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05.19 16:11
수정 : 2019.05.19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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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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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요청→대통령 재가’ 절차적 관행 깨고
비무장 민간인 사살한 미군 등 다수 대상으로
백악관, 지난 12일 법무부에 사면 준비 요청
‘미 전범 미 뜻대로 처리’ 신호로 읽힐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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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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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조만간 전쟁범죄를 저지른 미군에 대한 사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무분별한 사면권 행사로 법 질서를 흔들고, 미국의 전범 처리는 미국 뜻대로 하겠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메모리얼 데이’(미국의 현충일, 5월 마지막주 월요일)에 즈음해 에드워드 갤러거 전 네이비실 특수작전부장 등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범죄를 저지른 군인 등 여러 명의 사면을 고려하고 있음을 시사하면서 법무부에 필요한 서류를 즉각 준비하라고 지시했다고 <뉴욕 타임스>가 18일 관료 2명을 인용해 보도했다.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실의 특수작전부장이었던 갤러거는 2017년 이라크에서 노인과 여성 등 비무장 민간인들을 사살하고, 10대 포로를 흉기로 살해한 뒤 문자메시지로 이를 자랑한 혐의로 기소돼 이달 말 첫 재판을 앞두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갤러거 외에도 2010년 아프간에서 탈레반 억류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매슈 골스테인 전 육군 소령, 2007년 이라크에서 민간 차량 총격으로 17명의 목숨을 빼앗은 민간 군사 기업 블랙워터 직원 니컬러스 슬래튼, 사살된 탈레반 대원 주검에 집단 방뇨를 한 해병대원 등이 사면 대상에 올랐다고 전했다.
백악관이 법무부에 사면 관련 요청을 한 것은 12일이다. 보통 사면 관련 서류 작업에는 몇 달이 걸리는데, 메모리얼 데이에 맞추라는 백악관의 갑작스런 요청에 법무부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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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총격을 가해 무고한 민간인 17명을 숨지게 한 혐의로 미국 법정에 기소된 민간 군사기업 블랙워터의 대원과 변호인이 연방법원에 출두하고 있다. <뉴욕 타임스>는 18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블랙워터의 대원에 대한 사면을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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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이들에 대한 사면권을 행사하면 여러 모로 거센 논란이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 사면권 남발을 막기 위해 남북전쟁 이후 굳어져온 ‘법무부의 사면 요청→대통령의 재가’라는 절차적 관행을 뒤엎어버린 데다, 재판조차 받지 않은 이들을 포함해, 이처럼 한꺼번에 여러 명의 전범을 사면한 전례도 없기 때문이다. 군 법무관 출신 법조인 개리 솔리스는 “사면권 남용은 전체 (사법) 시스템을 약화시킬 수 있다”며 “(실제 전범에 대한 사면권이 행사된다면) ‘우리가 무슨 짓을 하든 고국으로만 돌아오면 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번 사면은 미국 극우·보수층 일각에서 전쟁 중 군인들이 저지른 범죄를 처벌하는 것에 대해 ‘나라를 위해 일하다가 벌어진 일로 처벌 받는 건 부당하다’는 논리를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가운데 추진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무부는 지난 3월, 미군이 2003~2004년 아프간 등지에서 구금자들에게 가한 고문과 성폭행 등을 조사하겠다고 나선 국제형사재판소(ICC) 조사관들에 대해 비자를 거부하거나 취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은 국제형사재판소의 근간이 된 로마규정에 서명했으나 비준은 하지 않았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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