크지 않았던 셈이다.
한국 반도체 업계는 위기대응력을 높였다.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는 일본으로 단일화됐던 소재 공급선을 미국·싱가포르·대만 등 여러 나라로 다변화했고 주요 재료 공급 차질에 대비한 ‘비상대응계획’(컨틴전시 플랜)도 짰다. 국내 반도체 후방산업의 기초 체력도 다졌다. 20년 만에 삼성전자와 에스케이하이닉스의 국내 거래 창구가 열렸고 솔브레인·후성·이엔에프(ENF)테크놀로지 등 국내 강소 기업이 대기업에 시범 납품할 기회를 얻었다. 일본과의 기술 격차를 좁히기 위해 정부는 연구개발(R&D) 지원 제도를 위험감수형·수요연계형으로 개편하고 노후화된 테스트 장비를 교체하기로 했으며 강소기업 100곳을 육성하기로 했다.
국민의 응집력은 예상을 넘었다. 자동차·맥주·의류·여행 등에 대한 일본 불매운동이 유통산업 전반으로 확산하면서 한국에 진출한 일본 기업은 적잖은 타격을 입었다. 하나투어와 모두투어의 자료를 보면, 지난 한달간 일본 여행 수요는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75.4~90.8% 하락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가 집계한 지난달 일본차 신규 등록 대수도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59.8% 감소했고 7월 넷째 주 국내 8개 카드사의 유니클로 매출액은 6월 넷째 주 대비 70.1%가량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한-일 갈등 장기화를 막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 한·일 양국이 협조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고 기술력이 떨어지는 제품을 쓰는 등 비효율이 발생할 수 있다”며 “모든 품목을 국산화하기보다는 국제 시장에서 통할 만한 핵심 품목을 추려야 한다”고 했다. 송기호 변호사도 “처음부터 일본 정부는 저강도 조처로 시작했고 수출을 무기화하려는 틀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 한국 기업이 일본 기술을 쓸 수 있는 선택지가 줄어들고 제품 경쟁력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강제징용 문제를) 정치나 외교 사안이 아닌 인권 사안으로 접근해 해결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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