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흐마디네자드 포스터 18일 이란 대선 1차투표가 끝난 뒤 테헤란시의 한 공무원이 벽에 붙은 선거 포스터들을 떼고 있다. 예상을 뒤엎고 2위를 차지해 결선투표에 진출한 강경 보수파 후보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의 선거 포스터가 보인다. 테헤란/AF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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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투표 득표율 19.5% 얻어 2위 껑충
21% 그친 1위 라프산자니와 대결 압축 ‘강경 보수냐, 실용 보수냐!’ 오는 24일 치러질 이란의 사상 첫 대선 결선투표가 보수파 두 후보의 대결로 압축됐다. 지난 17일 대선 1차 투표에서 개혁파들이 모두 하위권으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결선투표는 1차 투표 결과 과반수 득표자가 없었던 데 따른 것이다. 여론조사에서 줄곧 선두를 달리던 ‘실용주의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1위를 차지했으나 득표율은 21%에 그쳤다. 1차 투표의 최대 이변은 강경보수파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 테헤란 시장이 라프산자니와 함께 결선투표에 오른 점이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주목 받지 못한 아흐마디네자드는 득표율 19.5%로 2위를 차지했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과 핵 개발을 둘러싼 서방과의 갈등 해결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반면, 아흐마디네자드는 이슬람 가치 보존과 빈곤 문제 우선 해결을 주장해 신앙심 두터운 빈민층의 강한 지지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보수적 성직자들도 이슬람공화국 체제를 옹호하는 아흐마디네자드를 지원했다. <비비시>는 전국 곳곳의 사원과 군, 민병 조직망이 아흐마디네자드의 표를 결집시키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전했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선거 직전 “이란 대선은 ‘가짜 민주주의’”라고 비난하는 내용이 계속 방송을 타면서 보수파 후보에 표가 몰렸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일부 유권자들은 <로이터통신> 등에 “미국에 한방 먹이기 위해 아흐마디네자드를 찍었다”고 말했다. 참패를 당한 개혁파 진영에서는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3위를 차지한 메흐디 카루비 전 국회의장은 “돈이 (투표하는) 손들을 바꿔 놓았다”며 유권자 매수 등 선거부정 의혹을 제기했다. 10.3% 득표율로 5위에 그친 개혁파 후보 무스타파 모인은 “군대가 특정후보를 지지하며 선거에 개입했다”고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란 내무부는 애초 라프산자니와 카루비가 1·2위라고 발표했지만 30분 뒤 보수파 기구인 헌법수호위원회가 아흐마디네자드가 1위라고 발표했다며, 아흐마디네자드는 내무부의 선거 결과 발표가 나오기도 전에 결선투표 진출을 발표해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고 보도했다. 외신들은 강경파 후보가 승리하면 이란-미국 긴장이 높아지고, 이란이 유럽연합 국가들과의 핵 협상에서도 더 강경한 태도를 취하게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이란 개혁파에 큰 타격을 줬다. 개혁파와 대학생들의 선거불참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투표율도 63%로 비교적 높다. 선거 참여와 불참으로 갈렸던 개혁파들은 이제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를 견제하기 위해 라프산자니를 지지할 것인지, 아니면 아예 투표하지 않을 것인지 고민에 빠졌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아흐마디네자드는 누구
‘미대사관 점거’ 학생운동단체 출신 대미 강경…성직자 지배체제 옹호
예상을 뒤엎고 이란의 유력한 다음 대통령 후보로 떠오른 마흐무드 아흐마디네자드는 대미 강경노선과 성직자 지배체제를 옹호하는 흔들림없는 보수파로 꼽힌다.
2003년 테헤란 시장에 취임한 뒤에는 서구식 패스트푸드 식당을 폐쇄하고 남성 시청직원들은 수염을 기르고 긴 셔츠를 입도록 하는 등 이슬람 원칙을 고수했다. “남녀 모두는 국가의 일원이고 성별로 구별하는 견해를 가져서는 안된다”며 여성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 자체를 거부한다. 최근 몇년 동안 그는 하타미 대통령의 개혁노선에 공공연히 반대해 왔으며, 지난주 유세에서도 “이란 국민은 이슬람주의자들이 국가를 위해 일해 줄 것을 바라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56년 테헤란 근교 가름사르에서 대장장이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79년 이슬람혁명 직후 테헤란의 미국 대사관을 점거했던 급진적 학생운동 단체의 일원이었다. 이란-이라크 전쟁에 자원해서 참전해 혁명수비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이후 정치에 뛰어들어 몇몇 지역의 주지사를 지냈다. 테헤란과학기술대학에서 교통·운송 박사학위도 받았다.
89~97년 대통령을 지내면서 엄청난 재산을 모았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 라프산자니 후보와 달리 그는 매우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 선거운동에서도 다른 후보들과는 달리 많은 돈을 쓰지 않았다며 “민중의 후보” 이미지를 강조한다.
그는 미국에 대한 양보에 반대하며 유럽연합(EU)과의 핵 협상에 대해서도 회의적이다.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 그는 “미국은 이슬람혁명을 파괴하기 위해 일방적으로 이란과 관계를 단절했지만, 미국과 관계를 회복할지에 대한 결정은 이란이 내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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