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백악관 오벌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다 기자들을 향해 큰 손짓을 취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11일 백악관에서 오찬…미국 언론 “기괴한 회동”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 쓰고 “슈퍼 영웅처럼 느껴져”
대북관계 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멈춰” 치켜세우기도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백악관 오벌룸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하다 기자들을 향해 큰 손짓을 취하고 있다. 워싱턴/EPA 연합뉴스
천재 아티스트로 불리는 미국 래퍼 카니예 웨스트(41)가 11일 백악관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했다. 현지 언론은 그야말로 뒤죽박죽 아무 얘기나 쏟아내던 두 사람의 만남을 “기괴한 회동”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엔엔>(CNN) 방송을 보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고 적은 빨간색 모자를 쓰고 온 웨스트는 수십명의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과 마주 앉아 장광설을 쏟아냈다. 전직 미식축구 선수 짐 브라운과 백악관 인사들도 함께 이 자리에 참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먼저 브라운을 가리키며 “대통령이 하는 것들을 좋아한다고 말했었죠?”라고 물었고, 브라운은 “(그렇다.) 그리고 난 북한을 좋아한다”고 답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나도 북한을 좋아한다”고 맞받으면서, “버락 오바마 전임 대통령 시절에 (북한과) 전쟁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자 웨스트는 “당신이 전쟁을 멈췄다”, “우리는 가장 큰 문제를 해결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웨스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16년 12월 맨해튼 트럼프 타워에서 그와 만난 적 있으며, 지난 4월 소셜미디어를 통해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힌 열혈 지지자다.
웨스트는 이 자리에서 “이 모자가 나를 슈퍼 영웅처럼 느끼게 한다”거나 “트럼프는 지금 그의 영웅적 여정에 있다”고 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나 같은 미친 XX XX가 지지할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욕설까지 내뱉었다. 한국어로 ‘후레자식’ 정도의 뜻을 지닌 욕으로, 미국인들이 사용하는 욕설들 중에서도 가장 저급한 표현이다. 미국 대통령 면전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표현을 사용한 인사는 전례를 찾을 수 없다.
웨스트는 또 휴대전화를 꺼내 트럼프 대통령과 그의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에게 수소로 움직이는 비행기 사진을 보여주며 “에어포스원을 대체할 수 있다”고 했다. “학교는 지루하기 때문에 어린이들이 수학 대신 농구를 배우게 해달라”거나 “경찰의 잔혹함에 대한 해결책은 사랑”이라는 맥락 없는 말도 퍼부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래퍼 카니예 웨스트가 11일 백악관 오벌룸에서 대화한 뒤 서로를 껴안고 있다. 워싱턴/UPI 연합뉴스
언론에 공개된 10분간의 대화에서 웨스트는 확실히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다물게 한, ‘악동’같은 면모를 보였다. 마지막에는 두 사람이 서로를 끌어안았고, 웨스트는 “나는 이 남자를 사랑한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별한 사람”이라며 웨스트를 칭찬했다.
두 사람은 이어 비공개 자리로 옮겨 오찬을 즐겼다.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과 웨스트가 노동력 훈련 프로그램, 재판 개혁과 흑인 고용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시엔엔>은 ‘왜 트럼프 대통령과 웨스트, 브라운과의 점심이 재앙이었나’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실제 교육이나 형사정책 전문가들을 초대하는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카메라 앞에 자신을 좋아하는 두 명의 유명 흑인을 앉혀놨다”고 비꼬았다. 웨스트의 아내인 유명 모델 킴 카다시안도 지난 5월 백악관을 찾아 여성 무기수 앨리스 마리 존슨(63)의 사면을 요청한 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시 트위터에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며 “교도소 개혁과 형 집행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으로 웨스트를 초대한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바로 최고 여가수라고 꼽히는 테일러 스위프트 때문이라는 것이다. 스위프트는 지난 7일 인스타그램에 “그동안 정치적 발언을 삼갔지만 지난 2년간 지켜본 결과 생각이 바뀌었다”며 “테네시주에 출마한 민주당 후보를 찍겠다”고 했다. 그러자 그와 함께 민주당을 지지하려는 20대 유권자의 등록 비율이 눈에 띄게 늘었다. 중간선거를 코앞에 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스위프트와 대표적 ‘음악 앙숙’으로 꼽히는 ‘웨스트 카드’를 꺼내 효과를 보려 한 것 아니냐는 추정이 나온다.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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