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4.12 19:21
수정 : 2006.04.12 19:21
유럽 가구업계, 중국 모방으로 골머리
수공예·독창성 살린 클래식으로 전환
한국업계 양쪽에 낀 꼴…“디자인이 답”
밀라노서 치러진 세계 가구업체들 격전 현장
지난 7일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의 한 호텔. 이창현 부장(리오가구)은 아침 6시30분 모닝콜에 일찌감치 눈을 떴지만 마음이 바쁘다. 10여명의 직원을 이끌고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에 온 지 사흘째지만 클래식(서양 고전)가구와 모던(현대식)가구, 주방가구, 사무실가구 등 각 분야에 출품작을 낸 2500여개 업체의 부스 가운데 절반밖에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직원들과 돌아볼 전시관을 배분하고 체크할 사항들을 논의하기 위해 이 부장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양인들 여럿이 다니면 안좋아하니까 둘씩 다니죠?” 회의에서 나온 한 부하직원의 제안에 이 부장은 고개를 끄덕인다. 이탈리아를 비롯해 유럽쪽 가구업체들은 최근 들어 동양인의 부스 방문을 무척 경계한다. 멋진 디자인의 가구가 눈에 들어와 사진기를 들기가 무섭게 직원이 다가와 “노 픽쳐스(No Pictures)!”를 외치며 제지한다. 방금 전 금발의 서양 여자가 사진을 찍을 때는 아무 제지가 없었다. 모든 업체가 동양인의 사진 촬영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사진찍기가 부담스러운 분위기다. 몇몇 업체는 동양인의 부스 입장을 거절하기도 한다.
“중국의 카피(모방) 때문이죠.” 이 부장의 설명은 간단 명료했다. 한국도 90년대까지는 밀라노에서 전시된 작품을 그대로 베낀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사라지는 추세고, 그 뒤를 중국이 잇고 있는데 그 기세가 장난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럽 디자인을 모방한 중국의 카피 가구가 엄청난 물량으로 유럽에 역수출되는 추세여서 이곳 사람들이 무척 긴장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디자이너까지 스카웃해 진짜같은 모방가구를 만듭니다. 디자인으로 승부하는 유럽 가구업계 처지에서 중국은 경계대상 1호인 셈이죠.” 중국 때문에 외모가 비슷한 한국인도 덩달아 비슷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경향은 클래식가구보다는 모던가구쪽이 심하다. 수공예의 비중이 높은 클래식보다 감각적인 디자인 자체가 핵심인 모던쪽의 모방이 보다 쉬운 탓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듯 이번 박람회는 클래식가구의 비중이 커졌다는 게 국내 가구업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과거에는 클래식가구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고 참가업체도 모던에 견줘 작았는데, 올해는 클래식쪽이 색상이나 재질에서 화려하고 다양한 실험들이 많아졌고 출품업체 수도 모던 쪽에 버금갈 정도로 늘었습니다.” 실제로 클래식가구 전시관에는 빨간색 가죽을 입힌 대형 클래식소파가 자주 눈에 띄었고, 의자는 물론 탁자의 윗면까지 가죽으로 입힌 실험적인 거실세트도 등장했다. 고급 주방가구의 밑단 처리에까지 값비싼 악어가죽이 사용됐고, 금박과 은박을 입힌 책장, 침대, 문틀이 등장하는 등 클래식가구가 화려함의 극치를 보였다.
“유럽 가구업계가 중국의 카피가구에 밀리다보니 손이 많이가는 수공예와 디자인의 독창성 등에서 경쟁력이 있는 클래식쪽으로 대거 전환하는 추세입니다. 국내서도 조만간 클래식가구가 유행하지 않을까 싶습니다.”(한병호 로얄수입가구 대표).
하지만 한국 가구업계의 실상을 돌아보면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 모던의 경우 이미 중국의 저가공세에 시장을 다 내줬고, 클래식 역시 유럽가구를 모방한 중국의 공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이다. “그렇다고 유럽처럼 이를 타개할 대안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가격에서는 중국과 경쟁할 수 없는 만큼 어찌됐든 디자인을 강화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밀라노/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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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장에 낙서하라고?
아이디어 반짝 재밌는 가구들… 펴면 침대 세우면 장식품 가구도
해마다 밀라노가구박람회에는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가구들이 출품돼 관람객들의 눈길을 끈다. 올해는 모던관과 부엌가구관 등에서 아이디어가구들이 사람들의 발길을 잡았다.
모던관에서 가장 인기있는 가구는 바로 아이들의 낙서장으로 변신한 옷장과 서랍장이다. 어디든지 그리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가두지 않으면서도, 닦아내기만 하면 흰색이든 갈색이든 원래의 색과 질감을 유지할 수 있는 다기능 가구다. 멜라닌 소재로 가구의 표면을 처리해 색연필, 볼펜, 유성펜 등으로 낙서를 해도 깨끗하게 흔적없이 지울 수 있는 게 특징이다.
부엌가구관에서는 벽속으로 들어간 이른바 ‘빌트인(built-in)’ 압력밥솥이 눈에 띈다. 가전제품도 드러나지 않게 숨기는 쪽으로 빌트인 가구들이 발전해가면서 압력밥솥마저 뚜껑을 옆으로 세워 안으로 들어가게 만든 제품이다. 압력솥 안은 기존 둥그런 원통 대신 선반식으로 나뉘어 층층마다 길다란 직사각형 식기들이 들어가 있다. 유럽 유명가전사인 밀레사가 한국과 일본 등 동북아 시장을 겨냥해서 만들었다.
또 플라스틱 널판을 기하학적으로 구부려 놓은 간이 침대는 필요할 때만 눕혀서 쓴 뒤 세워놓으면 장식품의 역할을 할 정도로 미끈한 자태를 자랑했다. 한 길다란 클래식 의자는 한쪽 귀퉁이에 등받이를 세워놓아, 앉아 있다가 피곤하면 등을 기대 길게 누울 수 있도록 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거실가구로는 접으면 의자, 펴면 침대가 되는 다용도 소파-침대를 내놓은 업체가 여럿이었다. 국내에서도 볼 수 있는 형태지만 디자인이나 재질, 기능면에서 독특함이 묻어난다. 특히 3인용 소파의 형태에서 다 펴면 그대로 퀸사이즈 침대로 바뀌고, 쿠션을 베개로 활용하도록 한 제품을 보면 간편함에 있어 감탄을 자아낼 정도다. 이 밖에 유아용 소파와 탁자 등 앙증맞은 거실세트도 아이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함께 제품의 정교함 때문에 관람객들의 인기를 모았다.
밀라노/조성곤 기자 c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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