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워싱턴의 의회 인근에 자리잡은 헤리티지재단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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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로 가는 미국 사회(2)
1. 보수의 새 거점-기독교복음주의
2. 3개 축-헤리티지재단, 러시 림보, 폭스뉴스
3. 보수주의 운동 발전사
4. 네오콘-눈 뜨고 꿈꾸는 자들
5. 진보의 부활은 가능한가
이슈 보고서 신속생산 행정부등 ‘우향우’압박
우파방송, 토크쇼등서 진보진영 원색적 비난
미국 대선이 끝난 지 1주일 만인 지난해 11월10일, 미 워싱턴의 의회 인근에 위치한 헤리티지재단에서 강연회가 열렸다. 연사는 올해 베스트셀러인 <우파국가 미국>의 저자 애드리언 우드리지였다. 헤리티지재단 이사장인 에드윈 퓰너 박사가 직접 나와 연사를 소개했다. 그는 “이 책은 보수주의의 승리를 선언하고 있다. 우리는 선거 전에 이 책이 얼마나 (선거결과를) 잘 맞추는가 보자는 생각에서 일정을 이렇게 잡았다”고 웃으며 말했다. 뒤이어 연단에 선 우드리지는 “헤리티지재단에서 보수주의를 얘기하는 건 바티칸에 가서 종교를 얘기하는 것과 같다”고 화답해 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조크는 미국 보수주의운동에서 헤리티지재단이 차지하는 위치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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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행정부 들어서 헤리티지재단은 역시 보수적 싱크탱크인 미국기업연구소(AEI)에 밀린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미국기업연구소가 20명 가까운 인사를 부시 행정부에 진출시킨 데 비해, 헤리티지재단 출신 인사는 일레인 차오 노동부장관을 비롯해 5~6명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국 보수주의 운동에서 헤리티지의 위상은 여전히 막강하다. 이들은 단기간에 짧고 간결한 보고서를 만들어 행정부 정책담당자들과 의회 의원들에게 제공한다. 이것이 행정부의 정책결정이나 의회 입법에 큰 영향을 끼친다. 2001년 9·11 직후 부시 행정부에 낸 ‘미 본토 방위’란 보고서는 단적인 예다. 헤리티지의 지식은 정확히 보수이념의 실천과 승리를 위한 무기다. 헤리티지 출현 이후, 미국 싱크탱크들의 비당파적 학문연구가 설 자리를 잃었다는 지적은 설득력이 있다. 헤리티지재단의 리 에드워즈 박사는 이를 두고 “우리가 싱크탱크의 작동방식을 바꿨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헤리티지에서 열린 강연회와 세미나 제목들을 몇개만 살펴보자. ‘왜 유엔과 낡은 유럽은 생각보다 훨씬 나쁜가’, ‘새 보수주의 목소리의 부침’, ‘테러와의 전쟁을 넘어서’…. 미국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거나, 미국의 정책방향을 겨냥한 것들이다. 진보 논객 제이콥 웨이스버그는 “헤리티지는 지식을 파는 데만 관심 있을 뿐 지식의 심화엔 관심이 없다”면서도 “헤리티지가 미국정치를 오른쪽으로 밀어부치는 데 엄청난 역할을 했다는 걸 부인할 사람은 없다”고 현실적 힘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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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가 미국 보수주의의 진지라면, <폭스뉴스>는 보수의 목소리를 거르지 않고 전파하는 전위인 셈이다. 리 에드워즈는 “<뉴욕타임스>와 <시비에스>, 이런 ‘올드 미디어’에 대항한 케이블티비와 라디오토크쇼 등 ‘뉴 미디어’의 승리는 곧 진보주의에 대한 보수주의의 승리와 맥을 같이 한다”고 평했다. 1996년 루퍼드 머독이 24시간 케이블뉴스 방송 <폭스뉴스>를 설립할 때만 해도 누구도 <폭스뉴스>가 <시엔엔>을 누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공화당 전당대회 시청률에서 <폭스뉴스>는 <시엔엔> 뿐 아니라 3개 공중파 방송들을 모두 제쳐 미국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폭스뉴스>의 간판 토크쇼 ‘오랠리 팩터’가 <시엔엔>의 ‘래리킹 라이브’를 앞선 지는 이미 오래다. <폭스뉴스> 성공의 비결은 간단하다. 노골적인 진보 공격으로 보수파들이 마음을 후련하게 해준다는 점이다. 최고경영자인 로저 에일스는 2003년 한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당신이 공화당 방송을 경영한다는 비판에 화나지 않는가”라는 질문에 “우리를 그렇게 부를수록 더많은 보수 성향 시청자들이 우리 방송을 볼 것”이라고 응수했다. 지금 미국의 당파적 분열엔 이런 식의 서로 편을 가르는 문화가 밑바닥에 깔려 있다. 헤리티지와 <폭스뉴스>가 동종업계에 끼친 영향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다. 싱크탱크와 케이블방송 전체의 보수화를 선도했다는 점이다. 한때 진보주의 거점으로 불린 미국외교협회(CFR)는 2003년 온건보수 성향의 리처드 하스를 회장으로 영입했다. 폭스뉴스에 대항하기 위해 <시엔엔>과 <엠에스엔비시>는 더욱 많은 보수적 진행자를 영입하지 않을 수 없었다. 헤리티지와 <폭스뉴스>는 이런 식으로 미국사회 전체의 보수적 흐름을 선도하고 있다. 워싱턴/박찬수특파원 pc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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