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로요 대통령, 사임압력에 초강력 ‘방어진’
군 일부 동요로 ‘강수’…대통령궁 경계 강화
[4판] 정치적 궁지에 몰린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국가 비상사태’라는 초강수를 던졌다.아로요 대통령은 24일 정부가 반역세력의 ‘분명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며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그러나 이날도 수도 마닐라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계속되는 등 아로요 대통령이 위기를 돌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자 성직자 등 시민 5천여명은 마닐라 시내 에드사 거리에 있는 피플파워 기념탑 주변에서 돌을 던지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경찰은 철조망과 컨테이너로 바리케이드를 치고 물대포를 쏘며, 기념탑 접근을 막았다. 이 과정에서 여럿이 다치고 최소 25명이 체포됐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필리핀 민주화의 상징으로 불리는 코라손 아키노 전 대통령은 이날 마닐라 중심 금융가에서 시위행진을 이끌며 반정부 세력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한때 아로요 대통령의 든든한 지지자였던 아키노 전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는 과거 독재자들이나 했던 짓이라며 국민들이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 봉기할 것을 촉구했다. 아로요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점점 더 고립돼 왔으며, 아키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지지층들도 잇따라 등을 돌렸다. 아로요 대통령은 6년 임기 중 4년이나 남겨 놓은 상태다.
야당도 아로요 대통령이 독재자의 길로 들어섰다고 비난했다. 롤리오 골레스 의원은 “비상사태 선포가 더 심각한 정권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로 추기경에 서품된 가우덴시오 로살레스 마닐라교구 대주교도 비상사태 선포가 “보기에 좋지 않다”고 말하는 등 필리핀 정치에 영향이 큰 가톨릭계도 불안감을 보였다.
아로요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선거 조작 의혹과 각종 부패 혐의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2004년 대선 당시 선거관리위원과 개표 결과를 논의하는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탄핵 위기를 맞기도 했다. 그러나 의회와 군부의 지지로 이를 넘겨 왔다. 하지만 현재 아로요의 지지율은 1986년 피플파워 혁명으로 쫓겨난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당시 대통령보다도 더 떨어졌다.
<에이피통신>은 아로요 대통령이 한발만 삐끗해도 민중혁명으로 물러난 전 대통령들의 전철을 밟을 상황에 처해 있다고 전했다.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해 민중혁명 재발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는 ‘정치적 도박’을 한 것이지만, 이것이 과거 독재 시절의 악몽을 떠올리게 해 필리핀인들이 마르코스 전 대통령 시절의 인권침해가 재현되는 것으로 여기기 시작한다면, 상황은 훨씬 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비상사태 선포는 전날 한 군 장성의 아로요 대통령 지지 철회 발언으로 촉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군 일각에서 25일 예정된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쿠데타를 시도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밝혔다. 이 장성은 현재 군 당국에 체포됐으며, 다른 장군 2명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로요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 직전인 이날 새벽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이에 앞서 군 당국은 젊은 장교 14명이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려는 기도를 적발했다.
군부의 동향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으나 주요 지휘관들은 일단 대통령 지지 의사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군 세력 일부가 시위에 가담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군부대 외곽에도 바리케이드가 설치됐다. 유강문 박민희 기자 moon@hani.co.kr
필리핀 ‘비상사태’ 선포
‘사퇴 압박’ 아로요 대통령 초강수 대응
‘피플 파워’ 20돌 반정부 시위 미리 차단
“군부 쿠데타 기도 적발” 정치 불안 계속
[1판] 80년대 중반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장기독재정권을 축출했던 ‘피플파워' 20주년을 하루 앞둔 필리핀에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됐다.
선거 조작 의혹과 부패 혐의 등으로 사임 압력을 받고 있는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24일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필리핀에선 22일 젊은 장교들의 쿠데타 기도가 있었다고 발표되는 등 정치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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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데타설과 반정부 시위 등으로 등으로 위기에 몰린 글로리아 마카파갈 아로요 필리핀 대통령이 24일 국영텔레비전을 통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있다. 마닐라/AP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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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보안당국은 곧바로 모든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고, 전국 학교에 휴교령을 내렸다. 수도인 마닐라 시내 곳곳에는 검문소가 들어서고, 대통령궁에 대한 경계가 강화됐다고 <에이피(AP)통신>이 전했다. 국가 비상사태 선포는 필리핀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으로 의회의 승인을 받지 않아도 된다.
필리핀의 비상사태 선포는 전날 한 군 장성의 아로요 대통령에 대한 지지 철회 발언으로 촉발된 것으로 전해졌다. 군 당국은 “군 일각에서 25일 예정된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쿠데타를 시도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밝혔다. 이 장성은 현재 군 당국에 체포됐으며, 다른 2명의 장군들도 조사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로요 대통령은 국가 비상사태 선포 직전인 이날 새벽 국가안보위원회 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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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앞서 에르모게네스 에스페론 육군참모총장은 22일 아로요 대통령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쿠데타 음모를 적발했다고 밝혔다. 에스페론 총장은 14명의 젊은 장교들이 200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시키려고 시도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들은 주로 루손섬과 민다나오섬에 주둔하는 부대의 하급장교들이어서 쿠데타를 실행에 옮길 능력은 부족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마지막 혁명’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적발하고, 은밀히 쿠데타 음모를 추적했다고 밝혔다.
아로요 대통령은 선거 조작 의혹과 이어 불거진 각종 부패 혐의로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특히 2004년 대선 당시 선거관리위원과 당락 표차를 논의하는 테이프가 공개되면서 사임 압력에 직면해 있다. 최근엔 레이테섬을 덮친 산사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추궁당하고 있다. 그러나 군 지도부의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어 사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유강문 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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