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8.01.03 21:53
수정 : 2018.01.03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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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정부 시위대가 2일(현지시각) 이스파한 카다리잔 지역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소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진은 이란 독립 언론인 프리덤메신저가 찍은 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카다리잔/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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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살기 힘든’ 하층민이 시위 주도…중산층은 방관
실업·고물가·부패·빈부격차 폭발
시위 일주일째 40곳으로 확산
경제는 ‘1등시민’·‘2등시민’ 만들어
하메네이는 ‘외부의 적’ 탓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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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반정부 시위대가 2일(현지시각) 이스파한 카다리잔 지역의 경찰서를 습격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최소 6명이 사망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진은 이란 독립 언론인 프리덤메신저가 찍은 영상을 갈무리한 것이다. 카다리잔/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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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로 일주일을 맞은 이란 반정부 시위의 중심 세력은 지방 소도시·농촌의 하층 청년들이다. 개혁파를 지지하는 도시 중산층이 주도했던 과거 시위대와는 달리 이들은 보수·개혁파를 막론하고 이란 기성정치 전반에 좌절과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그만큼 이후의 향방과 파장도 예측하기 어렵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 정치는 항상 개혁파와 보수파로 분열돼 있었다. 이번 시위는 1999년과 2009년에 이은 세번째 대규모 주요 반정부 시위다. 1999년 7월 시위는 개혁파 신문 폐간에 항의하는 테헤란대 학생들에 대한 폭력적 탄압에 분노한 시민들이 언론과 표현의 자유 등을 요구하며 벌였다. 2009년 시위는 강경보수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재선되자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는 테헤란 시민들을 중심으로 일어났으며 ‘녹색운동’으로 불렸다. 모두 수도 테헤란의 중산층, 대학생을 중심으로 일어났고 비폭력 평화시위를 주요 가치로 내걸었다.
이번에는 보수세력의 근거지로 여겨져온 지방 소도시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됐다. 구호도 “물가인상 반대” “횡령범들을 처단하라” “성직자들아 나라 좀 놔둬라” 등부터 “(대통령) 로하니에게 죽음을” “(최고지도자) 하메네이에게 죽음을”까지 모든 금기를 넘어서고 있다.
신정체제 아래서 경제·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주변화된 하층민들의 실업, 고물가, 부패와 빈부격차에 대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란 소설가 아미르 아마디 아리안은 2일 <뉴욕 타임스> 기고에서 이렇게 썼다. “혁명 이후 부자들은 해외에선 사치를 부려도 국내에서는 함부로 부자 티를 내지 않는다는 불문율이 있었다. 이제 젊은 부유층들은 가난한 이들 보란 듯 포르셰와 마세라티를 몰고 테헤란 거리를 질주하고 사치스러운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린다. 가난한 집 딸들은 머릿수건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고 체포되고 가난한 집 아들은 술을 샀다는 이유로 감옥에 가는데, 고위층 가족들이 해외 해변가에서 술에 취한 사진들이 인터넷에 버젓이 올라온다.”
정치경제학자인 파르비즈 세다가트는 이번 시위가 시작되기 얼마 전 “이란 경제시스템이 1등 시민과 2등 시민의 격차를 만들어냈고, 일부 정부기구는 국가보다 강력한 재벌로 변했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의회에 제출된 예산안에는 휘발유값 대폭 인상, 수백만명의 저소득층에 제공되는 생활보조금 삭감 조항이 들어 있었고, 반면 강경보수파 성직자들이 장악한 종교기구, 군사조직으로는 수십억달러가 들어가는 현실이 드러났다. 인구 8200만 가운데 약 절반이 35살 이하로 추정되며, 청년실업률은 공식 통계로 20%가 넘고 실제로는 40%가 넘는다.
지금까지 40여 도시에서 시위가 일어나 21명이 숨지고 수백명이 체포된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는 2일 사태를 “외부의 적” 탓으로 돌리는 공식 입장을 발표했다.
테헤란의 중산층은 지도자도 조직도 없이 확산되는 시위가 혼란만 부추길 것이라며 관망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는 보도했다. 테헤란의 상인 하미드레자 파라지는 “그들은 분노하고 있고 그럴 권리가 있지만 이후에 대한 계획이 없다”며 누구도 이란이 시리아나 이라크 같은 혼란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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