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9.11.24 16:24
수정 : 2019.11.25 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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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23일 ‘페미사이드’(남편이나 동거남, 전 남자친구 등에 의한 여성살해)를 규탄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려, 시위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보라색 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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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남성 파트너에 살해된 여성 137명
희생자 추모 보라색 옷 입고 깃발 들고
여성살해 규탄·대책 마련 촉구 집회·행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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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에서 23일 ‘페미사이드’(남편이나 동거남, 전 남자친구 등에 의한 여성살해)를 규탄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가 열려, 시위 참가자들이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보라색 팻말을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파리/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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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성 마리알리스 디봉(53)은 2004년 파리의 택시에서 만나 루치아노 메리다(66)와 사랑에 빠졌다. 둘을 이어 준 건, 그의 곁에 놓인 한 권의 시집. “무슨 책이죠”란 질문으로 시작된 대화로 사랑에 빠진 두 사람은 몇 주 뒤 파리 근교 쿠스브부아의 아파트에서 동거를 시작했다.
두 사람의 행복은 그리 오래 가지 못 했다. 동거 5년째에 접어들면서, 메리다가 마리알리스에게 집착하고 조종하려고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디봉은 몇 차례나 메리다와 헤어지려 했지만, 감정적으로 을러대고 식음을 전폐하며 매달리는 메리다에게 발목을 붙들렸다.
그리고 지난 4월25일, 디봉은 우아르강에서 가방에 담겨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메리다가 디봉에게 약을 먹인 뒤 목졸라 살해했다고 발표했다. 그들이 만난 지 15년만, 이젠 정말 끝이라고 선언한 지 이틀 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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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감독 겸 배우 에바 달랑(가운데)이 2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배우 나데지 뷰숑 디안(왼쪽), 각본가 빈센트 트린티냥과 함께 ‘페미사이드’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파리/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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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봉은 올해 남편이나 동거남, 전 남자친구로부터 살해당한 137명의 프랑스 여성 중 1명이다. 미국 <시엔엔>(CNN) 방송은 남성 파트너의 손에 목숨을 잃은 디봉과 같은 여성들의 사연을 전하며 프랑스에서 ‘페미사이드’(여성살해)에 분노하며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고 23일 보도했다.
프랑스에선 지난해에도 121명(내무부 집계)의 여성이 남성 파트너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도 페미사이드 비율이 높기로 악명높다. 2017년 유로존 통계 당국인 ‘유로스타트’의 집계에 따르면, 독일을 제외하고 그 비율이 가장 높다. 디봉의 소식이 보도된 이날도 프랑스 중부 루아르 지역에서 아내를 우발적으로 살해한 뒤 인근 숲에 내다 버린 59살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는 소식이 전해져왔다고 <아에프페>(AFP) 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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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죽이지 않는다’라고 쓴 손팻말을 든 한 참가자가 23일(현지시각) 프랑스 파리에서 ‘페미사이드’를 규탄하며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해 행진하고 있다. 파리/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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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프랑스 수도 파리를 비롯해 전국 30여개 도시에선 페미사이드를 규탄하고 정부에 대책을 요구하는 집회와 행진이 열렸다. 파리 중심가 오페라극장 앞에 모인 시민들은 ‘가부장주의 근절’ ‘여성살해를 멈춰라’ 등이 적혀 있는 손팻말과 희생된 여성들의 사진 등을 들고 집회에 참가했다. 이들이 희생된 여성들을 기리는 의미로 보라색 옷을 입고, 보라색 깃발을 들어 거리는 온통 보랏빛 물결이었다. 파리 경시청에 따르면, 이날 파리에서만 3만5000명이 ‘보랏빛 행진’에 참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집회 주최 쪽인 ‘우리 모두’(#NousToutes)는 이날 프랑스 전역에서 15만명이 행진에 참여했다며, 젠더 기반 폭력에 항거하는 행진 중 최대 규모라고 밝혔다.
페미사이드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프랑스 정부는 지난 9월부터 대책 마련을 위해 양성평등부를 중심으로 시민단체와 전문가, 가정폭력 또는 데이트폭력 피해 여성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지난 9월부터 진행해왔고, 오는 25일 가정폭력 및 여성살해 근절 종합대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정애 기자
hongbyul@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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