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테러 비난에도 각국 총·대선 앞두고 급부상 실용적개혁 노력속 하마스등 이미 다수의석 얻어 이슬람 무시 미정책 “현실외면”… 강경파 키워
오는 7일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이집트에서 30년 장기집권에 도전하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최대 라이벌은 야당이 아니다. 정치활동이 금지돼 후보조차 내지 못하는 이슬람주의단체 무슬림형제단이다. 2000년 총선에서 무소속으로 17명의 의원을 당선시킨 무슬림형제단은 올들어 잇따라 거리시위를 벌이며 “민주주의” “정치자유” 구호를 외쳐왔다. 최근에는 무바라크 대통령에 대한 비판수위를 약간 낮추면서 11월 총선에서 합법 출마를 따내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집트 대선에 이어 18일 아프가니스탄 총선, 11월 이집트 총선, 내년 1월 팔레스타인 총선 등 잇단 선거에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중동 정국의 향배를 가름하는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런던과 이집트를 잇따라 뒤흔든 폭탄테러 이후 극단적 이슬람주의자들에 대한 세계 각국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작 중동 내부에서는 이슬람주의자들이 민심을 얻고 있다. 자살폭탄테러로 잘 알려져 있는 팔레스타인 이슬람주의단체 하마스 역시 선거를 통해 제도권 정치세력으로 변신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올해 초 끝난 지방자치 선거 결과, 하마스는 118개 의석 중 77석을 차지했다. 여당인 파타당은 26석에 그쳤다. 하마스는 적극적인 빈민구호·의료·교육 활동을 펼치며 지지 폭을 넓히고 있고, 내년 1월 총선에서도 집권 파타당을 위협할 것으로 예상된다.
변신 모색하는 이슬람주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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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의 지난 5월 총선에서도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가 또다른 시아파 정당 아말과 연합해 128석 중 30석을 차지했다. 미국이 보기엔 헤즈볼라가 ‘테러단체’이지만, 중동 대부분 국가들에서 헤즈볼라는 엄연한 합법 정당이다. 유달승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이슬람주의자 중 알카에다 같은 극단주의자들은 소수이지만 이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하지만 이슬람권 내부에서는 자체적인 개혁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중동의 민주주의를 지원하겠다고 나서고 있는 미국 정부는 이슬람주의자들과의 대화는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지난 6월 초 카이로를 방문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이집트의 시민단체와 야당 지도자들을 두루 만났지만 무슬림형제단 지도부는 초청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개혁파나 온건파 이슬람주의자들까지도 무시하려는 미국의 중동 정책이 오히려 이슬람주의를 더욱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지난 60여년 동안 영국과 미국 등이 이슬람권에서 석유 확보를 위해 독재자들을 지원하면서 이슬람 내부 개혁이나 민주화를 말살시켜온 게 문제의 근원이라고 지적한다. 예컨대 1950년대 이란에서 석유 국유화 조처를 취한 모사데크 정권 전복, 1992년 알제리 총선에서 승리한 이슬람구제전선(FIS)의 불법화 등은 친미왕정의 공포정치와 내전을 불렀다. 아랍에미리트 일간 <알카리즈>의 아이자드 자카 사예드 편집장은 최근 <인터내셔널해럴드트리뷴> 기고에서 “미국 정부가 헤즈볼라와 하마스 등과의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이 지역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미정 한국외대 중동연구소 연구교수는 대화야말로 극단적 이슬람주의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면서도 ‘어떤 대화냐’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대외원조의 40%가 이스라엘에 집중되고, 미국이 중동지역 무기의 80%를 판매하는 구조가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중동의 정치판도는 강경파들이 점점 더 힘을 얻어가는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 친미 정부에 대항하며 점점 영향력을 넓혀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주의 무장세력들이나 개혁파 실패와 미국의 공세 속에서 강경파의 득세로 귀결된 최근 이란 대통령선거 결과는 이 가능성이 언제든지 현실화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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