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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9.13 19:30 수정 : 2015.09.14 10:52

그리스의 좌파 계열 노조연맹인 노동자투쟁전선(PAME) 소속 노동자들이 지난달 13일 수도 아테네 도심에서 ‘긴축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테네/AP 연합뉴스

산업생산 30개월 연속 감소세
실업률 26%·임금 14년새 최저
소비 침체까지 악순환 이어져
20일 총선…올해 선거만 세번째

그리스 총선이 치러진 지난 1월25일 새벽, 수도 아테네에 사는 두 아이의 엄마인 비비(41)는 1분이라도 빨리 투표소가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마음속 기표지엔 이미 빨간 동그라미를 찍어두었다. ‘긴축 반대’와 ‘부채 탕감’을 내건 신생정당 시리자(급진좌파연합)와 소속 후보였다. 시리자는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했다. 지난 7월20일에는 국제채권단이 요구하는 구제금융 조건에 대한 그리스 국민의 찬반 국민투표에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리고 오는 20일 조기총선을 앞두고 있다. 그리스는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 집권 8개월 새 세번이나 큰 선거와 투표를 치르는 셈이다.

하지만 비비는 이번엔 투표소에 나가지 않을 작정이다. 비비는 최근 영국 경제주간 <이코노미스트>에 “(투표와 상관없이) 상황이 결국은 다 똑같아졌다”며 “왜 우리가 또 선거를 해야 하나? 우린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할 권리를 주었지, 그들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국민투표를 요구할 권리를 준 게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그리스 구제금융 위기가 큰 고비를 넘은 지 한달이 되어간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가들은 지난달 19일(현지시각) 그리스에 3년 동안 860억유로(약 112조3000억원)를 지원하는 3차 구제금융을 최종 승인했다. 그리스는 디폴트(채무 불이행)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위기를 간신히 모면했다. 그리스 경제는 구제금융을 디딤돌 삼아 경제위기에서 회생할 수 있을까?

그리스의 3차 구제금융 합의안의 핵심 목표는 비효율적 자원 배분을 개선해 경제를 회생시킨다는 것이다. 그 조건으로 이행할 의무는 이전보다 더 가혹하다. 부가세를 비롯한 각종 세금은 크게 오르고, 연금 혜택은 더욱 엄격해졌다. 규제 완화, 노동시장 개혁, 국유재산 매각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요구받았고, 그 이행을 위해 관련법까지 고쳐야 했다.

불행히도 지금 상황만 본다면 전망은 밝지 않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여기에는 몇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그리스를 극심한 재정위기로 몰아넣은 경제구조와 환경이 나아진 게 별로 없다. 둘째, 유로존의 안정성을 지렛대로 삼은 경제정책의 자율성과 협상력이 더욱 줄어들었다. 셋째, 막대한 구제금융 지원금이 대부분 기존의 빚을 되갚는 데 쓰이면서 정작 필요한 경제의 젖줄 구실을 하지 못하는 현실도 그대로다. 끝으로,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시리자 정부에 대한 그리스 국민들의 실망감이 커지면서 정치적 불안정 가능성도 점쳐진다.

지난달 그리스 산업생산은 30개월 내리 감소했다. 임금은 최근 14년 새 최저 수준이다. 경기 침체로 디플레이션이 길어지고 산업생산 기반이 움츠러들면서, 그리스 경제가 더 후퇴하고 있다는 진단도 나왔다. 그리스 경제산업연구재단(IOBE)의 앙겔로스 차카니카스는 최근 <로이터> 통신에 “올해 국내총생산이 2% 가까이 감소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그리스는 2008년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진 뒤 2010년부터 구제금융 빚으로 연명해왔다. 그러나 돌려막기식 빚잔치는 그리스 경제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보고서에서 “그리스 공공부채의 지속가능한 관리 가능성이 매우 불안하다”고 진단했다. 또 2018년 말까지 그리스가 필요한 외환이 850억유로에 이르고, 향후 2년간 국내총생산 대비 부채 비율이 200% 가까이 치솟아 최고점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극심한 경제난은 산업생산 저조→실업난→소비 침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지난 7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고용전망 2015’ 보고서를 보면, 그리스는 올해 1분기 실업률이 25.8%로 가장 높았다. 회원국 평균 실업률은 7.1%였다.

엘지(LG)경제연구원은 최근 낸 보고서에서 “그리스 경제에서 교역재, 즉 상품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우리나라나 아일랜드처럼 위기에서 빠르게 회복을 달성한 나라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과거에 비해 조선 등 제조업 기반이 크게 약해진 반면, 관광수입 확대 등 서비스 수출과 연관 내수 부문이 경제 전체의 성장을 견인하기엔 한계가 있다.

그리스 재무부는 탈세를 막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여러가지 정책 수단을 검토하고 있다고 현지 일간 <카티메리니>가 지난 10일 전했다. 여기에는 신용카드 및 체크카드를 사용하는 개인과 기업에 세제 혜택, 경품 제공, 보조금 지급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포함됐다. 재정 건전화와 내수 진작을 위한 안간힘이다.

그리스 경제의 회생 여부와 시점은 그리스 정부뿐 아니라 유로존 채권국들에도 중대한 관심사다. 지난 6~7월 한때 그리스가 채무불이행을 감행하고 채권단이 그리스의 유로존 퇴출까지 논의했던 상황이 재연되면 더 이상의 협상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양쪽 모두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조일준 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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