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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09.27 18:40 수정 : 2019.09.28 12:25

27일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리카 앙골라의 지뢰 매설 지역을 찾아(왼쪽), 꼭 22년 전인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오른쪽)가 벌였던 지뢰 퇴치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후암보/EPA 연합뉴스

아프리카에서 첫 가족 여행 ‘공익 캠페인’
22년전 다이애나 왕세자비 발자취 되밟아
1999~2017년 대인지뢰 사상자 12만명
지뢰금지국 164곳…남북한·미·중·러 외면

27일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리카 앙골라의 지뢰 매설 지역을 찾아(왼쪽), 꼭 22년 전인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오른쪽)가 벌였던 지뢰 퇴치 캠페인을 이어가고 있다. 후암보/EPA 연합뉴스
영국의 해리 왕자가 22년 전 어머니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걸었던 흔적을 되밟으며 ‘지뢰 반대’ 캠페인을 벌였다.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1997년 8월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들의 추적을 벗어나려다 교통사고로 숨졌다. 남편인 찰스 왕자와의 불화 끝에 이혼한 지 1년만이었으며, 당시 해리 왕자는 13살의 어린 소년이었다.

지난 23일(현지시각) 해리 왕자와 메건 마클 왕자비는 생후 4개월 된 아들 아치와 함께 열흘 일정의 아프리카 방문길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에 도착했으며, 이는 왕자 가족의 첫 외국여행이라고 <로이터> 통신 등이 전했다. 부부는 남아공에서 여성과 어린이 등 사회적 약자들을 지원하는 비정부기구들의 작업장을 방문하고, 현지의 젊은이들과 대화를 나눴으며, 노벨평화상 수상자(1984년)인 데스몬드 투투 주교도 만났다. 아프리카 가족 여행을 인류가 맞닥뜨린 도전들에 대한 공익 캠페인 활동으로 삼은 것이다.

왕자비와 아들이 남아공에 머무는 동안, 해리 왕자는 26일 남아공 북쪽 접경국 보츠와나를 방문해 ‘기후 변화’에 대해 역설했다. 해리 왕자는 “세계는 시간과의 경쟁에 직면해 있으며 누구도 과학을 부정할 수 없다”며 기후변화에 대한 세계의 공동 대응의 시급함을 강조했다.

27일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리카 앙골라의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찾아, 꼭 22년 전인 1997년 어머니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의 지뢰 퇴치 캠페인의 발자취를 좇고 있다. 후암보/로이터 연합뉴스
26일 영국의 해리 왕자가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한 나무보호지역을 방문해 초등학생들과 함께 나무를 심으며 교감하고 있다. 초베/AFP 연합뉴스
해리 왕자는 이어 27일 금요일엔 앙골라 남서부 지역의 한 지뢰 제거 작업 현장을 찾아 원격 뇌관 제거 작업에 참여한 뒤 마을 사람들과도 만난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22년 전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열정적인 ‘지뢰 반대 캠페인’을 펼쳤던 바로 그 지역이다. 4반세기를 넘긴 앙골라 내전(1975~2002)은 척박한 땅 곳곳에 엄청난 수의 지뢰를 남겼다.

1997년 당시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해골과 뼈가 그려진 ‘위험’ 경고판이 붙은 위험천만한 지뢰 매설 지역을 보호 장구를 착용하고 직접 방문한 사진은 전 세계에 지뢰의 위험성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영국의 글로벌 지뢰퇴치 운동 재단인 헤일로 트러스트(HALO Trust)에 대한 관심과 후원도 늘었다.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이런 노력은 그해 12월 캐나다 오타와에서 국제사회가 ‘대인 지뢰의 사용·비축·생산·이전 금지 및 폐기에 관한 협약’(대인 지뢰 금지 협약)을 맺는 결실로 이어졌다. 그러나 정작 다이애나 자신은 협약 체결을 보지 못한 채 그 몇달 전에 비운의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1997년 1월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앙골라의 지뢰 매설 지역에서 전문가의 도움으로 원격 조종 폭발장치의 사용법을 익히고 있는 모습. 후암보/AP 연합뉴스
지뢰에 대한 경종은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찰스 왕자와 이혼한 뒤 처음으로 참여한 사회활동이었다. 생전에 다이애나 왕세자비는 대중이 잘 주목하지 않는 이들에 대한 헌신적인 자선활동으로도 잘 알려졌다. 1987년 영국 최초의 인간면역결핍 바이러스(HIV) 치료 전문 병원을 개설해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결핍증후군)에 대한 대중의 태도를 바꾼 것이 한 사례다.

지뢰는 제1차 세계대전 때 사용이 보편화한 이래 한 세기가 넘도록 수많은 분쟁 지역에서 광범위하게 쓰여 왔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폭발되지 않은 채 매설된 지뢰들이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가거나 심각한 부상을 입히고 있다는 점이다. ‘악마의 무기’로 불리는 이유다. 앞서 지난 6월, 해리 왕자는 “지뢰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인도주의적 문제”라며, “지뢰 없는 앙골라로 가는 긴 여정은 가슴 아픈 고통과 좌절로 가득 차 있지만, 앙골라가 아프리카 대륙의 다른 나라들에게도 빛나는 선례로 남을 것”이라는 믿음을 밝힌 바 있다.

2017년 세계 지뢰 피해자 통계. 2018년 지뢰 모니터 보고서
지뢰금지국제운동(ICBL)의 최신 보고서인 <지뢰 모니터 2018년)에 따르면, 지금도 세계 60여 개국에 대인 지뢰가 매설돼 있다. 2017년 한해에만 지구촌 곳곳에서 최소 2793명이 지뢰 폭발로 숨지고 4431명이 다쳤으며, 15명은 사고 이후 생사가 확인되지 않았다. 전쟁의 여파가 끝나지 않은 아프가니스탄과 시리아에서 압도적으로 많은 피해자가 나왔다. 기간을 넓혀 1999년부터 20017년까지 지뢰에 목숨을 잃거나 다친 사람은 12만명에 이른다. 희생자의 87%는 민간인, 그 절반이 아이들이었다.

헤일로 트러스트는 현재 세계 각국에 매설된 지뢰 수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1994년 이후 10만여개가 해체됐다고 밝혔다. 현재 지뢰 금지 협약에는 덴마크·네덜란드·프랑스·독일·영국 등 유럽 대다수 국가들과 앙골라, 이라크, 수단, 터키 등 세계 164개국이 서명했다. 그러나 한국과 북한을 비롯해, 미국·중국·러시아·이란·이스라엘 등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도 32개국이나 된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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