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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7.17 19:49 수정 : 2015.07.17 22:01

지난 7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유로존 정상회의 직전 사전모임에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오른쪽)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다. EPA 연합뉴스

[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역사에서 가정법은 무의미하다. 하지만 2차대전 직전 네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총리가 독일 나치의 아돌프 히틀러와 맺은 뮌헨 협정만은 유독 예외로 취급받는다.

체임벌린은 체코의 수데텐란트를 합병하겠다는 히틀러의 요구를 들어주는 뮌헨 협정을 맺었다. 더이상의 영토 요구를 하지 않겠다는 히틀러는 6개월 뒤 체코 전체를 집어삼켰고, 다음해에는 폴란드를 침공해 2차대전이 발발했다. 그때 체임벌린이 히틀러에게 단호히 맞섰다면, 2차대전은 없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뮌헨 협정은 실패한 유화정책, 나쁜 유화정책의 상징이다.

비밀이 해제된 영국 정부의 문서들은 다른 얘기도 전한다. 당시 영국으로서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고, 뮌헨 협정은 영국한테 전쟁을 준비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것이다.

당시 영국군 참모본부는 영국은 독일을 저지할 무력이 없고, 전쟁 발발을 지연시켜 장기전으로 가야지만 승리할 수 있다는 보고를 했다. 그때 전쟁이 발발하면, 독일은 우세한 공군력으로 런던을 초토화하고 500만명 이상이 희생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당시 독일의 공군 등 군사력은 아직 전쟁 준비가 안 돼, 영국 등이 군사력으로 대응했다면 독일이 큰 피해를 봤을 것이라고 말한 히틀러의 후일담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당시 영국의 군부나 국민이 전쟁을 할 의지와 능력이 없었다는 거다.

체임벌린이 뮌헨 협정의 조약서를 들고 런던에 오자, 거리에 국민적 환영 인파가 넘쳤다. 1차대전의 상흔이 여전한 영국에서 먼 나라인 체코를 놓고 독일과 또 전쟁을 한다는 국민적 합의는 불가능했다.

대신 체임벌린은 히틀러의 체코 점령 뒤 예비군 병력을 2배로 늘리는 한편 영국 사상 최초로 평화시에 국민개병제를 실시하는 전쟁 준비에 들어갔다. 1년 뒤 독일에 전쟁을 선포할 때 영국군은 레이더 및 새로운 전투기의 배치로 뮌헨 협정 때보다 전쟁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공군력 강화는 영국이 2차대전에서 버티는 보루가 됐다.

2차대전의 뿌리는 뮌헨 협정보다는 1차대전 뒤 패전국 독일에 과도한 배상금을 물린 베르사유 협정에서 찾는 것이 역사적 합의이다. 과도한 배상금은 독일 경제를 침체시키고, 국민적 불만을 키워 나치의 발호를 불렀다.

최근 잇따라 타결된 그리스 구제금융은 베르사유 협정으로, 이란 핵협상은 뮌헨 협정으로 비유되며 비난받는다. 국제사회와 그 지도자들은 베르사유 협정과 뮌헨 협정이 남긴 역사적 교훈을 그리스 구제금융과 이란 핵협상에 구현할 수 있느냐는 시험대에 올랐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보수파로부터 이란 핵협상이 뮌헨 협정보다도 못하다며, 체임벌린으로 비유되며 비난받는다. 그들의 비판대로 이란이 이 협정을 악용해 힘을 키우고 평화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오바마가 아닌 다른 사람이 미국 대통령이라도 이란에 대해 외교를 통한 평화 노력을 다해야만, 다른 선택지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그리스 구제금융의 가혹한 조건을 밀어붙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패전국 독일에 가혹한 배상금을 물린 베르사유 협정을 밀어붙인 당시 영국과 프랑스 지도자에 비유된다. 그는 자신들의 전후 부흥을 이끈 미국 등 승전국들의 부채 탕감과 마셜 플랜의 정신을 그리스와 유로존한테 적용해야 한다는 점증하는 압력에 처하고 있다.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베르사유 협정의 교훈은 패자에 대한 관용과 승자의 아량이 평화와 안전을 담보한다는 것이다. 뮌헨 협정의 교훈은 평화를 위한 노력을 다해야만 전쟁에 대한 합의도 있다는 것이 아닐까? 오바마와 메르켈, 미국과 독일은 그 역사적 교훈을 망각하지 않고 지금 구현할 수 있을까?

정의길 국제부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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