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외교 재천명 국제사회와 마찰 계속될듯 4년 전, 조지 부시 대통령이 워싱턴 의사당에서 취임사를 할 때 그는 ‘소수파 대통령’이란 열등감을 떨칠 수 없었다. 플로리다 재검표를 거친 그의 승리가 정당하다고 본 미국민은 45%에 불과했다. 지금은 77%가 부시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정통성 회복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엔 명암이 엇갈린다. 부시는 4년 전보다 훨씬 심각한 국론 분열 속에서 2기 정권을 출범시키고 있다는 게 공통된 지적이다. ‘갤럽’ 조사에 따르면 그의 국정지지율은 51%로, 역대 재선대통령 중 가장 낮다. 재선 대통령에게도 얼마간 적용되는 언론과의 허니문은 더는 없다. 취임식 하루 전날인 19일치 <워싱턴포스트>는 1면 머리기사에 정반대의 목적을 갖고 워싱턴에 온 두 남녀의 얘기를 싣고 있다. 60살의 여성은 부시 취임식 축하행사 참석을 위해, 55살의 남성은 부시 반대시위에 참여하기 위해 둘다 멀리 캘리포니아에서 워싱턴을 찾았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4년 전보다) 희망은 줄어들고 분열은 확대됐다”라는 제목의 톱기사를 실었다. ‘갤럽’과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부시 2기 정권이 출범부터 심각한 사회적 분열에 직면해 있음을 지적한 것이다. 이는 집권 2기를 시작하는 부시 대통령의 최대 과제가 무엇인지를 상징한다. 레드(공화당 지지자)와 블루(민주당 지지자)로 갈라진 미국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다. 부시 역시 취임사에서 “단합을 간절히 바라고, 이를 위해 노력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강조했다. 부시 대통령은 집권 2기의 최우선 과제로 대외적으론 이라크 문제를, 대내적으론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꼽았다. <유에스에이투데이>는 “국내정책에서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는 우선 과제와 부시 대통령이 올려놓은 우선 과제 사이에 심한 괴리가 있다. 국민들은 사회보장제도보다 의료보험 문제를, 고액 의료소송을 막는 문제보다 환경문제를 더 중요시한다”고 전했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이념적 지향에 따라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들이다. 정책 추진이 오히려 당파적 대립을 줄이기보다 가속화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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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외적으로 부시 대통령은 미국과 국제사회와의 심각한 대립을 완화해야 할 자리에 서 있다. 다음달 유럽 순방은 그런 노력의 시작이다. 이는 진보진영뿐 아니라 공화당내 전통적 보수그룹에서도 강력히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 직전 <시엔엔방송>과의 회견에서 ‘우리편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외교에 계속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일방주의적 외교정책 기조와, 국제기구 및 유럽·아시아 국가들과의 협력관계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2기 부시 정권의 당면 과제다. 하지만 그걸 달성하긴 쉽지 않아 보인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 부시 취임 이모저모 경찰·군 역대최다 1만명 경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일 취임식을 열고 2기 임기를 시작했다. 워싱턴은 19일 많은 눈이 내려 모처럼 ‘화이트 취임식’이 됐다.
스팅어 지대공미사일 배치
반부시 시위 수만명 집결
◇… ◇…20일 취임식은 워싱턴 시내에서 치러진 55차례의 역대 취임식 사상 가장 많은 1만여명의 경찰과 군이 곳곳에 배치돼 지상·공중·지하에서 물샐틈 없는 경호 경비를 펼쳤다. 군 당국은 취임식 경계를 위해 다목적 특수차인 험비에 스팅어 지대공 미사일을 장착해, 워싱턴 일원에 배치했다. 스팅어 미사일은 워싱턴 안 금지구역에 들어오는 항공기를 격추해야 할 상황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보안 당국은 또 19일 저녁 7시부터 컨스티튜션가, 펜실베이니아가 등 의사당과 백악관 주변 도로들에 대해 통행 및 주차를 금지했으며, 4일 동안의 취임 축하행사가 모두 끝나는 21일 오후 4시에 이를 해제한다. 워싱턴 시내 및 주변 곳곳의 호텔이 부시 대통령 지지자들로 만원인 가운데 전국 곳곳에서 수만명에 이르는 ‘부시 반대자’들도 워싱턴에 모였다. ◇…부시 대통령은 취임식을 하루 앞둔 19일 워싱턴 소재 국립문서보관소를 방문해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친필 취임사 등 건국 서류들을 살펴봤다. 대통령과 부인 로라 부시는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이 1789년 직접 펜으로 쓴 취임사와 그가 손을 얹고 취임선서를 한 성경, 독립선언서, 헌법, 권리선언문 등을 살펴봤다. 부시 대통령은 그 서류들을 살펴보고 역사의 순간을 느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절대적으로 그렇다”고 말했다. ◇…일부 민주당 관계자들은 워싱턴을 떠나지 않을 경우 극장에 가거나 집에서 조용한 오후를 보내거나, 아니면 유람선을 탈 계획을 세웠다고 <에이피통신>이 전했다. 