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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4.24 22:38 수정 : 2005.04.24 22:38



“미국 봉쇄정책 고삐 풀어내자”

이란이 에너지를 ‘무기’로 적극적인 ‘동진정책’을 펼치고 있다.

추정매장량 1308억배럴의 원유(세계 원유의 10%), 26.7조㎥의 천연가스(세계 매장량의 15%)를 안고 있는 이란은 이들 자원을 내밀며 아시아의 떠오르는 강국인 중국과 인도, 일본 등에 적극 다가서고 있다.

지난 1월 이란은 인도에 25년 동안 400억달러 어치의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하기로 계약했으며, 인도의 국영 석유천연가스공사(ONGC)는 30억배럴의 매장량을 가진 것으로 추정되는 야다바란 유전의 지분 20%를 확보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국영 석유화학집단공사(SINOPEC)도 야다바란 유전의 지분 50%를 취득했다.

전략적 경쟁자인 인도와 파키스탄은 40억달러를 들여 이란의 가스를 두 나라로 끌어가는 가스관 컨소시엄을 구성했고, 일본은 오랜 진통과 미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이란 최대 유전중 하나인 아자데간(추정 매장량 260억배럴)에 20억달러를 투자하는 개발 계약을 맺었다. 주로 원유를 들여오고 있는 한국도 5번째 교역국이며, 현대건설 등이 가스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미국 대신 독일과 프랑스에 다가서는 ‘서진정책’을 고수해온 이란이 이처럼 동쪽으로 눈을 돌린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유럽과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중반 독일의 한 식당에서 이란계 쿠르드족 지도자가 암살된 사건에 대한 재판이 벌어지면서부터였다. 최근엔 핵 프로그램을 놓고도 유럽과 마찰을 빚고 있다. 이란은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연합 국가들과 핵 프로그램을 둘러싼 협상을 벌여왔으나 보상을 받는 대신 핵을 포기하라는 유럽과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부시 “공습” 으름장…유럽과도 핵 마찰
대안 찾아 중국·인도등 자원공급 계약
‘고객’ 넘어 정치적 동맹 이룰지 미지수


미국 역시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이다. 미국은 외국기업들이 이란 에너지 산업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시키는 ‘이란-리비아 금수 조치(ILSA)’를 무기로 이란에 대한 경제봉쇄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석유업계와 관계 깊은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두 나라 관계가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는 예측도 있었지만, 부시 대통령은 오히려 이란을 ‘악의 축’으로 비난하고 유엔 경제제재와 공습 가능성까지 내비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치솟는 유가에 끓어오르다시피 하는 경제성장에 들어갈 에너지에 목말라 하는 중국과 인도는 확실히 이란에 유리한 요소다. 컨설팅회사인 유라시아 그룹의 이언 브레머 대표는 최근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에너지에 대한 관심이 중국을 이 게임으로 끌어들이고 있으며, 에너지 정책 때문에 중국이 이 문제에 깊숙히 얽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이란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에 참여하고 핵 연료를 공급하기로 하는 등 민감한 핵 현안에 관여하면서 또다른 변수가 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 강대국들의 이해가 이란에서 서로 경쟁하고 충돌하는 셈이다.

한국외대 이란어과 유달승 교수는 “미국, 유럽과의 관계가 악화되는 가운데 이란은 인도와 중국, 러시아를 끌어들임으로써 국내에는 미국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고립돼 있지 않다고 과시하고, 대외적으로는 미국이 강경책을 사용할 때 이에 거부권을 행사해 줄 새로운 세력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그렇지만 이란의 ‘동진정책’은 많은 한계를 안고 있다. 중국이나 인도가 이란의 ‘고객’을 넘어 정치적 동맹이 되어줄 것이라는 보장이 없고, 이란의 경제적 어려움을 풀어줄 능력도 부족하다. 게다가 이란의 에너지 산업 자체가 많은 내부 문제들을 안고 있다.

이슬람 정권이 들어서기 전인 1974년 이란의 최대 원유 생산량은 하루 600만배럴이었으나 현재는 400만배럴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사업의 특성상 지속적인 투자와 탐사가 필요한 데 이란의 석유산업은 계속 낙후되고 있다. 이란은 정유시설 부족으로 오히려 매년 20억달러를 들여 연료를 수입해오는 형편이고, 낡은 산업시설과 차량 등으로 에너지 낭비가 많아 생산된 원유중 3분의 1 가량이 국내에서 소모돼 버려진다. 1951년 중동 최초로 석유산업 국유화를 선언했다가 모사데크 총리가 미 중앙정보국(CIA)이 기획한 쿠데타로 쫓겨나는 등 석유와 관련된 아픈 역사가 많은 이란은 유전 소유권을 외국 기업에 주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외국인 투자를 끌어들이기가 더욱 어려운 상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중도보수 라프산자니 대권 유력설

이란 보수-개혁 ‘타협카드’

오는 6월17일 이란 대선에서는 8년 만에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게 된다.

97년 이란인들의 개혁 열망을 업고 돌풍을 일으켰던 모하메드 하타미 대통령의 지난 8년은 보수파들의 집중적인 견제와 반발 속에서 결국 실패로 끝났다. 선거를 두달 앞둔 현재 아직 뚜렷한 후보가 등장하지 않고 있는데, 물밑에서는 예상외로 지난 89~97년 대통령을 지낸 알리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71)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라프산자니는 이란 혁명 당시부터 줄곧 이란 정치의 핵심부를 차지해 왔으며, 영리하고 속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집권 당시 이란-이라크전 이후의 피폐한 경제를 치유할 시장경제 개혁을 추진하겠다며 등장했으나 미국의 경제봉쇄 등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지난해부터 그는 다시 대통령에 출마하겠다는 뜻을 여러차례번 밝히면서, 진보·보수진영에서 고루 지지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라프산자니의 재등장은 이란 내부의 딜레마를 보여준다. 강경 보수파들은 중도-보수 노선의 라프산자니가 불만스럽지만 이번에도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하고 있다. 라프산자니 집권 시절 심한 견제를 받았고, 그의 탈세와 부정부패를 거론하면서 앙금이 있는 개혁파들은 최근 보수파의 공세에 위축된 상태다. 이란과 국경을 접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대규모로 주둔하고 있고, 미국 정부가 이란 내 반체제 ‘민주화 세력’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히면서 이란에서는 오히려 보수파의 목소리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라프산자니는 보수파와 개혁파의 ‘타협카드’로 나서고 있다.

한편 라프산자니는 경제봉쇄정책 해제를 이끌어 내는 대신 미국과 대타협을 주장하는 인물로 서방 세계에 알려져 있지만, 그가 당선되더라도 이란에 비판적인 미국 내부의 시각과 경제봉쇄 속에서 부를 독점한 이란 내부 세력들의 반발 때문에 관계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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