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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9.12.30 16:33 수정 : 2019.12.31 02:33

12월23일(현지시각) 인도 벵갈루루에서 무슬림 단체 주도로 열린 시민권법 개정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국기와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이슬람 혐오·힌두 민족주의 앞세워
무슬림 배제 시민법 개정 강행

“히틀러 유대인 정책 답습” 비판
전역서 반대시위 격화 27명 숨져

힌두인·카스트 하층까지 연대해도
식민지때 곤봉 휘두르며 강경대응

12월23일(현지시각) 인도 벵갈루루에서 무슬림 단체 주도로 열린 시민권법 개정 반대 시위에서 참가자들이 국기와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21세기에 두번째로 새로운 10년 입구에 막 들어서는 지금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집권당은 인종적 민족주의에 도박하듯 몰두하고 있다. 올해는 마하트마 간디 탄생 150주년이었다. 그들은 ‘간디의 유산’을 거부하고 현대 인도 역사에 새로 어두운 장을 열고 있다.” 인도 역사학자 라마찬드라 구하가 지난 19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에 ‘간디 비전의 종말’이란 제목 아래 쓴 칼럼 중 일부다. 모디 총리와 그 집권당이, 종파를 초월한 화합과 정치적 다원주의를 지향한 간디의 꿈을 짓밟으면서 이슬람 혐오와 힌두 민족주의를 전면에 내걸고 반동을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13억명 인도에서 ‘힌두 민족주의의 발흥’은 지난 11일 의회를 통과한 개정 시민법(주민등록법)에서 극적으로 대두하고 있다. 이 법은 2014년 말 이전에 무슬림 다수국(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파키스탄)에서 추방돼 인도로 이주해 온 힌두교·파르시(카스트 하층계급)·시크교·불교·자이나교·기독교도 등 6개 종교 이민자들에게 시민권을 더 쉽고 빠르게 부여하는 길을 터줬다. 문제는 ‘무슬림이 아닐 것’을 시민권 획득의 조건으로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새 시민법에 성난 수만명이 인도 전역에서 법안 폐기·개정을 요구하며 2주일 넘게 시위를 벌이고 있다. 시위대는 “힌두 민족주의 모디 정부가 소수파 무슬림을 차별하고 추방하기 위한 법”이라고 주장한다. 대다수가 힌두교도인 인도에서 무슬림은 14%가량에 이르고 대부분 가난하게 산다. 나머지가 기독교·불교 등이다. 모디와 힌두교 가치를 표방하는 집권 인민당(바라티야 자나타당)은 “불법 이민자 합법화 등 모든 시민을 공평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축하지만, 시위가 격화하면서 그동안 27명 가까이 숨졌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시위 대열에는 무슬림뿐 아니라 힌두인과 ‘카스트’ 하층계급(달리트·파르시)도 연대하고 있다. 파르시 계급인 케르시(32)는 “다문화주의·다원주의라는 세속적 원리에 기초한 인도 헌법 원리가 전례 없이 위협받고 있다”며 “(스리랑카·미얀마 등 소수민족을 2등 시민으로 차별하는) 이웃 나라들과 뚜렷이 다른 인도의 핵심 정서를 모디가 파괴하려 한다”고 말했다. 인도는 특유의 신분적 사회계급 체제(카스트)가 여전히 불문율 규범으로 존재하지만, 간디와 자와할랄 네루 총리 이래 종파 다원주의 원리를 지향해왔다. 역사학자 구하 역시 “인도는 (종교 포용성이라는) 예외주의가 관철돼왔다”고 말한다. 대학생 프라나브 야다브(20)는 “모디는 히틀러가 유대인에게 그랬던 것처럼 특정 계급의 차별과 박해를 통해 힌두 다수로부터 지지를 얻으려 한다. 무슬림을 뿌리뽑은 뒤에는 다른 계급에 대한 공격에 나설 것이다. 무슬림은 모디의 완벽한 정치적 희생양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2014년에 집권한 모디는 최근 10년간의 놀라운 경제성장률(9~10%)에 환호한 유권자들 덕분에 지난 5월 재집권에 성공한 뒤 힌두 우선주의 정책을 본격화하고 있다. 올해 들어선 대외 강경 민족주의를 표방해 파키스탄을 “외부의 적”으로, 인도 무슬림과 세속적 자유주의 정당은 “내부의 적”으로 묘사해왔다. 지난 8월에는 인도 최북단에 있는, 무슬림이 다수인 잠무 카슈미르주의 특별자치주 지위를 박탈하고 ‘인도 통합’을 명분으로 연방행정지역에 편입시켰다. 주민 프로밀라 차투르베디(79)는 “영국으로부터 자유독립 쟁취 투쟁을 벌일 때 영국은 ‘바깥의 적’이었다. 지금은 우리 자신들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말 공개된 인도 북동부 아삼주의 최종 주민등록 현황을 보면 거의 190만명이 주민에서 배제돼 있다. 상당수가 무슬림으로 추정되는데, 외국인재판소는 이들에게 시민권 입증 기간(120일)을 부여하고 불법이민자로 확정되면 별도의 수용소에 억류한다.

<에이피>(AP) 통신은 “인도 경찰이 영국 식민지 시절부터 사용해온 1.5m 길이의 소요진압용 대나무 곤봉(‘라티’)을 휘두르고 있다”며 “식민지 시절의 공공집회 금지법을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뉴델리 등 일부 주에서는 시위 확산을 막기 위한 조처로 때때로 인터넷통신망이 봉쇄되고, 인도 당국은 “폭력시위를 부채질할 수 있는 내용을 전파하지 말라”며 방송매체들을 통제하고 있다.

모디의 소수파 이슬람 추방 움직임은 인도 경제의 급작스러운 둔화 양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도 경제가 하강 국면에 접어들자 이주민들에 대한 힌두 다수파의 정치적 반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 경제는 지난 3분기 국내총생산 성장률(4.5%)이 전년 동기(7.0%)보다 대폭 하강하며 근래 6년 만에 최저로 떨어졌다. 23일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인도 경제 성장률이 5%대로 떨어질 수 있다며 “긴급 정책 처방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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