존 케리 후보의 대변인을 맡았던 데브라 드숑은 “우리도 취임식이 열리는 것을 안다”며 “그러나 취임식을 보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바르는 꼴”이라고 말했다. 테리 매컬리프 민주당전국위원장은 집에서 조용히 영화 <타이타닉>이나 보겠다고 말했다. 또 20여명의 케리 선거운동원들과 지지자들은 “워싱턴을 떠나겠다”며 이미 17일 온천, 카지노 등을 제공하는 카리브해 유람선을 타고 여행에 나섰다. 그러나 케리 후보 등 공직에 있는 많은 민주당 관계자들은 공직이어서 할 수 없이, 또는 야당 인사로서 취임식에 참석했다. ◇…유럽 각국들은 2기 부시 행정부가 국제적 협력을 더 중요시하기를 바라는 내용의 축하 메시지를 남겼다고 <아에프페> 통신이 보도했다.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일간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좀더 의견을 모으고 더 다자주의적으로 국제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발전은 경험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라크 전쟁에 연합국으로 참전하기를 거부한 뒤 미국과 관계가 급격히 멀어졌던 프랑스는 미셜 바르니에 외무 장관이 <시엔엔> 방송에서 “새 관계는 상호 존중을 의미한다”며 “두 나라가 서로 다가가기 위해 더 열려 있고 직접적이며 명확한 토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라크에서 철군한 뒤 역시 미국과 관계가 멀어진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도 “일방적 전달이 아닌 양자간 대화의 새 시대를 강조한 콘돌리자 라이스 신임 미국 국무장관 발언 등을 볼 때 긍정적 신호들이 보인다”고 말했다.김학준 기자, 외신종합 kimhj@hani.co.kr
■ 대북정책 어떻게 국무부 발언권 강화
강경노선 편승 가능성 라이스-럼스펠드-해들리 ‘3인 체제’ 로 조지 부시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을 중심으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과 스티븐 해들리 신임 국가안보보좌관이 협의하는 체제를 갖출 것으로 전망된다. 1기 때 럼스펠드 장관과 함께 대북 강경노선을 주도했던 딕 체니 부통령의 영향력은 2기 때에도 여전할 것으로 보인다. 부시의 분신이라 불리는 라이스가 국무부를 장악함으로써, 2기 대북정책 조율과정에서 국무부 발언권이 1기에 비해 강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다만 이것이 부시 행정부내 강경파를 견제하기 보다는, 오히려 강경노선에 편승하는 쪽으로 갈 가능성이 적지 않다. 네오콘 싱크탱크인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 게리 슈밋 사무총장은 “부시의 새 외교안보팀은 친정체제의 성격이 뚜렷하다”고 평했다. 그는 단적인 사례로, 네오콘에 가까운 존 볼턴 국무부 군비통제 차관의 후임에 역시 강경파이면서 백악관 근무경력이 있는 로버트 조지프 국가안보회의(NSC) 비확산 담당관을 내정한 사실을 들었다. 색깔을 바꾼다기보다는, 비슷한 색깔이라도 좀더 자신의 의중을 분명히 집행할 수 있는 인사들로 외교 라인을 채우고 있다는 뜻이다. 라이스 신임 국무장관은 지난 18일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1기 때의 대북정책을 그대로 유지할 뜻을 분명히했다. 또 북한체제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건 부시 대통령의 생각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부시와 라이스가 ‘자유와 민주주의의 확산’이란 네오콘적 시각에 기울어 있는 만큼, 북한에 대한 강경자세가 근본적으로 바뀔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다만 6자회담이란 틀을 만든 이가 부시 자신이므로,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이란 기조를 쉽게 포기하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게리 슈밋은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 국가(북한, 이란, 이라크)라도 각기 다른 문제를 갖고 있고,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한반도 전문가 케네스 퀴노네스 박사는 “부시 1기에서 한반도 정책은 국무부가 아닌, (강경파들이 대거 포진한) 고위급 국가안보회의(NSC)에서 결정됐다. 2기에서도 이런 기조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국무부의 새 실무라인에 실용주의자들이 상당수 포진한 점은 주목된다. 크리스토퍼 힐 주한 미국대사의 동아태 차관보 발탁이나 니컬러스 번즈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대사의 정무차관 내정이 이런 예에 속한다. 이것은 대북정책 전술이 강경 일변도로만 치닫지 않으리란 관측을 낳기도 한다. 하지만 퀴노네스 박사처럼 “1기 행정부에서 제임스 켈리 동아태 차관보의 재량권이 거의 없었듯이, 2기에서도 힐 차관보의 재량권이 극히 제한될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워싱턴/박찬수 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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