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량감원 고강도 구조조정 경영혁신 시동 재기 몸부림
미국인 CEO ‘수술’ 나서 경영실적 악화에 시달리던 소니가 대규모 감량 계획 발표로 술렁이고 있다. 3년 안에 1만명을 감원하고, 재외 공장 11개를 폐쇄하겠다는 것이 지난 22일 소니가 밝힌 ‘경영혁신’의 핵심이다. 공교롭게도 구조조정의 칼은 소니 사상 처음으로 최고경영자 자리에 앉힌 외국인의 손에 쥐어졌다. 텃밭 ‘전자’서 허우적대=일본의 간판기업 소니가 침체의 늪에서 허우적대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주력 사업인 전자 부문 부진에서 찾을 수 있다. 소니는 전체 매출의 60%를 차지해온 전자 부문에서 고전하다 최근 2년 연속 적자를 냈다. 1980년대와 90년대 세계 전자산업을 주름잡던 소니는 워크맨과 캠코더 이후에 이렇다할 상품을 내놓지 못했다. 삼성을 비롯한 후발 업체들이 한발 앞서 엘시디와 피디피 등 디지털 기기 개발에 힘을 쏟은 것과는 달리 소니는 고집스럽게 브라운관에 매달렸다. 영화·게임 등 콘텐츠 산업에 뛰어들었지만 복합 효과를 내지 못하고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 부가가치가 높은 핵심 분야에서는 투자 시점을 놓치고 말았다. 영상 사업에서는 마쓰시타에, 엠피3 부문에서는 애플에 뒤처졌다. 전자 업계에서는 한때 워크맨 같은 혁신 제품을 쏟아내던 소니가 빠르게 변하는 흐름을 읽지 못한 점을 근본적인 실책으로 보고 있다. “급변하는 트렌드 놓친탓”
이번 구조조정은 지난 3월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 후임으로 영입된 미국인 하워드 스트링어 회장이 취임하면서 일찌감치 예견됐던 것이다. 소니의 경영혁신 계획은 이데이 전 회장 시절부터 추진돼 왔지만, 실적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은데다 내부 갈등마저 불거져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따라서 업계에서는 소니의 이번 구조조정을 그다지 새삼스런 일이나 소니의 미래를 가늠할 특별한 비전이 담긴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몸집 줄이기말고는 소니생명 같은 금융부문 정리 계획이 제시되지 않은 탓이다. 오히려 스트링어 회장은 올해 회계연도에서 전체 사업부문에 걸쳐 100억엔의 손실을 볼 것이란 전망을 내놓아 투자자들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융합전략 먹힐지 미지수 60년 소니, 반전 기회 잡을까? = 그러나 소니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소니가 전자업계의 절대 강자에서 밀려났을 뿐 여전히 막강한 저력을 지닌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환갑(60돌)을 맞아 혁신 제품을 내놓고 반전을 꾀할 것이란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소니의 부진을 ‘몰락’ 또는 ‘쇠퇴’로 보는 것은 섣부르다는 지적이다. 신형원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소니는 아직도 전자부문에서 원천 기술력을, 특히 콘텐츠 시장에서 엄청난 자산을 확보하고 있어 잠재력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변화에 유연한 적응 교훈 소니는 앞날에 대비한 ‘비밀 병기’를 여럿 갖고 있다. 지난 2001년부터 도시바, 아이비엠과 함께 개발해온 차세대 반도체 ‘셀’과 새로운 레이저 기술인 ‘블루레이’ 등 핵심기술이 그것이다. 여기에 하드웨어(전자 부문)와 콘텐츠(엔터테인먼트) 사업의 융합 전략이 제대로 먹혀들면 소니는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소니가 이데이에 이어 방송 콘텐츠 사업자인 스트링어를 후임으로 선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스트링어 회장은 대외적으로 가전 부문에 주력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 그런 방향으로 경영을 이끌지는 미지수다. 가전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될지, 아니면 콘텐츠로 돌파구를 찾을지, 선두 그룹에서 밀려날지는 아직 속단하기 이르다. 전문가들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는 글로벌 경쟁에서 시장 변화에 맞서 유연한 대처와 재빠른 적응에 실패하면 언제든지 낙오할 수 있다는 점을 소니의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한다. 김장열 현대증권 전자·반도체팀장은 “소니의 사례는 삼성이나 엘지처럼 아무리 잘나가는 기업이라도 소비자 요구와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뒤처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홍대선 기자 hongd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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